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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융성’ 시대, 장애인 예술을 말하다] ‘사각지대’ 놓인 장애인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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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1-24 23:42:46 수정 : 2014-11-24 23:4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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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 집필공간 단 한 곳뿐… 작품발표도 바늘구멍 뚫기
사각지대는 어느 분야나 존재하기 마련이다. 정부 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대중의 관심이 다른 곳에 쏠려 있을 때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사각지대가 발견되곤 한다. 장애인 예술에선 ‘문학’이 그렇다. 미술, 무용 등 분야가 미약하게나마 정부 지원을 받고 있는 것과 달리 엄연히 예술의 한 분야인 문학 분야는 정부의 지원과 관심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왔다.

대한민국장애인창작집필실 개관식 모습.
◆한 곳뿐인 집필실도 없어질 처지


현재 장애인 문인을 위한 집필 공간은 전국에 단 한 곳뿐이다. 대전에 있는 ‘대한민국 장애인 창작 집필실’이 그것이다. ‘장애인인식개선오늘’이라는 시민단체가 2010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공모한 ‘장애인 전용공간 임차 지원사업’에 선정돼 마련한 공간이다. 그동안 이 집필실을 직간접적으로 거쳐 발표된 책만 35권이다. 발굴한 작가는 51명에 이른다.

정부 지원은 전혀 없다시피하다. 지방자치단체가 주는 지원금만으로는 매월 200만원에 육박하는 집필실 운영비를 대기에도 빠듯하다. 집필실을 운영하는 박재홍 대표는 “장애인 창작 집필실은 중중 장애인이 직접 와서 문학에 관해 토론하고 집필하는 공간인데도 휠체어 리프트 등 장애인 관련 편의시설 설치비 등에 관한 지원을 한 푼도 받을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결국 박 대표가 사비를 털어 운영비를 충당해왔다. 그마저도 최근 공모사업 마감에 따라 임차 지원금을 반납해야 할 위기에 내몰렸다.

장애인 문인들의 창작 결과물을 선보일 매체 역시 크게 부족하다. 현재 장애인 문인들이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통로는 계간 문예지 ‘솟대문학’과 장애인 창작 집필실이 운영하는 출판 지원 프로그램 외에는 없어 바늘구멍보다 좁은 실정이다. 자비로 책을 펴내거나 언론사 신춘문예 같은 높은 문턱을 넘어야 하는 것이다.

장애인 문학 발전을 위해선 그 토대부터 다질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2년 국내에서 발간된 서적 중 장애인이 읽거나 들을 수 있게끔 대체자료로 변환된 서적의 비율은 겨우 5%에 그쳤다. 시각장애 또는 청각장애를 가진 국민이 접근할 수 있는 자료는 20종 가운데 한 종꼴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이렇듯 열악한 지식정보 접근성 문제가 장애인 문학의 토양을 척박하게 만든다.

대통령 직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는 올해부터 2018년까지 적용되는 제2차 도서관발전종합계획을 내놓으며 “대체자료 비율을 2018년까지 10%로 늘리겠다”고 약속했다. 이를 놓고 장애인들 사이에 ‘보여주기식 숫자놀음’에 그쳐선 안 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장애인 문인들은 대체자료의 ‘다양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2013년 중봉조헌문학상 대상을 받은 1급 시각장애인 손병걸 시인은 “조금 전문적인 인문학 서적이나 다양한 고전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전국에 단 하나뿐인 장애인 문인 전용 집필실인 ‘대한민국 장애인 창작 집필실’의 모습. 집필실을 운영하는 시민단체 ‘장애인인식개선오늘’의 박재홍 대표는 “단순히 공간만 유지할 게 아니라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게끔 정부 차원의 지원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애인인식개선오늘 제공
◆표절 사각지대에 놓이다


이처럼 열악한 현실을 비집고 세상에 얼굴을 내민 장애인 문인의 작품은 저작권 등 측면에서 법적 보호를 거의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엉뚱한 작가의 이름이 붙어 온라인을 떠돌거나 고교생이 작품을 도용해 백일장에서 수상을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 때문에 장애인 문인들은 “우리의 권리가 너무나 무시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린다.

2013년 뇌성마비 장애인 김준엽 시인은 자신의 시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이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으로 제목이 바뀌어 온라인을 떠돌아다니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문장 몇 개를 조금 수정했을 뿐 시의 흐름이나 주제는 완전히 똑같았다.

확인해 보니 그 시는 1995년 한 문예지에 발행인 이름으로 게재됐다. 그해 김 시인은 시집 출간을 위해 한 출판사에 ‘내 인생에 황혼이 들면’ 등 자작시들을 보냈다. 이 문제를 조사해 온 ‘솟대문학’ 측은 저작권 반환을 위한 소송을 준비했으나 증거 부족으로 현재는 손을 놓고 있다.

표절 사례는 이뿐만이 아니다. 전신마비 장애인 김옥진 시인의 작품 중 하나를 표절했다는 의심을 받아 온 모 대학교수는 잘못을 인정하고 해당 시를 삭제했다. 한 여고생이 장애인 문인의 단편소설을 베껴 쓴 작품으로 수상한 다음 그 경력에 힘입어 대학에 합격한 사례도 있다. 정승재 장안대 행정법률과 교수는 “정부의 장애인 문인 지원 대책에 적극적인 저작권 보호도 반드시 포함시켜야 한다”며 “장애인 문인들의 저작권 침해 피해를 막을 인력 확충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서필웅·김승환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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