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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총사' 세자빈 강씨, 역사에서의 모습은?

입력 : 2014-09-07 21:16:02 수정 : 2014-09-07 21: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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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삼총사'에서 서현진이 연기하고 있는 소현세자빈 강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삼총사'는 조선 인조 시대 청나라의 위협에서 조선을 지키는 청년무사 박달향(정용화 분)과 삼총사의 활약을 그린 퓨전 액션 사극으로 서현진은 소현세자(이진욱 분)의 아내인 세자빈 강씨로 열연하고 있다.

극중 소현세자빈 강씨는 박달향의 첫 사랑이자 소현세자의 아내가 된 인물로 서현진은 참하고 단아한 외모지만 강단있는 성격과 한 남자의 사랑을 갈망하는 여인의 면모를 잘 표현하고 있다. 세자빈 강씨는 훗날 소현세자의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실제 역사에서 세자빈 강씨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삼총사'에서는 소현세자가 첫 사랑 미령을 잊지 못해 세자빈 강씨와는 소원한 사이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세 아들을 출산할 정도로 금슬이 좋았다는 것이 역사의 기록이다.

병자호란이 발발하고 인조는 소현세자와 왕실여인들을 먼저 강화도로 피난시켰는데 강화도마저 청나라 군대에 점령 위기에 처하자 세자빈 강씨는 아들인 원손과 왕실 일원들을 피신시키고 자신은 자결을 택할 정도로 강단을 발휘한다.

결국 전쟁은 조선이 항복을 하면서 끝이 났고, 소현세자와 인조의 차남 봉림대군이 청나라에 볼모로 가는 것으로 강화가 체결됐다. 세자빈 강씨도 소현세자와 함께 청나라에 볼모로 가게 된다. 구중궁궐이 세상의 전부였던 세자빈은 조선을 벗어나 넓은 세상을 보게 됐다.

세자빈 강씨의 남다른 풍모를 알려주는 몇가지 일화가 있다. 청나라 심양에 도착한 소현세자 일행은 청나라 장수 용골대에게 "황제가 있는 곳에서는 왕의 부인도 가마를 탈 수 없으니 세자빈도 가마에서 내려 말을 타야 한다"고 말하자 세자빈은 스스로 가마에서 내려 말에 올랐다.

당시 조선에서는 아녀자는 말을 타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고, 세자빈은 가마를 타야한다는 법도가 있었지만 법도 때문에 여러 사람을 고생시킬 수 없다는 마음으로 실리를 위해서라면 체면을 버리는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청나라에서 볼모 생활을 하게된 소현세자 일행은 누르하치에 이어 홍타이지가 황제로 등극해 명나라를 멸망시키는 것을 보게 된다. 또한 포로로 잡혀온 조선인들의 끔찍한 상황을 보게 된다. 세자빈 강씨는 패전국 조선의 나약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세자빈 강씨는 볼모로 잡혀온 나약한 왕실 여인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자빈은 청나라와 조선의 무역에 개입해 이익을 남겼고, 세자빈의 수완은 이내 청나라 고위층에도 알려지게 됐다.

세자빈 강씨가 장사를 통해 이익만을 남긴 것이 아니었다. 세자빈은 막대한 이익으로 소현세자가 청나라 대신 및 관료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지원했고, 노예가 된 조선인 포로들을 해방시켜 고향으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세자빈 강씨의 노력으로 소현세자는 조선에 적대적인 청나라 실력자들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게 됐다. 또한 조선 포로들을 속환시키기 위해 청나라 황제가 하사한 토지를 개간해 농사를 지어 황무지였던 땅을 곡창지대로 바꾸기도 했다.

세자빈 강씨가 수완을 발휘할수록 소현세자의 입지는 강해졌지만 인조와 조선 기득권 대신들의 불안감을 커져갔다. 인조는 청나라에서 인정받는 아들 소현세자에 대한 두려움과 기존 조선 여인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인 며느리 세자빈에 대한 증오를 키우게 됐다.

소현세자는 청나라 대신 및 관료들 뿐만아니라 청나라를 방문한 선교사들과도 교분을 가졌고, 국제정세에 눈을 뜨게 됐다. 청나라의 국력과 서양의 신기술을 접한 소현세자는 조선에 돌아가면 이를 국정에 반영하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하지만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씨의 운명은 비극이 기다리고 있었다. 조선에 돌아온 소현세자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했고, 세자빈 강씨는 인조를 독살했다는 누명을 쓰고 죄인 신분이 됐다. 인조를 비롯한 조선 기득권 신하들의 마수가 뻗친 것이다.

세자빈은 지위를 박탈당했고, 소현세자의 측근들 모두 숙청을 당했다. 하지만 세자빈을 모시던 궁녀들은 모진 고문에도 세자빈의 결백을 주장했다. 며느리에 대한 증오가 폭발한 인조는 결국 세자빈에게 사약을 내렸고, 세자빈 강씨가 세상을 떠나자 구심점을 잃은 궁녀들은 그제서야 세자빈의 죄를 토설했다.

비극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세자빈의 가족은 멸문지화를 입었고, 두 아들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막내 아들 석견도 목숨을 잃을 위기를 맞았지만 숙부인 효종의 배려로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세자빈 강씨는 당시 조선 여인들과는 사뭇 다른 행보를 걷던 인물이다. 세자빈으로 전란을 맞이했고,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다. 하지만 비극적인 상황에 좌절하지 않고 위기를 기회로 삼아 능력과 수완을 발휘했다.

소현세자와 세자빈 강씨의 안타까운 죽음은 조선 왕조가 국제 정세를 확실히 파악하고, 선진사회로 갈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는 점에서 역사에 안타까움을 남기고 있다.

여창용 기자 ent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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