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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두드리고 호루라기 불고… 타악기의 참맛 들려드릴게요”

입력 : 2014-06-09 21:34:23 수정 : 2014-06-10 01:3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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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커셔니스트’ 한문경 18일 공연
클래식 음악 독주회에 갔다고 상상해보자. 무대에는 흔한 피아노, 바이올린 대신 마림바, 실로폰이 놓여 있다. 연주자는 한 명. 조금 당황스러울지도 모르겠다. ‘딩동댕동’이 전부일 악기로 무대를 꽉 채우는 독주를 할 수 있을까. 18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퍼커셔니스트 한문경(29)의 연주를 보면 이런 궁금증을 풀 수 있다. 공연을 앞두고 미국 뉴욕에 머물고 있는 그를 전화로 먼저 만났다.

“이번 공연에서는 굉장히 고전적인 타악기 독주곡을 골랐어요. 최대한 다양한 악기를 들려드리려 프로그램을 짰어요.”

그가 말하는 ‘고전적’인 곡들을 미리 엿보면 이렇다. 피에르 조드로브스키가 작곡한 ‘시간과 돈-파트1’에서는 전자음악에 맞춰 검정색 나무 상자를 연주한다. 악기 이름은 따로 없다. 그저 학교 책상 크기의 나무 상자다.

카를하인츠 슈토크하우젠의 곡인 ‘지클루스’에서는 무대에 올려질 악기가 20개 안팎이다. 마림바, 비브라폰, 톰톰, 스네어드럼, 트라이앵글, 심벌즈, 카우벨, 공 등등. 이를 혼자서 종횡무진 연주해야 한다. 게다가 이 곡의 악보에는 시작과 끝이 없다. 16쪽 중 아무 데나 펴서 시작한 뒤 한 바퀴 돌아 제자리로 오면 된다. 악보를 위아래나 좌우로 뒤집어서 봐도 무방하다. 악보에는 ‘콩나물’ 대신 정체불명의 도형들이 그려져 있다.

“상당히 특이하죠? 그런데 쓰여진 지가 50년이 넘어요. 타악기 곡으로는 고전이 돼 가고 있죠. 20세기 중반에 이미 온갖 새롭고 다양한 시도가 있었어요. 이번 공연에서는 이런 곡들을 골랐어요.”

서양음악에서 교향악단 뒤에 있던 타악기가 독주용으로 사용된 지는 겨우 100년 남짓이다. 그만큼 덜 알려진 면이 많다. 타악기 연주자라면 원초적 본능을 깨우는 ‘리듬감’이 최고의 미덕일까.

“몸 안에 흐르는 무의식적 리듬감도 중요한 부분 중 하나예요. 하지만 결국 곡의 큰 그림을 보면서 노래하듯 칠 줄 아는 게 중요해요. 저희는 무대에서 돌을 두드리고 호리병으로 소리 내거나 심지어 소리도 질러요. 이런 이상한 행위를 하면서도 큰 그림에서 그 곡을 노래로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좋은 연주자가 되는 것 같아요. 관객이 단순히 파격이나 놀라운 감정 자체에 매몰되기보다 음악으로 감상할 수 있도록요.”

그는 타악기 연주자의 자질로 눈치 혹은 소통 능력을 꼽았다. 타악기는 독주보다 교향악단과 함께 할 때가 대부분이다. 바이올린과 겹치기도 하고 트럼펫과 같이 갈 때도 있다. 이 때마다 미묘한 박자 차이를 ‘눈치’로 맞춰야 한다.

“현악기는 활을 그을 때부터가 아니라 마찰이 돼야 소리가 생겨요. 바이올린과 연주할 때 호흡, 목관·금관 악기와의 호흡이 조금씩 다 달라요. 평소 남을 배려하는 사람이 이걸 맞추는 센스가 좋더라구요. 게다가 타악기는 이동부터 무대 설치까지 늘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요. 소통을 잘하는 이들이 오래 살아남죠. 이기적이면 하기 힘들어요.”

지난 4월 초 한문경이 뉴욕 앨리스튤리홀에서 마이클 자렐의 18분짜리 곡을 연주한 후의 모습. 뉴욕타임스는 그의 연주에 대해 “빛나는 기교와 섬세한 음악성을 보여줬다”고 호평했다.
뉴욕타임스 제공
한문경이 타악기와 인연을 맺은 건 만 4살 때다. 시작이 특이했다. 어머니가 친척 결혼식에 갔다가 마림바 앙상블의 축하 연주를 보고 매료돼 딸에게 배우게 했다. 어린 그는 연주하면 칭찬 듣는 일이 마냥 좋았다. 조그만한 아이가 덩치 큰 마림바를 치면 어른들은 “귀엽다, 잘한다”를 연발했다.

그는 12살 때 일본 마림바 콩쿠르 그랑프리를 시작으로 파리 마림바 콩쿠르 우승, 월드 마림바 컴피티션 영탈렌트상, 폴란드 현대음악 실내악 국제콩쿠르 2위 등 ‘상복’을 누려왔다. 11살 때 금호 영재 첫 기수로 뽑혀 무대에 서기도 했다. 이렇게 두드려온 타악기에서 그가 발견한 행복감·매력은 예상외다.

“어느 공연이든 제가 연주하는 종류의 악기를 처음 접하는 분들이 꼭 계세요. 굉장히 보람 차요. 또 작곡가들이 계속 창작할 수 있도록 영감을 줄 수 있어 감사해요. 전 (작곡가가) 소리 지르라면 지르고 새로운 악기를 만들러 목공소도 가고…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거든요.”

그는 타악기 연주자 김은혜와 듀오 ‘모아티에’를 결성해 정기 연주회를 열고 있다. 모아티에는 프랑스어로 ‘절반’이란 뜻. 수익금의 반을 기부할 생각으로 이렇게 지었다. 그의 목표는 교향악단 입단이나 대학교수직이 아닌 “좋은 음악을 하는 것”이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음악은 “좋은 마음가짐으로 서는 무대”이다.

“내가 돋보이거나 기막힌 연주를 해서 관객이 감동받는 것보다는 제가 음악을 알아온 즐거웠던 시간을 관객과 나누고 싶어요.”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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