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담합행위에 따른 과징금이라 뭐라 변명도 제대로 못하는 처지다. 오랜 기간 지속되는 국내 부동산 경기 위축으로 내수 시장에서 큰 덕을 보기 어려워진 상황에서 수백억원씩 과징금까지 물어야 하는 건설사들은 하루하루 고민이 커지고 있다.
10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이명박정부 이후 진행된 국책·공공공사와 관련해 담합 등을 이유로 현재까지 건설사에 공정위 과징금이 통보된 사업은 모두 5건이다. 지난해 4대강 사업부터 이날 통보된 부산지하철 1호선까지 부과된 과징금을 모두 합치면 3951억원에 달한다.
이번 부산지하철 건은 비교적 소액이라 다르지만, 지난 3일 통보된 경인 아라뱃길(경인운하) 공사는 입찰에서 담합을 한 혐의로 991억원의 과징금이 부과됐다. 또 14개 건설사는 검찰 수사까지 받게 돼 속앓이가 특히 심하다.
한 건설사 임원은 “정부에서도 안정적인 사업을 위해 국책사업에 대형 건설사 참여를 독려하고 우리도 근로자를 놀리는 것보다 나으니까 하긴 하지만 수익은 거의 없다”고 하소연했다.
4대강 사업으로 8개사가 1115억원을 물었는데, 환경단체 시위 등으로 공사기간이 예상 외로 길어지면서 대부분 적자를 봤다는 주장이다.
과징금을 부과받은 다른 대형 건설사 임원도 한숨만 내쉬었다. 그는 “마진율이 2∼3%대에 불과하지만, 국책 사업이라 빠듯한 살림살이를 쪼개고 쪼개 참여한 것인데 거액의 과징금과 비난의 대상이 된 현실이 억울하다”고 말했다.
‘턴키’(건설사가 설계부터 시공까지 모두 책임지고 마치는 방식) 공사 시스템에 대한 불만도 제기됐다. 원래 기술 경쟁이던 턴키 입찰이 어느 순간부터 가격 경쟁이 되어버렸고, 설계비 등을 날리는 것을 막기 위해 경쟁사끼리 정보라도 파악하려고 하면 담합이 된다는 것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턴키 입찰에 참여하려면 설계비만 적은 규모는 50억원이며 큰 규모는 100억원이 들고 2위 안에 들지 못하면 이 돈이 고스란히 사라진다”며 “부담이 크니까 정부에서도 발주할 때 ‘알아서 잘 나눠서 하라’는 식으로 하는데 공정위는 행정 편의적인 잣대로만 판단한다”고 불평했다. 턴키 방식에선 공사를 따낸 업체는 설계비를 모두 보전받고 2등 한 건설사는 50%만 돌려받는다. 3등부터는 없다.
이에 따라 건설사 사이의 분위기도 흉흉해지고 있다. 공정위가 ‘리니언시’(담합자진신고자감면제) 제도를 활용해 조사를 하면서 과징금을 상대적으로 덜 부과받은 건설사들이 ‘제보자’로 낙인찍히고 있어서다.
반발 조짐도 엿보인다. 경인운하로 과징금을 부과받는 A, B 건설사는 공정위 의결서가 도착하는 대로 서류 검토 등을 거쳐 각각 이의 제기와 행정소송에 들어간다는 방침이다.
A사 관계자는 “국내 굴지의 대형 건설사 3곳이 치열하게 경쟁했는데 공정위가 담합이라고 판단한 근거 등을 따질 것”이라고 말했다. B사는 “담합 현장에 있었다고 조사된 회사 임원이 현장에 없었다는 증거를 제출했는데도 공정위가 과징금을 때렸다. 행정소송으로 부당함을 밝히겠다”고 덧붙였다.
나기천 기자 n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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