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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일상 톡톡] 여름 끝, 빙수집 '멘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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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10-03 11:17:32 수정 : 2014-10-03 13: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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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수, '효자 메뉴'서 '천덕꾸러기'로 전락한 까닭은?

“비수기 상품 메뉴도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는데 막상 창업해 보니 그런 얘기가 쏙 들어갔습니다. 커피나 기타음료로 할리스·스타벅스·파스쿠찌 등의 주변 카페들과 어떻게 경쟁해야 할지 걱정입니다.” (유명 빙수전문점 창업주)

올 여름 팥빙수 열풍에 힘입어 서울·수도권을 비롯 전국 각지에 들어선 빙수전문점들이 과잉경쟁에 접어들면서 매출 부진을 겪고 있다. 앞 다퉈 빙수점을 창업한 개인사업자들이 찬바람이 부는 가을·겨울이 오자 울상을 짓고 있는 것이다.

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올해 여름 창업시장의 큰 특징은 그동안 커피전문점이나 아이스크림전문점 등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않았던 팥빙수가 젊은 소비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었다는 점이다. ▲ 밀탑 ▲동빙고 ▲엘가 ▲설빙 ▲옥루몽 등은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이른바 ‘대박집’으로 등극했다.

이는 얼음 입자가 눈처럼 부드러운 ‘눈꽃빙수’가 등장했고, 물이 아니라 우유를 직접 얼려 사용하는 ‘우유빙수’가 탄생하면서 새로운 변신에 나섰으며 토핑도 달라졌기 때문으로 업계는 분석하고 있다.

유명 빙수전문점 관계자는 “별다른 기술 없이 소자본으로 창업할 수 있어 올 여름 예비창업자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며 “기존의 식음료 전문점에서 탈피한 차별화된 빙수 전문 카페가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하지만 빙수의 가장 큰 단점은 판매가 여름에 집중되는 ‘계절적 한계성’이다. 물론 겨울에도 냉면을 즐기는 사람이 있듯 날씨에 상관없이 빙수를 찾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빙수만 놓고 보면 겨울 매출과 여름 매출은 큰 차이가 있는 게 사실이다.

더불어 빙수라는 품목이 복제가 쉬운 아이템으로 진입 장벽이 높지 않아 이제 시작된 빙수 바람이지만 소비자들이 여기저기 비슷한 브랜드나 메뉴를 접하게 되면서 일각에선 빙수 시장이 벌써부터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는 지적도 조심스럽게 흘러 나오고 있다.

한 빙수전문점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최근 더위가 끝나고 손님이 줄면서 개점 시간도 기존 오전 10시에서 11시30분으로 1시간30분 정도 늦췄다”면서 “올 가을·겨울을 투썸플레이스·엔제리너스·탐앤탐스 등 인근의 커피전문점들과 경쟁해 어떻게 버텨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창업주 B씨는 “처음 업체에서 비수기를 겨냥한 상품 메뉴 개발에 힘쓰고 있어 걱정이 없을 거란 식으로 얘기하더니, 막상 창업하고 보니 얘기가 쏙 들어갔다”며 “당장 닥쳐온 가을·겨울이 걱정”이라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뿐만 아니라 빙수 원료가 점차 고급화되고 제작 과정이 까다로워지면서 개인 카페 업주들은 대기업의 저단가 시스템을 따라가지 못해 허덕이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의 한 주택가 골목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C씨는 고민 끝에 지난 6월 빙수를 시작했다.

그는 “주변의 다른 카페들이 너도 나도 빙수를 하니까 안 할 수 없어 시작하게 됐는데, 노동력이 다른 음료의 4배 이상 들고 재료값도 비싸다”며 “가장 싼 아메리카노 한 잔보다도 남는 게 없다”고 설명했다.

업주들의 또 다른 고민은 바로 ‘순이익’이다. 얼음에 팥과 과일시럽, 연유를 뿌려주는 값싼 ’토종 빙수’로는 이제 명함도 못 내미는 상황이다. 대기업 카페들과 특급호텔들이 망고빙수나 블루베리빙수·흑임자빙수 등 단가 높은 빙수로 소비자들의 입맛을 잔뜩 끌어올려 놓았기 때문.

올 여름 큰 인기를 끌었던 ‘눈꽃빙수’는 고운 입자의 눈꽃 얼음을 만들어주는 전용 기계만 500만∼900만원이나 한다. 즉, 순이익 3000원짜리 빙수를 3000그릇 팔아야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것이다. 개인 카페들은 하루 20∼30그릇을 팔면 많이 팔았다고 본다. 사실상 여름 한철 장사인 빙수로는 기계 투자비용을 뽑아내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빙수를 만드는 과정이 지나치게 까다로운 것도 ‘불효 품목’으로 꼽히는 이유다. 평균 4∼5명 아르바이트생을 두고 영업하는 프랜차이즈 카페와 달리 ‘1인 체제’로 운영되는 개인 카페들은 빙수 주문이 들어오면 10여분간 빙수 제작에만 매달려야 한다. 한 카페 업주는 “빙수를 만드는 동안 커피 주문이 들어오면 기다리는 손님 눈치를 보느라 죽을 맛”이라고 털어놨다.

이 때문에 빙수를 주력 메뉴로 내세웠던 개인 카페들은 여름이 지나고 매출이 급락하면서 아예 망하는 경우도 생긴다. 또 다른 카페 업주는 “카페는 겨울이 시작되는 11월부터 매출이 급속히 줄다가 간신히 1∼2월을 버티고, 3∼4월에 결국 영업을 포기하는 사람이 많아 봄에 매물이 쏟아진다”고 설명했다.

실제 한 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각종 음식·음료업 중 지난 3년간 연평균 사업체 증감률이 가장 높은 품목은 커피(16.7%)였다. 앞 다퉈 커피전문점을 창업한 개인사업자들이 ‘빙수 대란’에 울상을 짓고 있는 것이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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