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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정의 공연 돋보기] 가깝고도 먼 사이 삼촌과 조카의 잔혹사

입력 : 2014-02-27 22:04:42 수정 : 2014-02-28 08:0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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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말에, 호랑이 있는 고을에서는 살아도 삼촌 있는 고을에서는 못 산다고 한다.” 김별아의 소설을 각색한 모노드라마 ‘영영이별 영이별’ 중에 언급된 내용이다. 그러고 보니 정말 삼촌과 조카 사이의 갈등과 비극을 다룬 연극이며 뮤지컬이 꽤 많다.

‘영영이별 영이별’은 삼촌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목숨까지 잃는 단종의 모습을 애달프게 지켜봐야 했던 정순왕후의 이야기로, 이미 죽은 그녀의 영혼이 49재를 지켜보며 굴곡지고 한 많은 지난 생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서술된다. 단종이 사사당한 뒤 서인이 되어 온갖 수난을 겪는 가운데, 삶을 끝까지 살아내는 것만을 유일한 복수로 여겼던 그녀의 아이로니컬한 모습이 깊은 슬픔을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은 2004년에 윤석화의 모노드라마(임영웅 연출)로서 감동과 여운을 선사했었는데, 올해 공연(최치림 연출)에서는 박정자가 출연하여 ‘낭독 공연’을 펼친다는 점에서 새로운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무대에는 정순왕후의 삶에 대한 열정과 초연함을 모두 느끼게 하는 문체가 박정자 특유의 강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를 통해 한 편의 시처럼 섬세하게 읊조려진다. 그 가운데 해금 아티스트 강은일의 연주와 기타 소리가 수묵화 같으면서도 모던한 영상에 녹아든다.

한편, 오태석의 희곡 ‘태’에서도 세조와 단종의 역사적 비극이 다뤄진다. 특히 사육신 박팽년의 이야기를 비중 있게 조명된다. 세조는 박팽년의 며느리가 아들을 낳으면 죽일 것이며 딸을 낳으면 살릴 것이라고 선언하는데, 결국 며느리는 아들을 낳게 된다. 이에 종이 자신의 아들과 바꿔치기하여 박팽년의 손자를 살린다.

동명소설이 원작인 ‘영영이별 영이별’은 삼촌 세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목숨을 잃은 단종의 모습을 지켜봐야 했던 정순왕후의 한 많은 이야기를 담았다.
이 극에서는 세조를 비롯한 모든 등장인물들의 인간적인 갈등과 고뇌가 관객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마지막에 종의 아내가 죽은 아기를 찾으며 피토하듯 절규하는 장면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름 없이 희생된 수많은 약자들의 모습을 떠올리게도 한다.

한편, 셰익스피어의 ‘햄릿’에서는 조카가 삼촌의 죄를 단죄한다. 덴마크의 왕자 햄릿은 어느 날 아버지인 선왕의 유령으로부터 자신이 동생 즉 햄릿의 삼촌에게서 독살당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당시 삼촌은 어머니와 결혼하여 선왕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조카가 삼촌에게 복수하고 자리를 되찾는 이러한 햄릿의 원형적인 이야기는 다양한 작품에서 등장한다. 동명의 애니메이션이 원작인 디즈니의 블록버스터 뮤지컬 ‘라이온 킹’에서도 이러한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어느 날 밀림의 왕 무파사는 하이에나들과 공모한 동생 스카에 계략에 빠져 살해당한다. 그리고 무파사의 아들 심바는 밀림에서 추방되어 낯선 곳을 떠돌게 된다. 그러나 미지의 땅에서 멧돼지 품바와 미어캣 티몬의 도움으로 무사히 성장한 심바는 밀림으로 돌아와 왕위를 되찾는다. 대표곡인 ‘서클 오브 라이프’에서는 삶과 죽음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자연은 일견 잔혹해 보이지만 결국 순리대로 흘러간다는 메시지를 음미해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그리스 비극의 여걸 안티고네는 국왕인 삼촌에게 맞서다 죽음을 맞이한다. 그녀는 반역을 꾀했다는 이유로 매장이 금지된 채 길가에서 썩어가던 오빠를 묻어주고는 그 벌로 무덤에 갇힌다. 그리고 어떤 회유에도 타협하지 않고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다. 그녀는 국가의 법보다 더 오래된 혈연간의 윤리를 선택한 것이다. “미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서” 태어났다는 대사는 그녀의 심경을 대변한다.

이와 같은 삼촌과 조카 간의 비극은 혈연간의 잔혹사라는 점에서 밀도 높은 충격과 슬픔을 전한다. 동시에 종종 권력을 두고 일어난 세대 간의 싸움으로 묘사되며 또 다른 의미로 와닿기도 한다. ‘비극’은 서로 다른 시대의 윤리적인 힘들 간의 충돌이기도 하다. 이때 과거가 현재에 의해 스러지는 모습은 역사의 비극성을, 반대의 경우는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게 하곤 한다.

현수정 공연평론가·중앙대 연극학과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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