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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고령화시대 노인범죄 비상

입력 : 2014-06-03 06:00:00 수정 : 2014-06-03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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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흡한 복지대책이 노인들 범죄 내몰아… 사회안전망이 해법
2007년 8월 전남 보성군 바닷가에서 어부 오모(71)씨가 10대 남녀 2명을 배에 태운 뒤 남성을 바다에 밀어 숨지게 하고, 여성을 성추행하려다 실패하자 여성도 바다에 밀어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는 한달 뒤에도 20대 여성 2명을 같은 방법으로 살해해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범행 동기에 대해 “처녀니까 만져보고 싶어서 그랬다”고 태연히 말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가 70대의 노인이라는 사실에 우리 사회는 충격을 받았다.

한국은 2000년 ‘고령화사회’에 진입했다. 유엔은 총인구 중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이면 ‘고령화사회’, 14% 이상이면 ‘고령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사회’로 규정하고 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12.2%로, 4년 뒤인 2018년에는 고령사회,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 10여년 뒤에는 인구 5명 중 1명이 65세 이상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노인 인구가 늘면서 노인들을 위한 다양한 정책이 제시되고 있지만 대부분이 안락한 노후 생활과 어떻게 실버 산업을 키울 것인가 하는 경제적 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반면 노인들이 일으키는 사회 문제와 이를 막기 위한 대책은 등한시해왔다. 그러는 사이 노인 범죄, 그중에서도 노인에 의한 강력범죄가 늘어나면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2일 경찰청에 따르면 전체 범죄 중 61세 이상이 저지른 범죄의 비율은 2000년 2.7%에서 2012년 7.3%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이는 고령화 속도보다도 빠른 속도다. 노인 범죄 증가가 단순히 노인 인구가 늘면서 생긴 현상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특히 71세 이상이 저지른 범죄는 최근 들어 더욱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61세 이상이 저지른 범죄 중 71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0년 14.6%에서 2012년 21.2%로 늘었다.

◆경제적 빈곤·소외감·분노가 원인

전문가들이 노인 범죄의 원인으로 가장 먼저 꼽는 것은 경제적 빈곤이다. 지난 2월에는 서울 송파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A(74·여)씨가 생선과 쇠고기 등 3만원 상당의 식료품을 훔치다가 경찰에 붙잡혔다.

그는 외아들이 20년 전 미국으로 떠난 뒤 기초생활수급자로 지내왔으며,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동네 마트에서 먹을 것을 훔치는 등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노인들이 많다”고 말했다. 노인 인구 중 3분의 1 정도는 일정한 소득 없이 ‘절대적 빈곤’ 상태에 놓인 것으로 추정된다. 미흡한 복지대책이 노인들을 범죄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소득 격차를 의미하는 ‘상대적 빈곤율’도 높다. 2012년 한국의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빈곤율은 49.3%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를 차지했다. 이는 OECD 평균(12.8%)의 4배에 달하는 수치로, 고령화 속도가 빠른 일본(19.4%)에 비해서도 높다. 상대적 빈곤율은 전체 가구를 소득 수준별로 나란히 세웠을 때 한가운데에 있는 가구 소득의 50% 이하에 해당하는 가구 비율을 말한다.

이 같은 절대적·상대적 빈곤은 사회에 대한 분노로 이어지기도 한다. 여기에 가족관계가 단절되고 사회적 냉대를 받는 등 소외감을 느끼면서 범죄로 표출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2008년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던 ‘숭례문 방화사건’은 평범한 노인인 채모(70)씨가 범인이었다. 그는 자신의 땅이 한 신축 아파트 건설 부지에 포함됐지만 보상금이 마음에 들지 않자 사회에 불만을 표출하기 위해 불을 질렀다고 말했다.

이윤석 서울시립대 교수(도시사회학)는 “의학 발달로 평균 수명은 늘어나는데 노인과 관련한 사회 시스템 발전 속도가 느리다 보니 노인 스스로 사회에서 밀려났다고 느끼게 된다”면서 “이 같은 고립감이 범죄를 부르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노인도 멘토링 필요

전문가들은 우선 노인의 경제적 어려움과 상대적 박탈감 등을 막을 수 있도록 사회안전망 확충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홍선미 한신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소득보장, 의료보장 등 제도적 보완과 함께 정서적 접근이 필요하다”며 “청소년들만 멘토링이 필요한 게 아니다. 자녀 역할을 하고 일상생활을 지지해주는 정서적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인 범죄를 전담하는 기관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현재 전국에 있는 노인 전문기관은 자살이나 학대를 예방하거나 복지 대책을 마련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지자체마다 청소년 범죄 전담 기관이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2012년 기준 전체 범죄 중 61세 이상이 저지른 범죄는 18세 이하 미성년자가 저지른 범죄보다도 많다. 따라서 청소년처럼 범죄 유형과 원인 등을 체계적으로 분석하고, 상담 등을 통해 범죄를 예방·교정할 수 있도록 하는 전담 기관의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다.

숭례문에 불을 지른 채씨의 경우, 숭례문 방화 2년 전에도 창경궁에 불을 지른 적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제대로 된 심리적 치료나 상담 등을 했더라면 숭례문 범죄는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의미다. 최근 70대 노인이 일으킨 서울 지하철 도곡역 방화 사건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이웅혁 건국대 교수(경찰학)는 “노인이 가해자인 범죄는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노인 범죄는 사회구조적 문제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첫걸음”이라며 “전문적인 기관을 통해 범죄를 예방하고 재범을 막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유나·권이선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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