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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영원한 보헤미안’ 최동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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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2-24 21:12:28 수정 : 2014-03-25 15: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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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그를 만난 것은 경기도 이천에서다. 지인의 집을 빌려 그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히말라야로 떠났다. 최근 그가 대구에 작업실을 빌려 작업을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떠도는 삶 속에 잠시 머물고 있는 것이다. 화가 최동열(63)을 그렇게 다시 마주하게 됐다.

처음 그를 만났을때 들려주었던 그의 이력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문학 지망생이었던 그는 수재들의 코스였던 경기중학에 입성을 하게 된다. 규격화된 성공코스에 떠밀려서다.

하지만 경기고 진학에 실패하면서 그는 ‘사회의 규격’에서 벗어나게 된다. 검정고시를 거쳐 15살의 나이로 한국외대 베트남어과에 입학했지만 1년 반 만에 그만두고 해병대에 자원입대해 베트남전에 첩보대원으로 참전했다. 22살에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가 공장 노동자, 유도와 태권도 사범, 바텐더 등을 하며 술과 마약에 빠져 밑바닥 인생을 살기도 했다.

그러다 1977년 뉴올리언스에서 지금의 아내 엘디(L.D.로렌스)를 만나 독학으로 미술을 시작하게 된다. 재즈의 고장인 뉴올리언스는 문학적 영감을 얻기 위해 찾아간 한국청년을 압도하기에 충분했다. 평생 화업의 동지가 된 아내는 그에게 화필을 들게 만들었다. 그는 이후 멕시코 유카탄 정글지대과 미국 서북부 지역, 중국 우루무치, 티베트, 네팔 등에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2년씩 머물며 작품 활동을 해 왔다.

이번에도 그에게 왜 떠도는지 짓굳게 다시 물어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지겹도록 던진 질문이다.

“인간이 정착을 한 건 떠돌던 기간에 비해 매우 짧습니다. 북방민족인 우리는 더욱 더 그렇습니다. 긴 역사에서 보면 인류는 떠도는 삶이었습니다.”

그는 여행을 할 때도 대강 목적지만 정한다. 비행장에서 내려 버스를 탈지, 기차를 탈지,어느 길로 갈지는 늘 유동적이다,

“모든 것을 예약을 하면 왠지 저는 오히려 마음이 불편해져요. 물론 생전 처음 다다르는 곳에서 모든 것을 정하자면 황당하고 두렵기도 하지요. 하지만 안개 너머의 풍경을 기대하는 것 같은 가슴의 설렘이 있어요” 

단촐하기 그지없는 히말라야 베이스캠프 작업실 풍경.
지난해 히말라야 트랙킹 때도 예외가 아니었다. 같이 갈 가이드, 야크, 조랑말, 포터 등을 닷새 걸려 구했다.

“우리 인생도 미리 정해진 것이 없잖아요. 예약 같은 삶을 산다면 얼마나 지루하고 따분할까요.”

한달 식량을 등에 진 조랑말 두마리가 눈 쌓인 계곡에서 100m 아래 강으로 굴러 떨어지기도 했다. 모든 식량이 물에 젖었지만 다행히 말들은 크게 다치지 않았다. 4500m 고지에서 식량을 널어 말리느라 3일을 고생했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주위의 만년설 덮인 설산을 그렸다.

율리시스가 트로이 전쟁 후 그리스의 집으로 돌아가는 삶을 그린 호머의 오디세이에는 그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인 님블(nimble)이 자주 나온다. 새로운 환경에 접했을때 적응하는 마음의 태도를 이야기한다. 사전적 의미로는 동작이 민첩하고 생각이 날렵함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볍고 생각이 비어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짐이 없고 고정관념이 없어야 된다는 얘기다.

“인간이 집을 짓고 정착하기 전에는 새로운 곳에서 언제나 움직이는 삶이었습니다.주위를 살피느라 언제나 님블해야 했을 겁니다.” 사실 율리시스가 집으로 돌아가는 과정은 긴 여로로서 하나의 삶 자체를 은유하고 있다.

