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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진의청심청담] 율사(律士)망국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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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4-14 21:35:01 수정 : 2014-04-14 21:3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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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곧 정의’… 자본주의의 현주소
율사들 각성 않으면 한국 미래 없어
고도로 복합사회인 현대는 법률의 도움이 없이는 한시도 움직일 수가 없다. 초강대국 미국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헌법과 법률이라고 한다. 문장의 의미가 확실한 법조문이 아닌 다른 관습이나 제도로는 이익과 이해가 상충하는 사회 질서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사회에 무전유죄(無錢有罪), 무권유죄(無權有罪)라는 말이 나돈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법부가 금과옥조로 섬기고 있는 정의나 공평의 의미를 무색케 하는 게 현실이다. 최근 사법부는 ‘황제노역’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재판에서 이기려면 최고의 로펌(대형법률사무소)부터 잡아야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 된 지 오래다. 따라서 로펌의 순위경쟁도 치열하다. 재벌과 로펌의 유대와 경쟁은 우리나라 권력층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라고 한다. 이 말은 로펌의 능력에 따라 유죄가 무죄가 되고, 승패가 뒤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언제부턴가 돈이 정의가 되고, 돈이 신이 된 것이 오늘의 한국자본주의의 현주소이다. 재벌과 율사(律士)들의 유착, 율사들의 과중한 정계 진출, 사회 부조리와 부정부패의 이면에 항상 율사가 개입되어 있는 점은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율사 마인드’의 사회 지배가 내홍이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서초동 대법원 청사를 찾으면 ‘정의의 여신상’을 볼 수 있다. 청사 중앙 홀에 있는 청동상은, 서구의 여신상이 칼과 저울을 들고 있는 데 반해 우리는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있다. 또 서구의 여신은 눈을 감고 있는 데에 반해 우리는 눈을 뜨고 있다. 우리가 눈을 뜨고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주관적으로 재판을 하겠다는 뜻인가.

우리의 여신상에 칼이 없어졌다는 것은 무의식적이지만 한국의 법정신을 그대로 표출한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본래 한국은 ‘로직’(원칙과 논리)이 약한 나라이다. 고대·중세에는 중국에서, 근대에는 서구와 일본에서 빌어 왔다. 이는 인문(人文)의 사대주의와 일제 식민통치 시대의 권위주의, 그리고 제국주의 세력이 식민지를 다스리기 위해 머리 좋은 한국인을 율사들로 만들어서 주구노릇을 하게 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재판은 우리사회의 모든 에너지를 빨아먹는 블랙홀과 같은 존재이다. 일반 서민들은 법원에 가야 할 일이 평생에 몇 번 있지 않다. 그래서 자신의 양심과 상식만 믿고, 재판에 응하기 일쑤다. 그런데 사기꾼이나 범법을 일과로 생각하는 무리들은 항상 율사들을 필요로 하는 까닭에 평소에 어떤 연고를 이용하더라도 향응과 뇌물을 베푸는 등 친분을 쌓아둔다. 율사들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악덕 기업가나 조폭들의 부정부패의 함정에 빠져들기 쉽다.

조선조 과거제도와 일제 때 고시제도의 전통이 가장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분야가 바로 사법고시이다. 사법고시 제도의 병폐를 고치기 위해 ‘사법대학원(법학전문대학원)’제도가 신설되었지만, 제도가 바뀐다고 하루아침에 율사들의 나쁜 버릇이 고쳐질 리 없다.

한국의 율사집단은 가장 비민주적이고 비생산적이고 권위적인 직업군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말하자면 가장 권위적인 집단이 민주주의를 이끌어가고 있는 셈이다. ‘율사들의 잔치’속에 우리사회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위선의 사회’로 멍들어가고 있다.

최근 허재호 전 대주그룹회장의 사건으로 인해 ‘향판(鄕判)’이라는 말이 드러났다. 고향이나 연고지에 오래 근무하게 함으로써 지역 실정에 맞는 좋은 재판을 하게 한다는 취지에서 출발하였다고 한다. 말 못해서 죽은 귀신이 없다더니 명분은 그럴듯하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퇴직한 선배 향판이 변호를 맡은 사건에 봐주기식 판결을 하고, 다시 자신이 변호사 개업을 할 때 보답을 받는 악순환의 고리, 향판과 향변(향변호사)은 그야말로 전관예우의 지방판이다. 전관예우란 예우가 아니라 부정의와 불법의 온상이다. 향판과 향변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왕조사회 때에 백성에게 가렴주구를 일삼던 향리(鄕吏)를 떠올리게 한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엘리트 집단이 섞으면 그 나라는 반드시 식민지가 되거나 망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잊었는가.

얼마 전에 국회를 통과한 ‘특별감찰관제’의 대상이 되는 고위관료에서도 판검사가 빠져 있다고 한다. 율사 출신 국회의원들이 삼권분립을 해칠 우려가 있다고 해서 그렇게 하였다고 한다. 고질적인 특권의식의 발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율사 마피아 집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단언컨대 율사들이 스스로 대오각성하지 않으면 소득의 향상과 상관없이 한국의 미래는 없다. 헌법정신은 온데간데없고, 법의 기술적인 말단이 사리사욕과 부정부패와 한통속이 되어 설치는 우리사회는 온통 아수라장이 되어 있다. 그동안 여러 차례 법조인들의 반성이 있었지만 대체로 진정성이 없고, 겉으로만 사과와 유감을 표시하거나 자신은 억울하다는 인상이 짙다. 이는 악덕에 익숙한 나머지 무슨 잘못을 했는지도 모르는 인상이다. 최근 사회적으로 필요하긴 하지만 이혼전문변호사, 파산전문변호사들이 사회 분열과 경제 교란에 앞장서고 있다.

역사의식도 철학도 없는 율사들을 길러 사회적 지도자로 모시고 있는 국민이 불쌍하다. 율사들로부터 전해오는 악덕이라는 것은 이루 말로 헤아릴 수가 없다. 원고와 피고의 변호사들끼리 조정이라는 명목으로 뒷거래를 하거나 3심 제도를 악용하여 재판의 고의적인 지연과 번갈아 승패 조작 등 일련의 소문이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율사망국론은 괜한 기우가 아니다.

박정진 객원논설위원·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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