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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사연 있어야 오디션서 살아남는다?

입력 : 2014-04-13 19:40:21 수정 : 2014-04-14 14: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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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 감동위해 거짓인생 강요… 방송후 돌아온건 악플·상처뿐”
공인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던 대학생 이모(27)씨는 지난해 말 한 방송사 오디션 프로그램 작가의 전화를 받았다. 작가는 “노래하는 모습을 유튜브에서 봤는데, 오디션에 꼭 출연해 줬으면 좋겠다”고 요청했다. 이씨가 출연 의사를 비치자 제작진은 극적 효과를 높일 수 있도록 출연 동기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이씨는 이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A가수의 광팬이어서 오디션에 참가했다고 과장했다.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진행자가 “시험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자 이씨는 시험에 떨어진 것이 부끄러워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포기했다”고 농담했다. 그런 뒤 “이것은 농담이고 잘 안됐다”고 설명했다. 방송사는 뒷부분을 빼고 앞부분만 내보냈다.

방송이 나간 뒤 이씨는 네티즌들의 악플에 시달렸다. “다 거짓말이다. 그 시험은 7월에 있었는데 방송을 위해 시험을 포기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이씨를 몰아세웠다. 이씨는 “방송 한 달 전부터 방송사에서 지정한 스튜디오에 연습을 하러 가느라 시험 준비를 못 했고, 생활도 엉망이 됐다”며 “그 대가로 받은 게 출연료 20만원과 비난 상처뿐”이라고 말했다.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하지만 극적 효과를 내기 위해 사실을 왜곡하는 편집에다 각색이 가미되면서 출연자들이 상처를 받고 있다.

연예인 지망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손모(29)씨의 경험은 유별났다.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갔던 그는 “프로그램 사전 인터뷰에서 과거 어머니가 병마에 시달렸던 이야기를 하자 나의 정신적 상처에 대해서는 배려하지 않고 어머니의 병상 사진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부분에 대해 제작진이 자꾸 질문해 매우 곤란했다”며 “최근에는 경쟁률이 높아지면서 출연자들이 알아서 자신의 이야기를 각색해서 준비해 간다”고 말했다. 방송이 과장되거나 극적인 이야기를 선호하기 때문에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살아남으려면 알아서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서 유명 밴드가 된 ‘버스커버스커’의 외국인 드러머 브래드(본명 브래들리 래이 무어·30·미국)는 지난해 10월 미국 음악 사이트와 인터뷰에서 한국 오디션 프로그램의 이면을 폭로해 논란이 됐다. 브래드는 “방송사가 다양한 사연이 필요해 우리에게 먼저 연락을 해왔지만 상품성이 없다고 판단해 우리를 탈락시킬 계획이었다”며 “하지만 우리가 떨어지고 네티즌들이 격분하자 다시 등장시켰다”고 말했다.

최근 한 공중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경연을 마친 후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본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이나 인물과 직접 관련이 없음.
SBS 제공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오디션 프로그램의 사실 왜곡은 방송사가 출연자들을 소모품으로만 여기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일반인들은 연예인과 달리 캐릭터화되고 악플에 시달리는 것에 무방비 상태(경험이 없다는 의미)”라며 “피해자들이 명백한 인권침해라는 사실을 깨닫고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하며, 방송사들은 의도적인 왜곡과 편집을 지양하는 ‘가이드 라인’을 만드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futurnalis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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