“정착이 불규칙한 자연에서의 분리라 한다면, 움직이는 삶은 불규칙한 자연속에서 쉬는 리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정착에 안정감을, 떠도는 삶에선 불안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는 무서움을 받아들일 때 힘과 여유가 생긴다고 한다. 이것이 예술의 출발점이라 했다.

“아프리카의 세렝게티 같은 곳에 한 번 가 보십시요. 짐승들은 먹고 먹히는 긴장감 속에서도 놀고 여유를 부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촉감이 열려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자연에서 분리된 인간은 이런 긴장감 마저도 스릴이라 부르며 하나의 오락으로 전락시키고 있다. 그가 정한 스케줄 없이 떠도는 삶을 선택한 것은 그의 촉감을 열기 위한 과정이다.

“떠도는 삶에선 내일과 어제도 희미하고 그저 새 환경이 연달아 나타나는 지금 밖에 없게 됩니다. 그래서인지 몇달 떠돌고 집으로 돌아오면 저는 가끔 밤에 깨어 지금 여기 침대가 어디인지 모르는 공포의 낭떠러지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아직 오늘로 마음이 따라오지 못해서이지요.”

오지에서 그의 작품은 이런 분위기에서 탄생한다. 몸은 와 있어도 마음은 아직 그 곳에 도착하지 못해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시간이 끊겨진 공간에서다.

“상상하지 못한 묘한 시간이지요. 아니 시간이 얼어 붙은 공간입니다. 원초적 공간이 이럴 것입니다. 영원이 느껴지는 찰나의 순간이라 할 수 있지요.”

그에게는 극한상황이 두려움이 아닌 쉼이 되고 그림이 된다. 산을 신으로 섬기는 원주민들은 그에겐 산의 정기를 터득케 해주는 스승이다.

스스로를 홈리스라고 칭할 정도로 고정적으로 사는 집이 없는 최동열 작가. 그는 모든 것을 훌훌 버리고 낯선 지역에서 장기간 머물며 작업하는 것을 즐긴다.
“어느 순간 히말라야에 오를 때 갑자기 집에 온 느낌을 받았어요. 진정한 휴식이 된 것이지요.”

원초적인 공간의 체험이라 할 수 있다. 요즘엔 좀처럼 그것을 쉽게 느낄 수 없는 시대가 됐다.

“르네상스시대 무역으로 온 세상들이 연결되어 모르는 곳들이 사라지고 모든 곳이 단지 신기함의 대상으로 전락하면서 그렇게 됐습니다. 중세시대만 해도 사회가 고립이 되어 저 숲 속은 모른다는 개념이 있었고, 매일 숲속을 들어갈 때는 강렬한 긴장감이 형성되었지요. 무역과 소통의 열린 르네상스에서는 모든것을 다 알 수 있다는 호기심만 더 강렬해졌습니다.”

모든 스케줄이 잡힌 관광객으로의 여행은 르네상스 같이 벌써 많이 알고 호기심으로 하게 되지만, 그가 아무 계획 없이 하는 떠돎은 중세시대 처럼 모른다는 개념으로 시작한다. 인터넷시대의 21세기는 태도상 다 아는 르네상스시대와 흡사하다.

“20세기나 중세시대에는 모르는 곳이 많아 깊이 생각하며, 모르는 곳과 대상을 대하는 두려움과 깊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모르는 상황에 처하면 온몸의 세포가 열릴 자세가 되었지요.이것이 매일 일어나는 일이 되고 습관이 되면서 인간의 행동력이 됐어요.”

그는 온 몸의 세포가 열리는 원초적 공간을 그림을 통해 사람들과 공유하고자 한다. 그에겐 사랑놀이 같은 희열이다. 그가 40년 가까이 보헤미안으로 사는 이유다. 10월에 그는 다시 히말라야로 떠날 계획이다.

유고의 철학자 지젝은 개인의 삶이 전체의 삶과 융합되지 않고 따로 노는 이야기는 진정한 비극이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진정한 비극인 예술을 택했다.

인사동 선화랑에서 26일부터 3월11일까지 열리는 ‘최동열의 타임라인 : 1977∼2014’전은 파란만장한 작가 최동열의 작품 전반을 조망해 볼 수 있는 자리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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