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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와 관광의 도시서 열리는 전 세계 ‘예술 올림픽’

입력 : 2014-06-05 21:42:13 수정 : 2014-06-06 13:3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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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95〉 伊 베니스 비엔날레
# 건축전, 새로운 시대의 건축을 전망하다

6월 이맘때면 대부분의 건축대학에서 졸업전을 준비하기 위해 수많은 학생들이 설계실에서 도면을 그리고, 모형을 만들고, 패널을 구성하기 위한 3D 디자인 작업을 하느라 밤샘을 하고 있을 것이다. 가을에 열리곤 하던 우리 때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합판만 한 패널에 0.1㎜ 제도펜으로 하염없이 점을 찍어가며 손으로 완성하던 작업을 컴퓨터가 대신한다는 것 정도다.

건축 관련 자재를 주로 전시하는 건축박람회와 달리, 건축전시회라고 하면 당연히 떠오르는 것은 도면과 투시도로 멋지게 꾸려진 패널과 실제 지어질 건물 크기의 100분의 1, 200분의 1, 혹은 30분의 1 등등 다양한 축척의 정교한 모형들이다. 동영상이 동원되거나 음향 등 공감각적인 요소들, 전시장과의 3차원적 결합 등이 첨가되는 경우도 있지만, 아마도 전 세계 어디든 건축전시회의 기본 형식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현대건축의 역사에서 유명한 몇 개의 건축전시회가 있다. 1932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에서 ‘현대건축: 국제전시회’(Modern Architecture: International Exhibition)라는 전시가 열린다. 기획자는 당시 미술관장인 앨프리드 H 바와 헨리러셀 히치콕, 그리고 23세의 필립 존슨이었다. 전시회에서 주로 소개된 작가들은 이른바 ‘현대건축가’들로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발터 그로피우스, 르 코르뷔지에, J J P 아우트, 루드비히 미스 반 데어 로에, 레이먼드 후드, 리처드 노이트라, 보우만 형제, 조지 하우와 윌리엄 레스카즈 등이었고, 이 중 르 코르뷔지에, 미스, 아우트, 라이트의 작품이 가장 비중 있게 다뤄졌다. 

2014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출처: www.labiennale.org/it/Home.html)
전시회의 카탈로그인 ‘현대건축: 국제전시회’와 히치콕·존슨의 공저 ‘국제양식: 1922년 이후의 건축’(International Style: Architecture Since 1922)이 함께 출간되어 새로운 건축의 규범, 즉 볼륨, 규칙성, 부가장식의 제거 등을 주장했다. 사실 당시 미국의 상류계층에서 고전적 양식의 장식적 건축이 선호되고 있었고, 경제성과 기능성이 강조된 근대양식은 노동자 계층을 위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전시회를 통해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함의를 품고 있던 유럽의 근대건축 양상이 그 형태적 특성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덜 정치적이고 보다 단순한 개념으로 대중에게 다가가게 되었다.

이 기획의 키워드인 ‘국제양식’(International Style)은 순식간에 근대건축과 동일시될 정도로 일반화되었다. 이렇게 축소된 양식적 근대성은 미국 사회에 빠르게 수용되어 2차대전 후 미국의 국가적 위상을 바탕으로 전 세계에 파급되기도 하였다.

뉴욕현대미술관에서 1988년 개최된 ‘해체주의 건축’(Deconstructivist Architecture) 전시회 또한 한때 건축계를 휩쓸다시피 한 해체주의 열풍의 발원지였다. 이 전시회의 게스트 큐레이터 또한 공교롭게도 56년 전의 현대건축전을 기획했던 83세의 필립 존슨이었고, 마크 위글리가 공동으로 참여했다. 프랭크 게리(Frank O. Gehry), 다니엘 리베스킨트(Daniel Libeskind), 렘 쿨하스(Rem Koolhaas), 피터 아이젠만(Peter Eisenman), 자하 하디드(Zaha M. Hadid), 쿱 힘멜블라우(Coop Himmelbl), 베르나르 추미(Bernard Tschumi) 등 급진적 성향을 지닌 건축가 7인의 1980년 이후의 작품을 모은 전시였다. 필립 존슨은 이때 해체주의 건축은 새로운 양식은 아니며 어떠한 운동도 대표하지 않고 강령도 아니다, 그것은 추종해야 될 어떠한 규칙도 없다고 했다. 마크 위글리는 작품들이 해체주의(Deconstruction)라는 철학이론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건축적 전통 속에서 나온 것으로 몇몇의 해체주의적 특성을 나타낸 것이라고 말했다. 

