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화재 석진욱 빈자리 메워 현대 배구에서 중요성이 새삼 부각되는 포지션이 수비형 레프트다. 서브가 예전처럼 서비스의 개념이 아닌 가장 중요한 공격 전술 중 하나로 자리 잡으면서 얼마나 서브를 잘 받아내느냐에 따라 승부의 향방이 갈리게 됐다.
수비형 레프트가 중요해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서버는 수비가 좋은 리베로가 아닌 수비형 레프트에게 서브를 집중적으로 때린다.
이 같은 이유로 안정적인 수비형 레프트를 보유한 팀이 강팀이 되는 것은 당연지사다. 만년 3등 구단이었던 대한항공이 2010∼11시즌 구단 최초의 정규리그 우승을 비롯한 최근 3년간의 챔프전 진출이 최고의 수비형 레프트로 꼽히는 곽승석의 입단(2010년) 이후부터라는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지난 시즌까지 챔프전 6연패를 이룩하며 최강으로 군림한 삼성화재가 올 시즌만큼은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었다. 수비형 레프트의 정석이라고 불리던 석진욱(러시앤캐시 수석 코치)의 대체자를 구하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였다.

삼성화재의 ‘고준용 키우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시즌 시작 전에 새가슴을 극복하기 위해 번지 점프를 시켰다. 길거리 헌팅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에 불구하고 그의 경기력은 신치용 감독에게 큰 만족을 주지 못했다. 경기 도중 불호령을 듣는 일이 다반사였다. 올스타전 휴식기에 포지션이 겹치는 류윤식이 대한항공에서 이적해 오면서 위축되기도 했다.
그러나 고준용은 훈련의 힘을 믿었다. 주변의 ‘석진욱 없는 삼성화재는 안 될 것’이라는 혹평은 고준용이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됐다. 결국 고준용은 정규리그 우승이 걸렸던 9일 현대캐피탈전에서 ‘인생경기’를 펼쳤다. 득점은 고작 4점에 불과했지만, 서브 리시브 26개를 정확하게 세터에게 전달하며 살림꾼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칭찬에 인색한 신 감독은 “오늘은 고준용의 날”이라고 치켜세웠다. 이제 고준용의 시선은 챔프전에 향해 있다. 삼성화재가 챔프전 7연패를 이뤄내기 위해선 고준용의 힘이 또 한 번 필요하다.
남정훈 기자 ch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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