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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칼럼] 주권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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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2-28 22:05:14 수정 : 2014-12-29 01:4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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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 보호하려면 일부분 양보 필요
권리만 고집 땐 국제사회서 고립
오늘날 세계는 주권국가를 단위로 한다. 주권이란 안으로는 모든 것에 우선하는 최상위의 권력을, 밖으로는 다른 어떠한 권위에도 구속되지 않는 독립을 의미한다. 국가위에 군림해 국가 사이의 관계를 규율하는 정부, 즉 세계정부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국제사회는 무정부상태(anarchy)다.

정부가 없다는 법적인 권리를 보호받고, 무엇보다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 때문에 각국은 스스로의 힘으로 안전을 지키고 국가이익을 주장해야 한다. 그래서 국제정치는 힘의 정치, 곧 권력정치다. 법은 멀고 주먹이 가까우니 힘을 키우는 것이 최고의 국가목표다. 과거 식민지 획득 경쟁도 바로 권력투쟁의 일환이었다.

김태현 중앙대 교수·국제정치학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과거 식민지였던 많은 나라가 주권국가로 거듭났다. 크든 작든, 잘살든 못살든 모든 나라가 법적으로 평등하고, 다른 나라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운 주권 개념은 이들 신생국가에는 축복이다. 그래서 신생국가일수록, 약한 나라일수록 주권에 대한 신봉이 강하다. 주권논리의 귀결로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입장에서 참으로 아이로니컬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로부터 또 하나의 아이러니가 나온다. 나라들이 서로 동등하지 않은데 주권이 평등하다는 개념은 곧 법적인 개념이다. 그리고 법이 통하려면 국제사회가 무정부상태를 넘어 사회로서 기능해야 한다. 모든 나라가 주권을 절대적으로 주장하면 국제사회는 사회가 아니라 무정부상태로 떨어지고 만다. 거기는 주권 개념이 설 땅이 없다. 주권 개념은 자기파괴적 속성을 지녔다.

과거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나라에서 주권은 정서적으로 강한 호소력을 가진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주요 외교현안에서 주권은 항상 주요한 잣대가 된다. 작전통제권도 행사하지 못하는 군을 가진 나라가 무슨 주권국이냐고 한다. 북한도 한 핵무장을 우리가 못할 게 있냐며 소위 핵주권론을 내세운다.

그러나 주권을 보호하려면 주권을 양보해야 하는 것이 상호 의존이 고도화된 오늘날의 현실이다. 많은 나라가 유엔헌장 등 여러 조약에 가입해 주권의 일부분을 양도한다. 주권 개념의 원형을 보였던 유럽은 아예 그 주권을 크게 약화시키고 국가 위의 국가를 인정하는 지역통합을 이루었다. 단일한 화폐를 쓰고 동일한 여권으로 세계를 여행한다.

식민 지배의 경험으로 인해 주권 문제에 민감하기로는 동남아 국가들을 빼놓을 수 없다. 그래서 동남아국가연합, 즉 아세안이라는 이름으로 지역통합을 추구하면서도 내정에 대한 간섭은 철저히 배척하는, 소위 아세안 방식을 고집했다. 그런 그들도 이제는 ‘아세안공동체’에 주권을 양도하고 있다. 주권을 절대적으로 고집할 때 지역공동체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948년 정부 수립 후 지금까지 652개의 다자조약을 포함해 3021개의 조약을 체결하고 발효시켰다. 유엔과 산하기구를 포함 110개의 국제기구에 가입해있다. 남북한을 제외한 191개 유엔 회원국 중 188개국과 외교관계를 수립했다. 그것을 통해 세계 속에 산재한 우리의 이익과 권리를 지킨다. 물론 그에 따른 의무도 이행한다. 그럼으로써 우리나라는 세계 속의 중심국가로 당당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것이 21세기 주권의 현주소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때로 흘러간 주권 노래를 부른다. 주권 개념이 가진 정서적 호소력으로 말미암아 주권 문제에서 타협하는 정치인은 살아남기 어렵다고 믿는다. 반면 그것을 활용해 인기를 누리는 정치인이나 논객도 있다. 인기를 꿈꾸는 이들은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는 되기 어렵다.

북한을 보라. 북한은 주권의 존엄을 내세우며 단 26개의 국제기구에 가입하고 있다. 주권적 권리라며 핵무기를 개발해 세계의 외톨이가 됐다. 북한이 핵을 가졌으니 우리도 가지자고 한다면 참으로 희한한 종북(從北)적 발상이다.

김태현 중앙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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