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문화산책] 평범하다고 하여 사랑까지 평범할까

관련이슈 문화산책

입력 : 2014-01-10 20:57:05 수정 : 2014-01-10 20:57:05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드라마 주인공 ‘재벌 2세’ 일색
소외·박탈감 주는 현실 아쉬워
심사위원이 지원자에게 묻는다.

#심사위원 1: 자신을 소개해 보세요.

지원자A: 예. 저는 넉살 좋고 따뜻한 성품을 가진 연예인 로드매니저입니다. 제가 담당하는 연예인을 오빠처럼 따뜻하게 보살피면서도 아낌없는 사랑을 줄 예정입니다.

#심사위원 2: 얼굴도 잘생기고, 키도 크고, 성품도 좋아 보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한데 혹시 아버지는 뭐 하시나요.

지원자 A: 저희 아버지는 재벌입니다. 건설회사를 비롯하여….

#심사위원 전원: 됐습니다. 어떤 회사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아버지가 재벌이면 됐습니다. 주인공 자격을 충분히 갖췄습니다. 그럼 통과. 다음 분 자기 소개하세요.

지원자 B: 저는 중소기업에 다니는 대리입니다. 회사 동기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이 친구와 남은 삶을 함께 보내고 싶습니다. 저는 만능스포츠맨이고, 저보다 어려운 사람을 살펴볼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심사위원 3: 잠깐, 부모님은 뭐 하시나요.

지원자 B: 작은 식당을 운영했으나 현재 몸이 좋지 않아 집에 계십니다. 어머니는 전업주부입니다.

#심사위원 전원: 훌륭하신 분인 듯하나 죄송합니다. 저희가 찾는 분은 아닌 듯합니다.

물론 가상의 장면이고 실제 이런 오디션이 있을 리는 없다. 그런데 이런 가상 오디션이 어디에선가 존재하는 게 아닐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요즘 남자 주인공의 필수요소는 일단 ‘재벌의 후계자’일 것이 돼 버렸다. 길 가다가 만난 사람과 투닥거리면서 사랑에 빠졌는데 알고 보면 백화점 후계자이고, 전생의 남자와 현생에서 다시금 사랑에 빠졌는데 역시나 그 현생의 남자는 재벌 2세이다. 재벌 2세 남자는 어느새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는 흔한 존재가 돼 버렸다.

임윤선 변호사
돌이켜 보면 어렸을 때 화제가 된 드라마 주인공은 분명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대 그리고 나’ 에선 어촌 출신의 평범한 가족이 주인공이었고, ‘서울의 달’의 주인공은 달동네에서 꿈을 갖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평범한 사람은 남자 주인공 자리에서 배척당하기 시작했다. 조금 더 화려하되 조금 덜 현실적인 게 뭐가 나쁘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 이유를 소외감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대부분의 사람은 어린 시절 자기 인생의 주인공은 자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자라왔다. 그렇지만 성장할수록 현실은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소외감을 선사한다. 세상에는 왜 그리 잘나고 가진 것 많은 사람이 많은지. 보통사람은 잘난 사람의 들러리 인생인 것 같고, 심지어 필요없는 존재인 것 같기도 하다.

그래도 단 한 가지 들러리로 전락해서는 안 되는 분야가 있다면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평범한 존재를 그 누군가에게만은 특별한 존재로 탈바꿈시키는 것, 둔하기 짝이 없는 감성을 예술가의 감성으로 바꿔 주는 것, 그리하여 이 세상을 조금 더 살 만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바꿔 주는 것, 그것이 사랑이다. 그러기에 나는 지위가 높든 낮든, 연봉이 높든 낮든, 그 누구든 간에 사랑만은 아름답고 뜨겁게 할 권리가 있다고 믿고 싶다.

그런데 퇴근 후 집에 돌아와 좁더라도 편안한 내 집에서 기분이나 풀자고 TV를 켰는데 그마저도 드라마는 가진 것 많지 않은 사람을 또다시 배제시킨다. 모든 것에 가격이 매겨지는 사회라고 하지만 이제는 사랑마저도 가격표가 부착된 기분이다. 그리하여 어떤 사랑은 비싸게 팔려 각광받고, 어떤 사랑은 염가 할인을 해도 안 팔려 이월상품으로 넘겨지는 것 같다. 최소한 사랑에서만큼은 주인공이어야 하고, 사랑에서만큼은 그 누구보다도 특별한 사람이어야 하는 것 아닌가.

사실 이 점 때문에 나는 근래 TV 드라마를 거의 보지 않는다. 하지만 신년을 맞이해 작은 바람이 있다면 나도 드라마를 보며 소담히 미소짓고 싶다. 드라마에서 가진 것 적어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우리네 사람의 모습을 자주 보면 좋겠다는 것이다. 사람이 평범하다 하여 사랑까지 평범한 것은 아니다.

임윤선 변호사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