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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노역 일당 5억원, 사법정의는 어디 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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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3-24 21:00:55 수정 : 2014-03-24 21: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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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22일부터 하루 노역을 5억원으로 계산한 노역장 유치 생활을 시작했다. 허씨는 탈세·횡령 혐의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 벌금 254억원을 선고받았다. 뉴질랜드로 도피했다가 22일 저녁 귀국해 체포됐다. 허씨는 노역으로 벌금을 때우겠다고 했다. 법원은 허씨에게는 벌금을 대신할 노역을 일당 5억원으로 산정해 50일을 선고했다. 하지만 영장실질심사 기간 1일, 토·일요일, 어린이날, 석가탄신일을 빼면 실제 노역장에서 일하는 기간은 33일에 불과하다. 노역장에서 하는 일도 기껏해야 쇼핑백이나 두부, 가구를 만드는 일이다. 어처구니가 없다.

허씨가 비싼 몸값이 된 것은 법원의 황당한 선고 때문이다. 508억원 탈세와 100억원 횡령 혐의로 기소된 허씨에게 1심 재판부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08억원을 선고했다. 노역 일당도 2억5000만원으로 계산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에서 형량을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으로 줄이고, 벌금도 절반인 254억원으로 감했다. 노역 일당은 5억원으로 늘렸다. 벌금 미납자의 노역은 통상 도시 일용근로자의 일당에 해당하는 5만원으로 산정한다. 일반인이라면 1391년간 해야 할 노역을 허씨는 단 50일 만에 끝내는 것이다. 상상하기 힘든 관대한 판결이다.

허씨는 광주를 대표하는 기업인이었다. 1, 2심 재판장 모두 광주·전남 지역에서만 근무해온 향판(鄕判)이라고 한다. 마음먹고 봐준 것이라고 여길 수밖에 없다. 허씨를 기소한 검찰도 봐준 인상이 짙다.

노숙 생활을 하던 김모씨에 대한 판결이 눈길을 끈다. 지난해 12월 추위를 피해 문이 열린 사무실에 들어갔다가 단돈 1만5600원을 훔친 혐의로 그에게는 징역 3년의 중형이 선고됐다. 절도 전과가 여러 차례 있어 법에 따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이 적용된 결과라고 한다.

500억원대의 세금을 도둑질한 사람은 실형을 면하고, 1만5600원을 훔친 사람은 3년 동안 감옥에서 살아야 한다. 그것은 그렇다 치자. 5만원의 일당으로 노역을 하는 숱한 사람에게는 무엇이라고 변명하겠는가. 사법정의가 과연 살아 있는지를 묻게 된다. 누가 보더라도 유전무죄 무전유죄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노역 일당은 재판부 재량에 따라 정해진다. 그러나 잣대가 사람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면 공정한 법치라고 할 수 없다. 사법정의가 무엇인지 사법부는 깊이 반성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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