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집권’ 대한 대중 피로감 작용 한국을 넘어 세계 젊은이들을 끌어당기고 있는 한류. 그 한류의 상징 같은 장르가 ‘댄스음악’이다. 대형기획사가 기획해 만들어낸 아이돌 그룹을 중심으로 한 댄스음악은 10여년 가까운 시간 동안 국내 대중음악계를 지배하며 각종 히트곡들을 양산해왔다. 그리고 치열한 시장에서의 경쟁을 바탕으로 한국을 넘어 세계인들을 열광시켰다. 그렇게 위세를 떨치던 댄스음악의 기세가 한풀 꺾이고 있다. 발라드, 힙합 등 장르에 밀려 대중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기 시작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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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가요계는 댄스음악의 퇴보 흐름이 뚜렷하다. 그 자리를 플라이투더스카이, 태양, 거미 등이 부른 잔잔한 발라드가 채우고 있다. 사진은 거미. |
한여름 더위가 이미 시작됐지만 여름의 상징과도 같았던 댄스음악을 차트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태양의 ‘눈, 코, 입’, 플라이투더스카이의 ‘너를 너를 너를’, 비스트의 ‘이젠 아니야’, 거미의 ‘사랑했으니 됐어’ 등 차트를 이끌고 있는 노래의 대부분이 발라드다. 나머지는 산이의 ‘한여름밤의 꿈’, 개리의 ‘사람냄새’ 등 힙합음악이 채우고 있다. 지난달에도 god의 ‘미운오리새끼’, 박효신의 ‘야생화’ 등 가요계를 이끈 음악들은 대부분 댄스와는 한발 벗어난 음악들이었다.

대중들의 기호 변화가 직접적 원인으로 꼽힌다. 10여년간 댄스뮤직 장르에만 편중돼온 국내 대중음악계의 흐름에 대해 대중들이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 TV 등 방송을 통해 일방향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선택해 들을 수 있는 디지털음악시대는 이 같은 변화의 흐름을 가속화시켰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그동안 국내 음악계는 세계 유례없을 정도로 댄스음악 한 장르에만 편중된 기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면서 “이런 편중된 가요시장에 대한 정상화의 과정으로 아날로그 음악의 부활, 과거 가수들의 귀환, 싱어송라이터의 대두 등의 흐름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형 기획사 중심 시스템의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10여년간 국내 대중음악계는 소수 대형기획사들이 내놓은 댄스음악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이들은 현지 시장에 알맞은 전략과 적극적인 진출로 해외시장을 개척해 한류 전도사로서의 역할도 해왔다. 이에 따라 대형기획사들의 매출규모와 시장지배력도 기하급수적으로 커졌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개별 재무제표 기준으로 지난해 3대 대형기획사의 매출은 SM엔터테인먼트가 1643억원, YG엔터테인먼트가 1057억원, JYP엔터테인먼트가 178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2010년(SM 864억원, YG 448억원, JYP 102억원)보다 각각 60%에서 130%까지 증가한 수치다. 시장의 집중현상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3대 기획사와 큐브엔터테인먼트 등 몇몇 중대형 기획사까지 4∼5곳의 기획사가 3분의 2 가까운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최근 들어 대형기획사들의 기획력이 다양화되는 대중들의 기호를 맞추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것. 서정민갑 대중음악평론가는 “상반기 댄스음악이 큰 인기를 끌지 못했는데 정말 좋은 작품이 나왔다면 대중들의 반응은 달랐을 것”이라면서 “대중음악의 팬층, 소비층이 다양화되고 있는 가운데 기존 댄스음악을 이끌었던 대형기획사 중심의 아이돌들이 새로운 음악적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재근 평론가도 “그동안 한국음악산업은 아이돌과 댄스음악에 ‘올인’하다시피 하면서 오히려 방향성을 잃었다”고 지적했다.
변화하는 대중들을 끌어안고 한류 흐름을 지속시키기 위한 새로운 기획력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여년간 이어져오며 굳어질 대로 굳어진 기존 아이돌그룹 시스템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올해 상반기 좋은 반응을 이끌었던 정기고·소유의 ‘썸’이나 아이유의 리메이크 앨범 등은 대부분 대형기획사의 기존 시스템에서 한발짝 벗어난 작품들이다. 서정민갑 평론가는 “이제는 누구 하나가 시장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획일화, 단순화되지는 않는 시대”라면서 “아이돌 음악이 예전의 텔미, 지 등이 나왔을 때처럼 새로운 모델을 만들지 않는 한 시장을 휩쓸기는 힘들 듯하다”고 밝혔다.
서필웅 기자 seose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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