亞 역사 인식 기초, 인류 자산으로 평가받을 가치 충분 시인 박남준은 ‘그 곱던 얼레지꽃’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노래했다. “다 보여주겠다는 듯, 어디 한번 내 속을 아예 들여다보라는 듯/ 낱낱의 꽃잎을 한껏 뒤로 젖혀 열어 보이는 꽃이 있다/ 차마 눈을 뜨고 수군거리는 세상 볼 수 있을까/ 꽃잎을 치마처럼 뒤집어쓰고 피어나는 꽃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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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출 도쿄 특파원 |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지난달 20일 검증을 명분으로 고노담화를 밑에서부터 뒤흔들었다. 즉 한·일 간 외교자료를 검증해보니 담화는 역사적인 진실과 상관 없이 한·일 간 조율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 것이다. 고노담화가 역사적인 진실이 아닌 외교적 산물로 격하되는 순간이었다.
고노담화는 무엇인가. 일본 정부가 200건 이상의 정부 자료를 발굴하고 피해자 16인의 구술조사까지 더해 1993년 8월4일 발표한 담화이다. 정식 이름은 ‘위안부 관계조사 결과 발표에 관한 내각관방장관 담화’. 일본군 위안부의 강제성 및 강제연행을 인정하고 사죄했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적지 않다.
우리로선 아베 정권의 일방적인 담화 검증에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이다. 검증 의도부터 대상, 과정, 논거와 결과, 부실한 검증팀 등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결과는 물론 검증 자체도 인정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입장이다.
그럼에도 이번 검증으로 고노담화가 상처를 입은 것은 분명하다. 담화가 ‘외교적 타협의 산물’이라는 인상을 받게 돼 진실성과 신뢰성의 훼손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당장 일본 우익들은 “외교적인 타협의 산물임이 드러났다”며 환호하며 담화 수정을 요구한다. 일각에선 고노 요헤이(河野洋平) 전 관방장관을 국회로 불러내자는 주장조차 나온다.
고민은 고노담화의 신뢰성이 훼손됐지만 담화를 포기할 순 없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과 배상을 거론하지 않는 등 미흡한 점도 적지 않지만, 그럼에도 한·일을 넘어 위안부 관련국들이 거의 유일하게 동의할 수 있는 일본 측 담화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고노담화 강화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먼저, 위안부 관련 각국 정부와 학계에 담화 발표 이후 20년간 이뤄진 학술적 성취를 집대성해 담화를 내용적으로 검증해 달라고 제안한다. 위안부 연구와 자료 발굴은 담화 발표 이후 세계 곳곳에서 본격화된 측면이 있고, 담화가 수백건의 자료를 바탕으로 이뤄진 만큼 ‘진정한 검증’도 연구 성과를 기반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고노담화를 계속 유지하겠다’고 밝힌 일본 정부에는 신뢰 회복 차원에서 고노담화의 각의 결정과 함께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사과 및 관련 조치를 즉각 실시하라고 촉구한다. 검증에 따른 실망을 감안하면 새 연구 성과를 반영해 진전된 내용으로 각의 결정을 하는 ‘성의’ 정도는 필요하고,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일본 정부가 할머니들에게 사과하고 보상해야 할 근거는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무라야마담화와 함께 고노담화의 노벨평화상 수상 운동을 펴나가자고 아시아 시민들에게 제안하고 싶다. 고노담화는 20년간 무라야먀담화와 함께 아시아 공존을 위한 역사인식의 기초였다는 점에서 인류 자산으로 평가받을 가치는 충분하다. 국가주의의 ‘횡행’ 속에서 소중한 아시아 공공재로서 평가가 늦은 감조차 있다. 박 시인의 시는 이렇게 이어진다.
“아직은 이른 봄빛, 이 악물며 끌어모아 밀어올린 새잎새/ 눈물자위로 얼룩이 졌다 피멍이 들었다/ 얼레꼴레 얼레지꽃 그 수모 어찌 다 견뎠을까/ 처녀로 끌려갔던 연분홍 얼굴에/ 얼룩얼룩 얼레지꽃 검버섯이 피었다/ 이고 선 매운 봄 하늘이 힘겹다 참 고운 얼레지꽃”
김용출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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