2014 한국관에 전시될 안세권의 Cheonggye Stream’s View of Seoul Lights, 2004 (출처:www.bustler.net)
# 비엔날레, 세계의 예술이 만나는 이벤트

이후 해체주의 건축전에 참여한 모든 작가가 번갈아가며 지금까지도 세계 건축계의 경향을 주도하고 있다. 이제는 영향력이 미미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먼저 부각되었던 건축가는 피터 아이젠만이었다. 그는 1985년 비엔날레에 베로나의 몬태규 앤 캐퓰릿 성을 포함한 프로젝트인 ‘Moving Arrows, Eros, and Other Errors: Romeo + Juliet’을 출품하여 돌사자상(Stone Lion)을 받았다. 그는 대지를 단순히 존재로서가 아니라 기억과 내재된 흔적을 담고 있는 양피지 사본인 동시에 지식의 출처로 다루고, 건축적인 ‘프로그램’을 위한 기반으로서 로미오와 줄리엣 이야기를 변형시킨다. 그의 기하학과 이미지가 중첩된 그래픽과 모형 등은 무척 세련되고 신선해서 한동안 수많은 건축학도들이 흉내 낼 정도였다.

전세계의 건축가들이 참여하는 가장 성대한 건축전시회인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도 6월 7일부터 11월 23일까지 열리게 된다. ‘비엔날레(biennale)’는 이탈리아어로 ‘2년마다’라는 뜻으로 원래 미술 분야에서 2년마다 열리는 전시 행사를 일컫는 말이다. 세계 각지에서 120여 개(국내용까지 합하면 200여 개)의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경계를 넘어서’라는 주제로 1995년에 처음 열린 광주 비엔날레를 비롯해 10여 개의 비엔날레가 개최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역사가 길며 그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것이 베니스 비엔날레이다. 이탈리아 국왕 부처의 결혼 25주년을 기념하며 1895년에 창설된 베니스 비엔날레는 휘트니 비엔날레, 상파울루 비엔날레와 함께 세계 3대 비엔날레의 중심축을 차지하는 행사로, 홀수 해에는 미술전, 짝수 해에는 건축전으로 개최된다. 문화와 관광의 도시인 베니스의 특징을 십분 살려, 베니스의 지식인, 시장, 기업인, 예술가가 함께 기획한 사업이라고 할 수 있다.

1895년 이탈리아, 프랑스, 오스트리아, 헝가리, 영국, 벨기에, 폴란드, 러시아 7개국이 참가하는 가운데 제1회가 개최된 이후, 중간에 1913년 1차 대전과 1946년 2차 대전으로 중단된 적도 있었으나 계속 꾸준히 개최되고 있다.

전시는 자르디니라 불리는 베니스 남동쪽 카스텔로 공원(Giardini di Castello) 내 10만 평의 부지와 국영조선소였던 아르세날레(Arsenale)에서 열린다. 자르디니에서는 주로 국가관 전시가 열리고, 아르세날레에서는 젊고 실험적인 작업을 소개한다. 각 국가관 전시는 보통 60여 개국에서 참가하고, 매년 늘어나고 있다. 독립된 국가관을 가진 24개국을 제외하고는 시내의 이탈리아관에서 함께 소개된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상은 회화 1명, 조각 1명 그리고 국가관에 수여하는 3개의 황금사자상과 역량 있는 젊은 작가에게 수여되는 은사자장 그리고 4명의 작가에게 수여하는 특별상이 있다. 심사는 세계적 권위를 가진 미술관장이나 미술사가, 평론가들 4∼5명이 초청돼 심사위원을 맡고 있다.

우리나라는 1986년 42회 때 고영훈, 하동철 작가가 베니스 비엔날레에 최초로 참가했다. 이후 백남준이 1993년 독일관 대표작가로 참가해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은 데 이어 1995년 전수천, 1997년 강익중, 1999년 이불이 특별상을 수상한 바 있다.

1995년 건립된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 2014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기본으로 돌아가다

베니스에 국가관을 가진 아시아 국가는 일본(1956년 건립, 다카마사 요시자카 설계)과 한국뿐이다. 한국의 건축과 미술이 전 세계에 소개될 수 있는 거점으로 1995년에 건립된 한국관은 자르디니에 들어선 마지막 국가관이자 26번째 국가관이다.

