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 천주교 신자 참수터. |
홍주(홍성의 옛 이름) 성지는 홍성군 고암리에 있다. 이곳 역시 ‘내포의 사도’ 이존창에 의해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다. 이곳에서는 기록상으로 212명의 순교자가 나왔다. 무명의 순교자까지 합하면 1000여 명이 순교해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순교자 많이 나온 곳으로 알려진다. 그중 4명이 복자품을 받았다.
순교자 원시장(1732~1793)의 경우 포졸들이 때려도 때려도 죽지 않자, 사또가 겁이 나서 한 겨울인데도 밖에 내놓고 계속 몸에 물을 부어 얼어 죽게 했다고 한다. 황일광은 백정이었지만, 양반 신분이었던 신자들로부터 신분 차별 없이 평등한 대우를 받자 “나 같은 신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너무나 점잖게 대해주니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하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는 1801년 신유박해 때 체포돼 매질로 다리가 부러졌으며 끝내 참수형으로 순교했다. 과거 홍주에서는 저자거리에서 신자들이 국수를 먹으면 비신자들이 숙연한 마음으로 바라봤다고 한다.
홍주 천주교 순례길. |
순례길을 따라 가다 보면 홍주 북문밖 월계천변으로 이어진다. 월계천을 따라 참수터, 생매장터 등 표지판이 서 있다. 참수터는 황일광이 참수형을 당했고, 많은 신자들이 고결한 피를 흘렸던 곳이다. 참수터를 지나면 월계천과 홍성천이 만나는 합수머리 근처에 생매장터가 나오는데,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생매장이라는 잔인한 형벌이 자행됐던 곳이다. 즉, 1866년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 최법상, 김조이, 원 아나타시아 등이 이 형벌로 목숨을 잃었다. 이들은 구덩이에 들어가 머리 위로 쏟아지는 흙덩이를 받으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순교의 길을 걸어갔다.
월계천변 생매장터 옆에는 성당처럼 제대가 마련된 축구장만한 잔디 광장이 있다. 홍주 성지에는 따로 기념성당이 지어져 있지 않고 이곳에서 기념 미사를 드린다고 한다. 일종의 야외 성당인 셈이다.
최교성 홍주 성지 담당신부. |
해미 성지 성당. |
해미 성지가 있는 충남 서산시 해미면은 내포지방의 여러 고을 가운데 유일하게 진영이 있던 군사요충지다. 해미 진영장은 내포 일원의 해안 수비를 명분 삼아 독자적인 처형 권한을 갖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서해안 일대에서 붙잡힌 천주교 신자를 처형했다. 사대부들은 충청감사가 있는 공주나 홍주 진영으로 이송됐고, 이곳에서 죽어간 이들은 이름 없는 서민들이었다. 해미에서는 1790년대부터 100년 동안 천주교 신자 3000여 명이 국사범으로 몰려 처형됐다.
해미 생매장 순교자 묘. |
백성수 해미 성지 성당 주임신부. |
순교자들의 재판을 했던 읍성의 동헌부터 해미 시내를 거쳐 이곳에 이르는 1.5㎞ 구간에 조성된 ‘십자가의 길’에는 성지순례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예수가 걸었던 이스라엘의 14처를 잇는 길 못지않은 고난의 행로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오는 8월 17일 해미읍성에서 10만여 명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되는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 폐막미사 집전에 앞서 해미 성지를 방문해 순교자 묘를 참배하고 기도한다. 한국천주교 관계자들은 아시아 지역 전교에 큰 힘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tol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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