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위안부 결의안’ 채택 5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눈물을 흘렸다. 미 의회에 처음으로 위안부 문제를 제기한 레인 에번스(63) 전 하원의원을 그리워하며 흘린 눈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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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왼쪽) 미국 대통령이 2008년 11월4일 당선 직후 투병 중인 레인 에번스(오른쪽) 전 연방 하원의원을 만나 감사의 뜻을 전하고 있다. 플리커 캡처 |
한국에서 ‘레인 에번스’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건 그가 투병생활로 외부와 소식을 끊은 탓이다. 1983년부터 일리노이주 17선거구에서 내리 12선을 한 그는 파킨슨병으로 2006년 11월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위안부 결의안 채택을 위해 그가 뿌린 씨앗은 2007년 1월 말 바통을 이어받은 혼다 의원의 노력으로 6개월 만에 꽃을 피웠다. 투병 중에도 결의안을 낼 정도로 애쓰다 워싱턴을 떠나는 그에게 경의를 느낀 동료 의원들의 지지와 재미교포들의 대대적인 풀뿌리 운동이 어우러졌다. 정작 그는 미 하원에서 결의안이 채택되는 현장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는 고향인 일리노이주 록아일랜드에 있는 요양시설에서 간병인 도움을 받아 생활하고 있다. 결혼을 하지 않아 돌봐줄 가족조차 없다. 2009년 딕 더빈 상원의원이 나선 모금과 재산을 처분한 돈으로 연간 10만달러가량의 비용을 충당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자는 최근 그의 소식을 듣기 위해 미 언론에 보도된 요양시설과 일리노이주 17선거구 민주당 현역 의원의 사무소, 일리노이주한인회 관계자에게 연락했으나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워싱턴 한 소식통은 “에번스 전 의원이 파킨슨병으로 거동을 못하고 의사소통도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안다”면서 “몇 년 전 우리 정부 관계자가 감사의 뜻을 전하는 과정도 그래서 힘들었다”고 전했다.
에번스 전 의원은 고교 졸업 후 해병대에 입대해 베트남전 당시 오키나와 미군기지 등에서 근무하다 1971년 전역했다. 이후 워싱턴 조지타운대에서 법학박사를 받은 뒤 가난한 사람 등을 위해 변호사로 활동했다. 하원의원으로서는 참전군인 권리 보호를 위한 입법 활동 등에 앞장섰다.
그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에도 큰 역할을 했다. 2003년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이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할 때 지지 선언으로 정치적 힘을 실어줬다. 2008년 11월4일 대선에서 승리한 오바마 대통령이 시카고 그랜트파크에서 역사적인 당선 연설을 하기 몇 시간 전 한 호텔 방에서 몸이 불편한 그를 만나 허리를 구부린 채 손을 맞잡고 고마움을 나타냈을 정도다.
워싱턴=박희준 특파원 july1s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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