당시 자르디니에 국가관 하나가 더 들어설 수 있는 마지막 자리가 남았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전 세계 여러 강대국이 이미 후보에 올라 있었다고 한다. 당시 베니스 시장 마시모 카차리에게 경제적인 부분만 내세웠으면 한국이 선정되기 어려웠을 수도 있었다. 이때 백남준 작가가 아이디어를 냈다. 그는 베를린 장벽도 무너졌고 전 세계에 유일하게 남북으로 갈려진 나라는 한국밖에 없으니, 만약 한국관을 건립하면 남한과 북한이 함께 전시할 가능성도 있다고 제안했다. 이런 평화적인 제스처가 설득의 단초가 되어 극적으로 한국관(김석철 설계)을 얻게 된 것이다.

1975년부터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의 한 부분으로 시작된 건축전은 1980년 제1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전시회로 독립되어 개최되었다. 이로써 현대건축은 전시회를 통해 예술의 한 장르로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고 비엔날레는 현대건축의 현 주소를 알리는 자리가 되었다.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는 당시 유행하는 건축경향의 작품을 전시한 일반적 형태의 건축 전시와 유사했다. 그런데 1996년 6회 전시부터는 현대건축의 흐름이 어떤 공통의 이데올로기를 따르는 경향에서 벗어나면서, 다원화된 현대건축의 특징이 부각되게 된다. 1∼5회까지의 전시 디렉터는 이탈리아 건축가들이 맡았다. 2회까지 전시를 기획한 건축역사학자인 파울로 포르토게시(Paolo Portoghesi)는 1980년 1회 개최 시 ‘the presence of past’를 주제로 포스트 모더니즘 성향의 건축가 75명의 작품을 전시한다. 이것이 전 세계에 포스트 모더니즘이 전파되는 계기가 된다. 2회에는 ‘Architecture in Islamic contries’를 주제로 이슬람 지역의 건축을 소개했다. 알도 로시(Aldo Rossi)가 디렉터였던 3회에는 ‘Venice Project’라고 하여 이탈리아 지역을 대상으로 한 국제현상설계 공모를 실시해 이때 피터 아이젠만이 수상하고, 한국에서도 몇몇 팀이 입선에 든다. 4회에는 베를라헤 특별전인 ‘Hendrik Petrus Berlage’를 열어 국제 전시회의 취지에서는 조금 멀어지기도 했다.

1985년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 돌사자상을 수상한 피터 아이젠만의 ‘Moving Arrows, Eros, and Other Errors: Romeo + Juliet’
1996년 열린 6회에 처음으로 외국인 건축가인 한스 홀라인이 디렉터가 되어 ‘sensing the future’라는 주제로 진행하면서 이후부터 다양한 기획 중심의 전시로 발전하기 시작한다. 당시 한국도 ‘Sensing the Future, the architect as seismograph’(커미셔너 강석원)를 주제로 한 첫 전시를 열었고, 이후 김석철 김종성 정기용 조성룡 승효상 권문성 김병윤 등이 커미셔너를 맡았다. 14회를 맞이하며 렘 쿨하스가 총괄 디렉터를 맡은 올해의 전시 주제는 ‘Fundamentals’, 즉 건축의 ‘기본’을 돌아본다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관의 전시 주제로 ‘근대성의 흡수(Absorbing Modernity: 1914∼2014)’를 제안했다.

건축가 조민석이 커미셔너를 맡은 우리나라는 ‘한반도 오감도’(Crow’s Eye View: The Korean Peninsula)라는 제목으로 지난 100년의 남북한 건축을 다룰 예정이다. 이를테면 한국관의 건립 취지에 가장 걸맞은 주제로 준비되고 있다 할 수 있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참가국별로 주제에 따른 전시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각 나라 건축계가 당면한 현실과 정체성이 드러난다. 따라서 베니스 비엔날레의 건축전시 내용은 우리 건축계가 다함께 고민해야 할 화두를 안고 있다.

국제 비엔날레 행사들은 실험성과 지역성, 젊은 미술가를 육성하려는 당초의 의도와는 달리, 최근에는 아트 마켓과 연결되는 상업적 측면이 부각되고 특히 ‘예술 올림픽’으로 불리며 국가의 경제력 및 문화 이미지를 과시하게 되었다는 점도 부정할 수 없다.

건축전도 그런 부담에서 벗어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한국관은 말하자면 세계에 우리 건축을 내보이는 통로라 할 수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다시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고 건축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하는 시스템 또한 필요하다고 본다.

임형남·노은주 가온건축 공동대표·‘집, 도시를 만들고 사람을 이어주다’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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