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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 편찬" "다양성 저해"…국정사전의 딜레마

관련이슈 국어死전…맥끊긴 민족지혜의 심장

입력 : 2014-07-02 20:08:17 수정 : 2014-07-02 22: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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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死전… 맥끊긴 민족지혜의 심장] 국가 주도 사전 발간 놓고 이견 팽팽
“표준어에 사투리·외래어 포함을” 지적

국어사전의 위기는 ‘과연 우리말의 주인이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1999년 정부의 표준국어대사전(이하 표준사전) 발간은 다른 국어사전의 맥을 틀어막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안정적 편찬이 가능하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지만 국가 주도 사전 정책에 의문을 나타내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이유다. 궁극적으로는 자유로워야 할 언어가 ‘표준’이라는 틀에 갇혀 다양성을 잃어버리는 것도 큰 문제다. 국정사전의 당위성은 ‘표준어’의 필요성과 연결된다. 표준어 구현의 총합이 표준사전인 것이다. 국립국어원(이하 국어원) 김선철 언어정보과장은 “표준어 전체를 표준어 규정으로 나타낼 수 없기 때문에 사전이 필요했다”며 “표준어를 가시화시킨 게 표준사전”이라고 말했다. 대중에게 표준어를 제시하기 위해 표준사전을 만들었다는 얘기다.


◆표준어, 언어의 독재?

그러나 표준어 자체도 논쟁의 대상이다.

“표준어는 서울 인구가 20만명이던 시절에 만든 것이다. 이미 일본은 1943년 ‘동경 표준어’에서 ‘동경 공통어’로 개념을 바꾸었다. 표준어 자체를 부정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표준어의 영역을 사투리, 방언, 외래어 등으로 넓혀야 한다. 방언은 표준어에 포함하지 않아 많이 소멸됐다. ‘표준’이라는 개념보다는 ‘공통’이라는 개념으로 표준어를 다루어야 한다.”(이상규 전 국립국어원장·현 경북대 국문과 교수)

표준사전에 대한 평가도 박하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급조된 사전이다. 김영삼 정권 때 대통령 임기 중에 만들라고 해서 급히 만들다가 도저히 되지 않아 몇 년을 연장하여 만든 사전이고 그 이후에 사전 수정 보완은 국립국어원의 몇 사람이 맡아서 하고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국립국어원 담당자가 그 많은 사전 내용을 검토하는 실정인데 잘못된 것을 고치는 것도 스스로 찾아서 고치기보다는 지적받아 고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으로 생각된다.”(홍윤표 국립국어박물관 개관위원장·연세대 명예교수)

표준어가 과도한 국가 개입 주의를 야기해 언어 사용자의 자발성과 창의성을 퇴색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우리나라처럼 엄격한 표준어정책을 채택한 국가는 몇 안 된다. 영어에는 ‘표준어’에 대응하는 단어가 아예 없다. 다만 ‘만다린(Mandarin)’이 존재하는데 이 역시 ‘베이징 지역에 기반한 중국 공식어(옥스퍼드영어사전)’라는 설명이다. 중국은 표준어 대신 보통어란 개념을 쓴다.

우리나라에서도 2006년 지역어 연구 모임 ‘탯말두레’ 회원 123명이 “표준어 규정과 국어기본법 등이 행복추구권, 교육권 등을 침해한다”고 헌법 소원을 냈다. 2009년 헌법재판소에서 7대 2로 합헌 결정이 내려졌지만 당시 반대의견을 낸 김종대·이동흡 헌법재판관의 표준어 불합리성에 대한 지적은 여러 번 곱씹을 만하다. 일제강점기 민족 정체성 수호 차원에서 표준어 기준이 수립된 점은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지니지만 지금 변한 현실을 감안하지 않고 이를 고수하면 오히려 우리 언어 발달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또 국가절대주의가 판치던 과거와 달리 현대 사회에선 국가가 어떤 문화활동에도 불편부당한 것이 가장 바람직하며 언어 역시 마찬가지다. 두 재판관은 “오늘날 전국적 방언 차이는 국민 의사소통에 별다른 어려움을 주지 않을 만큼 약화됐다”며 특정 지역어를 표준어로 정하고 나머지 방언을 모두 배척할 게 아니라 각 지역민 언어를 아우를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개방형 사전은 괜찮을까

표준사전이 ‘국정사전’으로서 야기한 각종 부작용은 2016년 공개 예정인 국어원의 ‘개방형 한국어 지식 대사전’(이하 개방사전)에서 확대될 수 있다. 개방사전의 목표는 모든 한국어 자료를 집대성해 새로운 지식, 문화 생산의 기반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표준사전(표제어 50여만 단어·이하 표준사전)의 2배인 100만 단어를 수록한 웹사전으로서 누구나 표제어나 뜻풀이를 추가할 수 있다.

네이버 지식인, 위키피디아처럼 다중지성을 활용하겠다는 취지이지만 실효성과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크다. 홍 위원장은 “개방형 한국어 지식 대사전은 표제항수만 늘린 사전에 불과하다. 사전은 표제항으로서 그 가치를 평가받는 것이 아니다. 표제항수도 문제지만 그 풀이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예컨대 한 어휘의 모든 역사가 다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어원의 연구 기능 강화해야

국정사전의 부작용을 없애고 국어사전 부활을 이끌기 위해서는 국어원의 사전편찬보다 연구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어원은 국영 사전 편찬과정에서 자체적 편찬 기능보다는 용역에 의존했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는 국어원 종합감사 결과보고서에서 “업무성격이 유사한 기관과 비교했을 때 고위공무원단(3명)이 많고 (학예연구관들이) 연구직임에도 자체 연구실적이 미미하고 연구용역 관리 중심으로 운영됐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국어원 개편은 일본이 본보기다. 일본 국립국어연구소는 사전을 만들지 않는다. 대신 대학과 연계해 사전 편찬에 필요한 재료인 말뭉치에 대한 연구작업을 활발히 하고 있다. 기관 성격도 국립기관에서 대학공동이용체로 완전히 바뀌었다. 일본 국립국어연구소에서 연수한 이현우 창원대 교수(일어학)는 “일본 국립국어연구소에서는 대규모의 대화체·문장체 말뭉치를 축적했다”며 “이를 이용해 매년 연구논문을 발표하고 말뭉치를 시디롬(CD-ROM)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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