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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해운의 90%가 신도… 구원파 실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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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4-23 19:10:02 수정 : 2014-12-08 14: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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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장인 ‘독자세력화’…27년 전 오대양 사건 연루

침몰한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로 확인된 유병언(73) 전 세모해운 회장이 기독교복음침례회(일명 구원파) 목사 출신이고, 청해진해운 임직원 상당수가 이 종단 신자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구원파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펴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 따르면 기독교복음침례회가 국내에서 활동을 본격화한 건 196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유씨와 그의 장인인 고(故) 권신찬 목사가 외국인 선교사들과 결별하고 한국만의 독자 세력화에 나섰다. 이듬해인 1964년 두 목사가 현 극동방송의 전신인 국제복음주의방송에서 ‘구원의 복음’이란 제목으로 방송을 진행하면서 그들에게 ‘구원파’란 이름이 붙었다.

당시 권씨는 기성 교회의 예배 의식과 십일조 헌금, 새벽 기도 등을 ‘율법주의’로 규정하며 “율법과 죄책감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예배당 건물 위주의 교회를 거부하고 ‘무형 교회’를 강조하는 구원파 교리는 기독교 주류로부터 ‘이단’이란 비판을 받았다.

결국 권씨와 유씨는 1974년 방송사에서 해고됐다.구원파는 그로부터 7년이 지난 1981년 전국 책임자 248명이 모인 가운데 정식 창립총회를 열고 정부 등록 절차도 밟았다. 그때 이미 구원파 교주 노릇을 하던 유씨는 세모해운이란 회사까지 세워 기업인으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1987년 오대양사건이 터지면서 구원파는 최대 위기를 맞았다. 그해 8월29일 경기 용인의 공예품 공장 ‘오대양’에서 이 회사 박순자 대표 등 변시체 32구가 발견됐는데, 숨진 사람 전원이 구원파 신도인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종말론을 내세운 사이비 종교집단이 일으킨 참극으로 판단해 수사를 확대했으며, 유씨와 세모해운도 수사 대상으로 떠올랐다. 조사 결과 유씨가 구원파 신도 헌금 11억원을 유용한 사실이 밝혀졌지만, 그가 오대양사건에 직접 관여한 정황은 드러나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유씨는 징역 4년을 선고받아 복역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기독교복음침례회 및 유병언 전 회장 관련 정정 및 반론보도문]

본 신문은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관련 기사에서 오대양 사건 당시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과 기독교복음침례회가 그 배후 연관된 것으로 알려졌다는 보도에 대해 인천 지방검찰청은 공문에서 오대양 사건이 “당시 수사기록 검토 결과 집단자살이 구원파 측이나 유병언 회장과 관계있다거나 5공 정권의 비호가 있었다는 사실은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혀와 이를 바로 잡습니다. 또 기독교복음침례회는 평신도들의 모임으로 목사라는 직위가 없어 오대양 사건 당시 유병언 전 회장이 기독교복음침례회에서 목사로 재직한 사실이 없으며 세월호 이준석 선장은 신도가 아닌 것으로 확인되어 이를 바로잡습니다.

한편, 유 전 회장 유족 측은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주식은 물론, 청해진해운의 대주주인 천해지, 천해지의 대주주인 아이원아이홀딩스의 주식을 전혀 소유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세월호의 실소유주가 아니고, 유 전 회장은 높낮이모임을 통해 회사 경영에 참여한 사실이 없으며, 유 전 회장 일가의 추정재산 중 상당수의 땅은 기독교복음침례회 신도들이 유기농 농산물 재배를 목적으로 설립된 곳으로 유 전 회장의 소유가 아니고, 해외에 어떤 부동산도 소유하고 있지 않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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