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진행자가 “시험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묻자 이씨는 시험에 떨어진 것이 부끄러워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포기했다”고 농담했다. 그런 뒤 “이것은 농담이고 잘 안됐다”고 설명했다. 방송사는 뒷부분을 빼고 앞부분만 내보냈다.
방송이 나간 뒤 이씨는 네티즌들의 악플에 시달렸다. “다 거짓말이다. 그 시험은 7월에 있었는데 방송을 위해 시험을 포기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이씨를 몰아세웠다. 이씨는 “방송 한 달 전부터 방송사에서 지정한 스튜디오에 연습을 하러 가느라 시험 준비를 못 했고, 생활도 엉망이 됐다”며 “그 대가로 받은 게 출연료 20만원과 비난 상처뿐”이라고 말했다.

연예인 지망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손모(29)씨의 경험은 유별났다.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갔던 그는 “프로그램 사전 인터뷰에서 과거 어머니가 병마에 시달렸던 이야기를 하자 나의 정신적 상처에 대해서는 배려하지 않고 어머니의 병상 사진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는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부분에 대해 제작진이 자꾸 질문해 매우 곤란했다”며 “최근에는 경쟁률이 높아지면서 출연자들이 알아서 자신의 이야기를 각색해서 준비해 간다”고 말했다. 방송이 과장되거나 극적인 이야기를 선호하기 때문에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살아남으려면 알아서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서 유명 밴드가 된 ‘버스커버스커’의 외국인 드러머 브래드(본명 브래들리 래이 무어·30·미국)는 지난해 10월 미국 음악 사이트와 인터뷰에서 한국 오디션 프로그램의 이면을 폭로해 논란이 됐다. 브래드는 “방송사가 다양한 사연이 필요해 우리에게 먼저 연락을 해왔지만 상품성이 없다고 판단해 우리를 탈락시킬 계획이었다”며 “하지만 우리가 떨어지고 네티즌들이 격분하자 다시 등장시켰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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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 공중파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경연을 마친 후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 본 사진은 기사의 특정 사실이나 인물과 직접 관련이 없음. SBS 제공 |
이재호 기자 futurnalis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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