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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쉽고 편하게 쓰자’ 인식 만연… 표절 드러나도 쉬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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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7-03 06:00:00 수정 : 2014-07-03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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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사회 도약 프로젝트] ⑧ 연구부정 관행 뿌리뽑자 2005년 전 세계를 경악케 한 서울대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사건은 연구윤리 토양이 척박했던 우리 사회에 경종을 울렸다. 이듬해 김병준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현 교육부) 장관마저 논문 문제로 취임 18일 만에 물러나면서 국가 차원의 연구윤리 확립 필요성에 대한 여론이 들끓었다. 결국 2007년 2월 정부는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연구윤리지침)을 만들었다. 각 대학과 정부출연 연구기관 등도 줄줄이 정부 지침에 따라 자체 윤리규정을 마련했다. 하지만 황우석 사태의 교훈은 오래가지 못했다. 여전히 ‘관행’에 기대거나 성과 압박에 떠밀린 연구부정이 비일비재하다는 게 중론이다. 연구자들이 왜 남의 연구 성과를 몰래 훔치거나 가로채려는 하는지 진단하고 근본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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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윤리 불감증 실태

“해외에서 한국 대학들의 석·박사 학위는 잘 안 쳐준다.” 서울의 한 사립대 명예교수는 2일 국내 학계의 연구윤리의식 부재를 질타하며 이렇게 꼬집었다. 독창적인 연구 지식의 집성체여야 할 학위 논문의 상당수가 질이 떨어져 외국에서 인정을 못 받는다는 것이다. 학술지 등에 실리는 논문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연구윤리 문제에 정통한 한 국립대 A교수도 “현재 우리나라 50대 이상 교수들이 지금까지 쓴 논문을 다 털 경우 현행 연구윤리 가이드라인에 안 걸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구윤리지침 제정 이전에는 국내 연구자의 연구윤리의식이 매우 낮았고, 대학 등의 연구기관에서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 ‘쉽고 편하게’ 연구성과를 쌓는 게 보편적이었다는 얘기다.

이로 인해 연구윤리지침이 규정한 논문 위조·변조·표절·중복게재·부당한 저자 표시 등의 연구부정 행위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연구자는 드물 것이라고 A교수는 전했다. 더 심각한 것은 연구윤리지침 도입 후에도 연구부정 행위에 대한 문제의식을 절실히 느끼지 못하거나 관행이란 보호막을 앞세워 버젓이 부정을 저지르는 풍토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부도 연구윤리 관련 틀만 갖춰 놨지 시스템이 잘 돌아가는지에는 관심이 적었다.

그 결과 정·관계 고위공직(후보)자나 명문대학 교수는 물론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 등 유명 인사들이 논문 표절 논란 등으로 끊임없이 구설에 올랐다. 하지만 ‘심각한 논문 표절’ 판정을 받고 박사학위가 취소됐음에도 사과 대신 법원에 박사학위 취소 소송을 낸 새누리당 문대성 의원이나 연구부정 의혹을 받는 인사가 고위 공직에 자연스레 임용되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교육학자 출신인 김명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도 2008년 7월 이후 논문 중 5건이 표절과 부당한 저자 표시 의혹에 휩싸였지만 “잘못한 게 전혀 없다”며 청문회에서 모두 소명하겠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이처럼 국내 학계의 연구윤리 불감증이 중증이란 사실은 한국연구재단이 최근 류동춘 서강대 교수(중국문화학)에게 의뢰한 인문사회 분야 연구윤리 매뉴얼 보고서에서도 확인됐다. 류 교수가 인문사회 분야 연구자 1390명을 상대로 연구윤리 위반이 발생하는 원인을 묻자, 1순위 답변으로 ‘연구자들의 연구윤리의식의 부족이나 부재’(40.7%)가 가장 많이 꼽혔다.

공직자가 연구부정 사실이 드러날 경우 부정행위의 경중과 상관없이 사퇴하는 선진국의 엄격한 연구윤리 문화와는 거리가 먼 셈이다.

독일에서는 2011년 차세대 보수 지도자인 카를 테오도어 추 구텐베르크 국방장관과 지난해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측근인 아네테 샤반 교육장관이 논문 표절로 물러났으며, 슈미트 팔 헝가리 대통령도 2012년에 논문 표절 문제로 사임했다.

연구윤리지침 제정에 참여한 박기범 과학기술정책연구원 과기인재정책센터장은 “최대한 연구부정을 방지하고 줄이자는 차원에서 시스템이 만들어졌지만 구조적·문화적 측면의 문제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대학이나 교수 등 연구자 평가 시 연구실적의 질보다 양을 따지는 정량평가 구조와 어떻게든 석·박사 학위 타이틀을 갖도록 목을 매게 하는 학벌중심주의, 대학과 학계 내부에서 연구부정을 쉬쉬하거나 대충 뭉개고 넘어가는 문화가 개선되지 않아 연구부정 근절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연구윤리 교육과 책임을 강화

전문가들은 연구부정 예방을 위해 무엇보다도 연구윤리 교육 강화와 함께 표절 등에 대한 명확한 기준 제시, 위반 시 엄정한 제재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이인재 서울교대 교수(윤리교육)는 “초·중·고 교육과정에서는 기본적인 연구윤리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대학생 때부터 학술적 글쓰기 교육을 체계적으로 해야 한다”며 “특히 석·박사 학위 논문 지도 시 연구윤리에 위배되지 않게 작성하도록 꼼꼼하게 지도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표절만 해도 ‘타인의 지식과 업적을 훔치는 범죄행위’로 인식하고, 대학생들이 일반 보고서나 리포트를 베끼는 것도 엄하게 다루는 선진국처럼 하자는 것이다.

논문 지도교수와 학위수여 대학, 학회지와 학술지를 발행하는 주체들의 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같은 맥락이다. 한상권 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는 “석·박사 학위 취득이나 각종 학술지 등재 이후 표절 등이 드러날 때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으니 연구부정을 저지르거나 질이 낮은 석·박사와 논문이 양산되고 있다”며 “부정 당사자는 물론 그를 지도한 교수와 관련 대학, 학회 등 소속 기관에 연대책임을 묻고 불이익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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