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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터리번역에 발목잡힌 웹툰한류

입력 : 2014-06-22 20:37:05 수정 : 2014-06-22 20:4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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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만화 번역의 실상 토론회
폭발음 ‘쾅’을 ‘BOOM’ ‘POW’ 표현 안쓰고 소리대로 ‘Kuang’
주호민 작가는 2012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영문 번역된 자신의 웹툰 ‘신과 함께-저승편’을 처음 보고 무척 신기하고 기뻤다. 그러나 곧 영어에 능통한 지인들의 반응을 접하고선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번역이 이상하다”고 지적했다. 영미권에서 잘 쓰이지 않는 문장들이 많고 변호사로 설정된 주인공이 ‘초딩 영어’를 사용하는 등 작품 몰입을 오히려 방해하는 요소가 많다는 것이었다. 당시 번역을 맡은 건 명문대 통번역 대학원을 졸업한 전문가가 중심이 된 팀이었다. 결국 주호민 작가는 고심 끝에 사비를 들여 재감수를 의뢰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18일 경기 부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웹툰 ‘무한동력’, ‘신과 함께’ 등으로 유명한 주호민 작가가 직접 털어놓은 한국만화 번역의 실상이다. 미국, 유럽, 중국, 일본에서 웹툰 팬이 증가하면서, 국내에선 ‘웹툰 한류’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최근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1800만달러(약 184억원)에 그쳤던 만화 수출액을 2018년까지 1억달러(약 1020억원)로 늘린다는 야심찬 계획을 발표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한국만화의 성공적인 해외진출을 위해선 우선 국내에 만화 전문 번역 시스템부터 제대로 갖추는 것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지난 18일 경기 부천 한국만화영상진흥원에서 열린 ‘한국만화 번역과 해외진출을 위한 전략 모색’ 토론회 참가자들이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제공
◆까다로운 만화 번역…“보는 맛 살리는 ‘레터링’ 중요”

“어색한 레터링이 많았어요. 찻잔을 내려놓는 소리인 ‘탁’을 소리 나는 대로 ‘tak’이라고 옮겨놨는데, 이런 부분은 좀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죠.”

전문가들은 만화 번역 작업에서 까다로운 부분이 ‘레터링’이라고 지적한다. 문자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일컫는 레터링은 특히 효과음을 표현할 때 매우 중요하다. 한국 만화에선 폭발음을 ‘쾅’, ‘탕’ 등의 문자로 표현하는데, 이를 그냥 소리 나는 대로 번역하면 해외 독자들이 즉각 이해할 수 없다. 영미권의 경우, ‘Boom’이나 ‘POW’ 등으로 표기해야 ‘보는 맛’을 100% 살릴 수 있다. 미국 만화 ‘300’의 경우, 한국에 들어오면서 번역과 별개로 만화가 김수박이 레터링을 맡아 따로 작업하기도 했다.

현지화 전략에 따른 내용 변경이 해당 만화에 대한 섬세한 이해 없이 이뤄져 재미를 반감하는 경우도 많다. 한국 전통 종교관을 녹여낸 작품인 ‘신과 함께’엔 불교 세계관에서 사람이 죽어서 저승으로 가는 도중에 나오는 강인 삼도천(三途川)이 등장한다. 그런데 영역본엔 이 강이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강인 ‘스틱스(Styx)’로 옮겨졌다. 주호민 작가는 이에 대해 “작품 전체의 정서를 고려할 때 쓸데없는 변형이라고 생각한다. 차라리 각주로 처리하는 게 전체 맥락이 맞지 않겠냐”고 평가했다.

재감수를 거쳐 완성된 웹툰 ‘신과 함께-저승편’ 영역본 일부. 곡소리를 표현한 ‘AIGO(아이고)’와 그 의미를 영어로 풀어쓴 각주가 눈에 띈다.
주호민 작가 제공
◆현지 번역가 참여 필수…“불법 커뮤니티 양성화도 필요”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만화에 대한 이해가 있는 현지인의 번역 참여를 한목소리로 꼽는다. 한국 번역가가 작품의 핵심을 최대한 훼손하지 않으면서 작품을 옮긴 뒤에, 현지 번역가가 이를 다시 현지 만화 문법에 맞게 다듬어 독자들이 온전하게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런 시스템을 꾸리기 위해서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만화 장르에 대한 전문성을 지닌 ‘번역가 풀’의 확보다. 웹툰이 한국만화의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떠오른 지금 상황에선, 특히 웹툰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지닌 번역가의 존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터넷상의 불법 번역 커뮤니티가 지닌 역량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건 이런 배경에서다. 실제로 웹툰 ‘노블레스’, ‘신의탑’ 등이 영미권에서 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던 건 아이러니하게도 이 작품들을 무단으로 번역해 게재한 만화공유 사이트 ‘망가폭스(mangafox)’, ‘웹툰라이브(webtoonlive)’ 등의 역할이 컸다. 이들은 이미 다수의 팬으로부터 실력을 검증받았으며 레터링에 대해서도 충분한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2012년부터 북미에 웹툰 포털사이트 ‘타파스틱’을 개설해 운영 중인 웹툰 유통업체 타파스미디어 관계자는 “해외에서 불법 번역을 하고 있는 이들은 대부분 해당 웹툰의 팬인 경우가 많다”며 “실제로 ‘웹툰라이브’에서 활동했던 번역가 2명에게 접촉해 결과물을 받아본 적이 있는데, 상당히 높은 수준을 보여줘 직접 양성 중”이라고 밝혔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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