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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호칼럼] 대학도서관 개방을 넘어 투자부터 늘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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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2-21 22:14:01 수정 : 2014-12-21 22:2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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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개방, 자칫 학습권 침해 우려
주민도 이용할 수 있게 시설 확대를
최근 한 시민단체가 서울교대, 광주과학기술원 등 도서관장을 상대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도서 대출과 열람실 이용을 불허함으로써 헌법상 국민의 알 권리, 균등한 교육을 받을 권리, 평등권, 행복추구권을 침해했다는 것이다.

대학도서관 개방 논란은 대학의 공공성과 대학 구성원의 교육권·학습권이라는 가치가 충돌할 때 이를 어떻게 조화할 것인가에 대해 우리 사회가 아직 보편적 합의를 이루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대학도서관은 국·공립이든 사립이든 국가 등 공공의 비용과 지원으로 형성됐기 때문에 고도의 공공성을 갖는다. 그러므로 이번 헌법소원 사건에서처럼 주민들의 도서관 이용을 일절 불허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더구나 국립대뿐만 아니라 사립대 가운데도 이미 주민들에게 도서관을 개방하는 곳이 적지 않다. 그러나 문제는 개방의 범위 내지 한계이다.

정병호 서울 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대학도서관을 개방한다 하더라도 재학생 등 대학구성원과 모든 면에서 똑같이 주민들을 대우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대학도서관이 국가 등 공공의 지원을 받지만, 학생들의 등록금에도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무제한적인 공개는 자칫 재학생들의 학습권을 제약할 우려가 있다. 만약 일반인에게 무제한적으로 공개돼야 한다면, 마땅히 다른 대학 학생에게도 공개돼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장서나 시설면에서 우수한 도서관을 가진 대학의 학생들이 상대적으로 더 피해를 입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대학도서관 개방에는 일정한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다. 주민들의 이용을 허용하는 대학 가운데 연회비 등 최소한의 이용료를 요구하기도 하고, 이용 인원, 이용 시간대, 대출 권수를 제한하는 것도 대학 구성원의 학습권과 교육권을 고려하기 때문이다. 이런 제한으로 평등권이 침해됐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헌법은 합리적 차별까지도 배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한이 대학 구성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에 그쳐야함은 물론이다.

대학도서관 개방 논란은 우리의 도서관 수준과 깊은 관련이 있다. 먼저 공공도서관 1관당 인구 수는 선진국의 절반 수준이고, 공공도서관 자료구입비도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부족하다. 또한 공공도서관은 이용자 수, 장서 수, 장서의 질, 시설 면에서 대학도서관보다 무척 열악하다. 그러니 대학도서관을 전면 개방하라는 주장을 이해할 만도 하다. 하지만 대학도서관의 우위는 상대적일 뿐이다. 대학도서관 사정도 그리 좋지 못하다. 그러니 재학생들이 대학도서관 개방에 반대하는 것을 두고 이기주의로 마냥 힐난할 수만도 없다.

우선 열람실 좌석이 충분하지 못하다. 1995년에 전체 대학도서관 좌석당 평균 인원이 4.2명이었는데, 2013년에는 좌석당 평균 5.4명으로 법정기준인 5명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1995년 대학설립 준칙주의를 도입해 대학 설립을 자유화한 이래 대학생 수는 급격하게 늘었지만, 이에 비례해 도서관 열람실 좌석을 확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학 총 예산 대비 대학도서관 예산은 0.9%에 불과해 ‘한국도서관기준(2013)’이 제시한 5%에 한참 못 미친다. 4년제 대학 재학생 1인당 자료구입비는 2012년 기준 약 11만5000원에 불과해 ARL(Association of Research Libraries) 최하위 대학의 40% 수준에 불과하다. 그리하여 국내 대학도서관 장서 보유 상위 6곳을 모두 합쳐도 미국 하버드대 도서관 한 곳에도 미치지 못하는 실정이다.

대학도서관의 형편이 좋지 못하다고 해서 주민에의 개방을 무조건 거부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그러나 공부를 업으로 하는 학생과 교원에 대한 사회의 배려는 있어야 한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주민들이 쉽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마을도서관 등 공공도서관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그리하여 TV와 스마트폰보다 도서관을 더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서관이 각종 시험공부를 위한 독서실이 아니라, 진정한 지혜의 보고로 이용돼야 한다.

정병호 서울 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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