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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선명 총재 성화 2주년 특별기획-기술입국 초석을 놓다] (하) 최고 엔지니어들의 증언

입력 : 2014-08-11 21:52:41 수정 : 2014-08-12 02:5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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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총재 뜻따라 기계공업 집중… 가난 극복 전기”
통일중공업 출신 유정상 前 TIC 대표
“통일중공업은 특별한 기업이죠. 통일중공업은 자사의 고급 인력이 동종업계에서 일하도록 해 국내 기계공업의 수준을 높였습니다.”

통일중공업에서 청춘을 불살랐던 유정상(사진) 전 TIC(티아이씨) 대표가 평가하는 통일중공업의 특이한 역할이다. 1998년 부도 처리돼 S&T중공업으로 이름을 달리하고 있는 통일중공업이 국내 공업분야 자생력 증대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유 전 대표는 통일중공업 설립은 문선명 총재의 적극적 의지 덕분에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문 총재는 1950∼60년대부터 기계공업에 집중했다”며 “공업 발전의 육성을 통해 한국이 가난을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고 밝혔다. 공작기계·자동차·방위 산업 육성에 적극 나섰다는 설명이다. 공작기계 분야에 앞섰던 독일과 일본의 선진 기술 수입에도 적극적이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국내 업체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일례로 현대·대우·쌍용 등 완성차 업체에 최고급 부품을 제공했다. 변속기·조향장치·구동장치로 이뤄진 자동차 조립의 모방에 그쳤던 그간의 한계를 벗어난 것이다. 독일·일본과 기술 제휴로 통일중공업이 선제 대응한 덕분이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유 전 대표는 “통일중공업은 부침을 거듭했지만, 한국 중공업의 인재 양성소와 산파로 역할했다”며 “통일교 재단이 1조원 넘는 투자로 국내 중공업의 초석을 다졌으며, 통일중공업 출신 기술자들이 자동차 등 중공업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다”고 새삼 강조했다.

통일중공업은 1959년 경남 창원에 설립된 예화산탄공기총제작소를 모태로 하고 있다. 1973년 경남 창원공단으로 회사를 옮긴 통일중공업은 첨단 장비와 유능한 기술자들이 모여들면서 한국의 대표적인 중공업 기업으로 거듭났다. 직원만 5000명이 근무하는 대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1970∼80년대 고도성장을 거듭하며 한국 중화학 공업의 대표주자로 이름을 각인했다. 여러 회사명을 사용하다가 1985년부터 통일중공업으로 이름을 바꿨다.

성장을 거듭하던 통일중공업은 1980년대 후반 노사분규와 1998년 외환위기 여파로 부도 처리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통일중공업의 축적된 역사와 노하우는 국내의 동종 업체에 수용됐다. 다수 인력은 현재의 S&T중공업으로 옮겼다. 계열사였던 진흥기계·동양기어·선일열처리·예화공업·화신·삼정공업·덕흥공업·삼흥공업·대성정밀 등은 독자생존의 길을 걸었다. TIC는 통일중공업의 협력업체인 예화공업으로 출범해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업체다.

유 전 대표는 “독자생존을 모색하던 기업들이 구조조정과 합병을 거쳐 TIC로 재탄생하게 됐다”며 “재탄생에는 문 총재의 지원이 큰 힘이 됐다”고 회고했다.

2000년대 초반 문 총재가 부도 처리된 통일중공업 계열사들이 어렵게 버티고 있던 창원의 현장을 50억원을 지원해 첨단장비 구입을 도왔다는 것이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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