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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덕 옛 부인 과거 인터뷰서 "남편 정치 반대"

입력 : 2014-06-01 21:05:24 수정 : 2014-06-01 21: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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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여론조사에서 1위를 달려온 고승덕 서울시 교육감 후보가 친딸 고희경(27·미국명 캔디 고)씨가 올린 비난성 글로 선거 막바지 최대 위기를 맞았다.

장녀 희경씨가 폭로 글을 올리게 된 배경에는 고 후보와 전처 박유아씨의 불화가 이혼으로 이어지면서 가족 간의 교류가 완전히 끊어진 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고 후보는 자식들을 돌보지 않았다는 세간의 비판을 의식한 듯 1일 오후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글썽이며 가족들과 떨어져 살게 된 배경을 상세히 설명했다.

하지만 박유아씨가 고 후보(당시 변호사)와 불화설이 돌던 1999년 8월 미국 뉴욕에서 여성동아와 했던 인터뷰 내용을 보면 양측의 인식 차가 상당했음이 드러난다. 유아씨는 당시 인터뷰에서 남편의 정치 입문을 강하게 반대했다고 밝혔다.

유아씨(당시 38세)는 인터뷰에서 "97년 인천 보궐선거 때 국민회의로 출마할 뻔한 일이 있었지만 그땐 출마를 적극적으로 생각한 것 같지 않았다"며 "처음부터 절대로 (총선 출마는) 안 된다고 말렸고 1997년 당시에도 나오기가 무섭게 잘랐고 정치하고 싶은 이유를 대라고 했다"고 밝혔다.

유아씨는 1999년 고 후보가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보궐선거 공천을 반납한 논란에 대해 "(당시) 고 변호사가 전화해서 말을 들어보니까 생각이 그전(1997년)하고는 다르더라"며 "결과적으로 엎질러진 물을 다시 주워담은 꼴이 됐지만 그 당시에는 내 힘으로는 주워담을 수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보기엔 계속 나가(총선 출마)는 것보다는 들어가는 게 덜 다칠 것 같았다"며 "그런데 그렇게 이상하게 될 줄은 몰랐다. 사람이란 게 한 치 앞의 일을 모른다"고 고 후보와의 불화설을 인정했다.

유아씨는 부친인 고 박태준 포스코 전 회장이 자신을 시켜 고 후보의 총선 출마를 포기하도록 종용했다는 주장을 적극적으로 부인했다.

유아씨는 "아버지는 시간이나 약속을 지키는 기본적인 것에는 엄하지만 그 틀만 벗어나면 큰딸 의사에 맡겨준다"고 해명했다.

반면 고 후보는 1일 기자회견에서 "지난 1999년에 한나라당 보궐선거로 공천을 받았지만 당시 장인이자 집권여당 자민련의 총재였던 박태준 포스코 회장 측의 회유와 압력을 받고 납치되다시피 해서 기자회견장에 끌려가 선거를 포기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일이 자신에게 벌어졌고 당시 공천 반납이 가슴에 큰 상처로 남았다고 했다.

유아씨는 정치에 상당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그는 "정치인은 누군가를 짓밟으면서 권력을 얻고 가장 심하게 희생되는 게 가족"이라며 "자식들의 인생을 지켜주고 싶었다"라고 고 후보의 정치 입문을 반대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우리 아버지(고 박태준 회장)처럼 정치 보복을 당했거나 눈에 보이게 핍박을 당하는 것만 희생이 아니라 잘 나가는 정치인이라 하더라도 그 명성을 지켜주기 위해서는 가족들이 없어져야 한다"며 "어떻게 더 나를 없애란 말이냐. 나라는 존재를 없애는 것에 대해 피해의식이 있다"고 덧붙였다.

유아씨는 고 후보가 정치인으로서 자질이 부족했다는 주장을 폈다. 그는 "애들 아빠는 작은 역량을 펼칠 수 있는 자리까진 가는데, 그 험난한 길(정치)을 끝까지 갈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며 "정계에서 자기 뜻을 펴려면 일단 국회의원이 돼야 하는데 거기까지 가는 데도 그렇게 난리가 났고 결국 좌절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아버지는 사위를 자식같이 생각했고 언니를 시집보내고 서운해하던 어머니에게 내가 낳지도 않고 아들을 얻었다고 위로했다"며 "결혼하고 보니까 사위들을 정말로 아들들처럼 귀하게 아끼셨다"고 말했다.

반면 고 후보는 기자회견에서 "저는 박태준가에서는 평범한 집안의 자수성가한 아들이었다"며 "미움을 받게 된 건 나이 든 부모가 있는 한국에서 살기를 원해 영주권을 뿌리치고 귀국했기 때문"이라며 상반된 주장을 폈다.

유아씨는 인터뷰에서 지난 1998년 2월 자식들을 미국 뉴욕으로 데려온 이후 남편과 전화통화를 자주 했지만 거의 보지 못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고 후보는 전처 유아씨가 미국에서 함께 살 것을 고집했고 둘째 딸의 한글 교육도 시키지 않고 급기야 이혼과 함께 아이들의 양육권을 가졌다고 해명했다.

고 후보는 "재력과 권력을 가진 집안의 딸에게 자식의 양육권을 빼앗긴 아버지로서 많은 슬픔을 겪어야 했다"며 "미국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길래 제 딸과 아들을 빼앗아 갔나 하는 생각에 저는 미국 땅을 밟지 않았다"고 말명했다.

유아씨는 여성동아 인터뷰에서 뉴욕 생활에 상당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그는 "서울에선 누구를 위한 일인지도 모른 채 바빴지만 뉴욕에선 아침이 되면 신이 나고 잘 왔구나 생각한다"며 "서울에선 박유아로 살면 안 되지만 여기선 그냥 박유아로 살면 되니까 편하다"라고 한국에 돌아갈 생각이 없음을 밝혔다.

박유아씨는 "이제 누구의 딸, 누구의 아내라는 그늘에서 벗어나 세상에 자신의 정신을 뿌리고 싶다"면서 "자신을 위한 삶을 선택하는 데 징검다리 건너듯 오랫동안 망설였다. 이젠 박유아로 살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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