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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검시 리포트] 범죄와 무관하면 부검 안 해…유명무실한 '행정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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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9-16 19:09:20 수정 : 2014-09-16 22: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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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분쟁·의료사고 느는데…검시의 또 다른 적폐들
김모(47)씨는 2012년 1월28일 직장 동료와 경기 양평 용문산을 등산했다. 1시간30분가량 산행 끝에 정상을 눈앞에 둔 김씨는 갑자기 가슴에 통증을 느끼고 쓰러졌다. 다시 1시간30분 만에 병원 응급실에 도착해 심폐소생술을 했지만 숨을 거뒀다. 응급실 담당 의사는 심근경색이 의심되는 김씨 사인을 그냥 ‘미상’으로 적어 시체검안서를 발급했다. 경찰은 ①사망 당시 목격자가 있었고, ②타살 혐의점이 없으며, ③유족이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검하지 않고 사인미상인 상태로 사건을 종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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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불명의 김씨 죽음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문제가 됐다. 김씨는 심근경색 진단 시 2000만원을 받을 수 있는 보험에 특약가입한 상태였다. 보험사는 사인미상이라는 이유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시체검안서상 사인이 미상이고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규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흉통을 호소하고 쓰러진 사실만으로 급성심근경색증 때문에 죽었다고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족은 가족을 잃은 슬픔에 금전적 손해까지 입게 됐다.

국내 검시제도하에선 이런 억울한 사례가 흔하다. 검시가 오로지 범죄 연관성만 따지는 ‘사법검시’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보험분쟁, 전염병 예방, 의료사고 조사 등에서도 검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나 범죄와 무관한 죽음의 이유를 밝히는 ‘행정검시’는 사실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제도는 갖춰져 있지만 사실상 전무

법에서는 행정검시를 할 수 있는 경우를 3가지로 정하고 있다. ‘시체 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 제6조에서는 보건복지부 장관, 국방부 장관 또는 광역·기초자치단체장이 시체를 해부하지 않고는 사인을 알 수 없거나 이로 인해 국민 보건에 중대한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시체의 해부를 명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20조에서는 질병관리본부장에게 국민 건강에 중대한 위협을 미칠 우려가 있는 감염병으로 사망한 것이 의심되는 때 시체 해부를 명할 수 있는 권한을 줬다. 경찰청의 행정검시규칙에서는 범죄 연관성이 없더라도 수재, 낙뢰, 파선 등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자 또는 행려 병사자를 검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이뤄진 행정검시는 없다. 국내 부검 대부분을 맡고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2012년 실시한 5159건의 부검 중 경찰에서 의뢰한 것이 4907건, 해양경찰 211건, 군 17건, 기타(교도소 등) 24건이었다. 경찰이 하는 검시가 사법검시 위주인 것을 생각하면 행정검시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윤성 서울대 교수(법의학 교실)는 “교통사고가 나서 타고 있던 사람이 다 죽었을 경우 운전자가 음주운전을 했다고 해도 탑승자가 다 죽었기 때문에 수사기관에서는 더는 수사하지 않는다”며 “누가 운전했느냐에 따라 보험금 지급이 달라지는데 우리나라 검시제도는 검사가 지휘권을 가진 범죄수사에만 관심을 갖는 것이 큰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 4일 경남 창원시 진북터널 근처에서 시내버스가 옆으로 넘어지면서 승용차를 덮친 모습. 교통사고가 났을 때 보험금 지급 등을 위해 부검을 해야 할 때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행정검시가 사실상 없다.
연합뉴스
◆제도·인식 부족이 원인


행정검시가 등한시되는 것은 검시를 총괄하는 기구가 없는 등 검시제도가 체계적이지 않은 영향이 크다.

검시 관련 규정은 형사소송법, 의료법,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시체 해부 및 보존에 관한 법률,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행정검시규칙 등 최소 6가지 이상이다. 규정이 여러 개라는 것은 권한이 분산돼 있어 체계가 없다는 뜻이다.

검시를 총괄하는 기구가 없는 상황에서 모든 변사체는 그나마 검시체계가 갖춰진 수사기관 소관이 되고 있다. 자연스럽게 행정검시는 이뤄지지 않고 사법검시 위주로 흘러간다. 사인이 명확하지 않아 받지 못하는 보험금이 얼마나 되는지, 의료사고나 산업재해와 관련 있지만 그냥 처리되는 죽음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검시를 꺼리는 사회적 인식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한국에서는 장례 절차를 중시하고, 시체를 훼손하는 것을 좋지 않게 생각한다. 이는 범죄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닌 상황에서는 부검을 꺼리는 현실로 이어진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2012년 전국(제주 제외) 성인남녀 1000명에게 물어봤더니 검시를 꺼리는 이유 중 ‘검시가 신속하게 처리되지 못해 장례일정과 절차에 미치는 영향이 우려된다’는 것에 대해 45.5%가 조금 그렇다, 14.8%가 매우 그렇다고 답했다.

‘몸이 잘린다는 것이 두벌죽음이라 여겨 비인간적이다’라는 것에는 조금 그렇다 27.8%, 매우 그렇다 11.7%로 나타났다. 행정검시 관련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은 에스제이 손해사정의 최순진 대표는 “유족에게 부검을 왜 안 했느냐고 물으면 대답이 다 똑같다”며 “‘(사망 당시에는) 경황도 없고 어느 누가 부검을 원하겠느냐’고 말한다”고 전했다.

특별기획취재팀=박성준·김수미·오현태 기자 specia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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