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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 ‘조작된 역사책’이지만 고대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

입력 : 2014-01-02 20:16:57 수정 : 2014-01-02 20: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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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수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등 7명 역주 붙인 학술서 발간 “가을 7월에 임나국이 소나갈질지를 파견하여 조공하였다. 임나는…바다를 사이에 두고 계림의 서남에 있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서 ‘임나(任那)’가 처음 나오는 부분이다. 일본서기는 일본의 고대사 왜곡 중 가장 심각한 사례인 ‘임나일본부설’, 즉 고대 일본이 가야 지역를 지배했다는 주장을 담은 유일한 사료다.

“아직기는 경전도 잘 읽었으므로 태자 도도치랑자의 스승으로 삼았다. 천황이 아직기에게 “너보다 훌륭한 박사가 있느냐?고 묻자 “왕인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역시 일본서기에만 나오는 내용이다. 백제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아직기, 왕인은 일본에 한반도의 선진문물을 전한 인물이다. 

한·일 간 고대사 논쟁에서 일본서기는 빼놓을 수 없는 존재다. 임나일본부와 같은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담아 일본이 한국을 낮추어 보는 근원이 되었다. 한편으로 왕인, 백제의 왕력 등 우리 역사책이 전하지 않는 내용이 많아 한국고대사를 복원하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사료이기도 하다. 일본서기는 우리에게 ‘조작된 역사책’이기도 하지만 고대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기도 한 셈이다.

6년여의 작업 끝에 이 책에 본격적인 해제, 역주를 붙인 학술서가 처음으로 나왔다. 동북아역사재단 연민수 연구위원이 중심이 돼 7명의 연구자가 최근 ‘역주 일본서기’ 3권을 발간했다. 연 연구위원을 만나 일본서기가 편찬된 배경에 대해 먼저 물었다.

“일본이 통일국가를 이루고 천황을 중심으로 한 통치의 정당성, 천황의 신성성을 주장하기 위해 편찬한 최초의 정사다. 680년에 시작해 720년에 최종 편찬됐다. 이 무렵 천황, 일본이라는 호칭이 생겼다. 우리에게 관심이 가는 것은 한반도 국가 관련 기록이 굉장히 많다는 점이다. 가야와 고구려, 신라, 백제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다.”

―일본서기에서 한반도 국가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나.

“천황의 지배를 받는 조공국, 번국(藩國)으로 기술되어 왜곡이 상당히 심하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임나일본부설이다. 이 설을 입증하기 위해 일제강점기에 가야 고분을 발굴했으나 일본계 유물이 나오지 않아 일본 학자도 ‘임나일본부설은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다’고 했다. 이제 전통적인 의미의 임나일본부설은 일본에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연 연구위원에 따르면 한반도의 국가를 조공국인 양 취급하는 왜곡은 일본서기의 편찬 배경, 당대 국제질서의 변화 등과 맞물리면서 비롯된 것이다.

“일본이 통일국가로서의 체제를 확립하고, 천황의 위상을 공고히 하는 데 한반도 제국(諸國)을 많이 이용했다. 상대를 낮춰서 스스로를 높이려는 전략적, 정치적 언사는 어디나 있지만 일본은 특히 심했다. 치열한 전쟁을 벌이던 삼국이 왜국에 동맹관계를 제안하다 보니 군사적인 우월의식도 있었을 것이다.”

6년간의 작업 끝에 일본서기 역주 작업을 끝낸 동북아재단 연민수 연구위원은 인터뷰에서 “일본서기가 왜곡으로 가득찬 책이기는 하지만 한국 고대사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된다. 잘못된 부분은 피하지 말고 냉정하게 판단해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범준 기자
편찬 당시 쇠퇴기에 접어들었던 백제, 고구려가 일본에 군사원조를 요청하고, 일본에 유입된 백제계 유민을 포섭한 사실 등을 확대, 왜곡해 한반도 삼국을 조공국인 양 취급한 것이다. 일본서기의 이런 태도는 근대에 들어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만들면서 가졌던 ‘한국 멸시론’의 원류가 될 정도로 끈질긴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

“일본 우익사상의 바이블이 일본서기다. 일본 정신을 집약하고, 일본 고대국가의 정체성, 정통성을 담은 책이라고 보면 된다. 하나의 고대 혈통(천황가)이 현대까지 내려오는 것은 일본 말고는 없다고 생각한다. 한국 입장에서는 왜곡된 한국관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식민지 지배의 정당성을 일본서기에서 찾았다.”

―하지만 일본서기는 우리 고대사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되는 책이다.

“그렇다. 백제 관련 기록이 상당히 많다. 예를 들면 왕의 생몰, 즉위 기록은 삼국사기와 상당히 일치한다. 무령왕은 왕릉의 지석 발굴로 태어난 날짜가 확인되는데 일본서기의 기록과 같다. 삼국사기가 연대적인 면에서 부실한 면이 있는데 이런 점을 보완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사신 파견 등에 관한 기록을 통해 한반도 내부의 정황을 분석할 수도 있다.”

―일본서기를 고대사 연구에 어떻게 활용해야 한다고 보나.

“우리 입장에서 (왕인 등의 문물전래와 같은) 유리한 것만 (일본서기에서) 빼서 사용하는 경향이 강했다. 일본서기의 전체적인 맥락은 무시하고 연구에 필요한 부분만 활용한 것이다. 일본서기에서 한반도를 보는 (잘못된) 인식을 걷어내고 국제정세, 한반도의 내부 상황을 전체적으로 고려해 연구해야 한다. 문제가 있다고 기피할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밝혀서 필요한 부분은 받아들이고,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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