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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미디어믹스 원조는 1926년 나온 멍텅구리”

입력 : 2014-11-28 20:53:48 수정 : 2014-11-28 22:5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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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 나누며] ‘한국만화 미디어믹스의 역사’ 출간한 김성훈씨 ‘1920년대에도 ‘미생’이 있었다?’

최근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 ‘미생’은 잘 알려져 있듯 동명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그러나 이런 만화 미디어믹스(하나의 콘텐츠를 여러 매체에 활용한다는 개념) 작품이 일제강점기에도 있었다는 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최근 나온 책 ‘한국만화 미디어믹스의 역사’는 1926년 신문 연재만화 ‘멍텅구리 헛물켜기’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 ‘멍텅구리’가 국내 최초 만화 미디어믹스 사례라고 설명하며 “문화적 혁명에 가까운 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관련 영상자료는 현재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단다. 책을 쓴 김성훈 만화비평지 ‘엇지’ 편집위원은 28일 전화통화에서 “‘멍텅구리’를 보신 분이 있다면 저한테 꼭 말씀해주셨으면 좋겠다. 한국영상자료원에 사진만 남아 있더라. 진짜 한 번 보고 싶다”고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과거 대중문화를 보존해야 할 자산이라 여기는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죠. 제가 연구를 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뭔지 아세요? 남아 있는 자료가 별로 없다는 거예요.(웃음) 그동안 대중문화 중에서도 만화에 대한 인식이 유달리 나빴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한국만화 미디어믹스의 역사’는 만화를 원작으로 한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시대별로 다루고 있다. 놀라운 건 전체 인구 상당수가 문맹이었던 1920년대에 이미 만화의 미디어믹스가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도전은 곧 단절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김성훈 ‘엇지’ 편집위원이 최근 출간한 자신의 책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1년 전부터 제주도에 거주 중인 그는 “젊었을 때 만화를 그리고 싶었는데 실력도, 인내력도 부족했다. 그래도 만화는 너무 좋아해 글을 통해서라도 만화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성훈 편집위원 제공
“해방 전후 혼란과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우리 대중문화는 성장을 멈췄어요. 이런 시대적 배경 때문에 다시 만화 원작 영상물이 등장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죠. 멍텅구리 이후 30년 넘게 시간이 흐른 뒤에야 만화 ‘고바우 영감’을 영화화한 ‘고바우’가 등장했어요.”

그러다 만화 미디어믹스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한 건 1980년대다. 김 위원은 “1986년 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을 원작으로 한 영화 ‘이장호의 외인구단’이 엄청난 인기를 얻으면서 미디어믹스 사례가 급격히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작품 수가 늘어났지만, 몇몇 유명 만화가에 쏠리는 경우가 많았어요.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하시는 허영만, 이현세 선생부터 ‘신의 아들’의 박봉성, ‘발바리의 추억’의 강철수 등 유명 작가의 명성에 기대어 제작되는 영화가 많이 나왔죠.”

이렇게 나온 만화 원작 영화들은 당시 정치·사회적 배경에 영향을 받았다는 게 김 위원의 설명이다. 그는 “당시 군사정권이 펼친 3S(스크린·스포츠·섹스) 정책과 긴밀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말했다.

“1980년대에 권투, 야구 같은 스포츠를 소재로 한 만화가 많이 발표됐어요. 그런 작품이 인기를 끌면서 영화화도 된 거고, 1991년엔 만화 원작 성인영화인 ‘러브러브’, ‘변금련’, ‘돈아돈아돈아’가 한꺼번에 개봉했죠. 3S 정책을 키워드로 이런 흐름을 이해할 수 있겠죠?(웃음)”

김 위원은 “2000년대 들어서는 만화 미디어믹스가 물이 올랐다”고 평가했다. 작품 수가 급증한 건 물론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는 경우도 자주 찾아볼 수 있게 됐다. 영화 ‘올드보이’, ‘타짜’, ‘미녀는 괴로워’, 드라마 ‘풀하우스’, ‘각시탈’, ‘궁’ 등이 모두 성공적인 미디어믹스의 사례다. 올해는 ‘미생’이 ‘대박’을 터뜨리면서 만화의 산업적 가치에 대한 관심이 더욱 달아오르고 있다.

그러나 김 위원은 “만화를 보는 부정적인 시선이 아직까지 100% 사라진 게 아니다. 분위기는 급작스레 변할 수 있다”며 우려를 표시하기도 했다. 올해 학교폭력 미화 논란이 불거졌던 웹툰 ‘일진의 크기’의 경우처럼, 만화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갑작스럽게 번질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1997년 청소년보호법이 시행되면서 성인만화 잡지가 잇따라 폐간됐어요. 이현세 선생의 ‘천국의 신화’는 재판까지 갔고, 웹툰 ‘열혈초등학교’도 언론에 의해 학교폭력 미화 논란에 휩싸인 적 있잖아요. 이렇게 내용을 규제하려는 사회 움직임은 만화가에게 자기검열을 요구하고, 결국 만화의 가능성을 옭아맬 수밖에 없어요.”

그는 “내용은 독자가 판단할 몫이고, 그에 따른 책임은 작가가 지면 된다”는 입장이다. 김 위원은 “다른 매체보다 만화가 뛰어난 점이 뭔지 아느냐? 바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표현이 가능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드라마, 영화 등은 물질적인 여건이 꽤 높은 수준으로 받쳐줘야 생산이 가능하잖아요. 그런데 만화는 자유로워요. 펜 하나만 있으면 뭐든 그려낼 수 있거든요. 그러니 발동이 걸린 상상력이 뻗어나가는 데 발목을 잡는 요소가 다른 매체보다 훨씩 적다는 거죠. 이런 이유로 만화 미디어믹스가 드라마, 영화를 더욱 풍부하게 만들고 있는 거예요.”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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