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이슈&현장] 협동조합법 시행 1년

입력 : 2013-12-03 06:00:00 수정 : 2013-12-03 06:00:0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협동조합 인가 서류 들고 ‘뺑뺑이’… 설립 후엔 자금 없어 허덕 애니메이션 제작자로 활동했던 이정하(43·여)씨는 요즘 정신장애인이 주축이 되는 문화예술협동조합 ‘파도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이씨는 정신장애에 대한 인식 개선에 나서는 한편 예술창작활동으로 자립해 사회적 편견을 타파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6개월 전 목표와 의지를 확실히 하고 출발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협동조합 설립에 필요한 자금, 각종 절차 등 신경 쓸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설립을 지원하는 각종 기관과 단체를 찾아다녔지만 교육이나 자문 등에 대한 준비가 제대로 되지 않은 대다수는 책임을 미루기 일쑤였다. 이씨는 “협동조합의 취지와 목표가 잘 맞는다는 생각에 추진하기로 했는데, 설립과정부터 생각과 다른 부분이 너무 많고 지원이 대체 어떻게 이뤄지는지 이해하기 힘들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1일로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 1주년을 맞이했다. 대안경제에 대한 열망을 반영하듯 지난 1년간 협동조합은 국내에 우후죽순처럼 퍼졌다. 자본주의의 폐해가 심각한 현실 속에서 협동조합이 사회적경제, 대안경제 등의 이름으로 공감대를 형성한 덕분이다. 시행착오를 줄이고 보다 빠른 시간 내에 궤도 위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 그러나 협동조합기본법 준비기간이 충분하지 못했던 탓에 설립과 운영을 담당하는 정부·민간기관의 초기 대응이 매끄럽지 못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아직 문턱 높은 협동조합


지난달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제1회 협동조합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지난 5월 신고 수리·인가된 협동조합 기준)에 따르면 협동조합 설립을 신고한 뒤 인가까지 평균 소요 기간은 2.6개월이었다. 이 중 3개월 이상 걸린 협동조합 263개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설립절차 복잡(33.5%), 조합원 모집 어려움(24.7%), 공무원 업무지연(14.8%) 등이 설립 인가 지연의 대표 이유로 꼽혔다.

협동조합 관련 전문가들이 제대로 포진한 지원기관이 많지 않은 데다 담당 공무원 교육도 제대로 되지 않은 경우도 허다했기 때문이다. 예술창작 관련 협동조합 설립을 준비 중인 박모(38)씨는 “창업이나 사업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행정적 준비과정이 복잡해 담당 기관을 찾아가도 속시원하게 답해주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설립 뒤 운영 과정에서도 이러한 문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설립된 협동조합의 절반 정도는 목표했던 사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인가를 받는 데는 성공했지만 이 중 33.4%는 운영자금 부족, 22.3%는 수익모델이 예상과 다르다 등의 문제를 호소했다. 아직 분야별로 제대로 된 성공 모델이 나오거나 관련 기관의 지원책, 각자 추구했던 사업목표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서 조합원이 30명 미만인 경우가 약 77%를 차지했다.

◆추진력 이어가려면 정부가 나서야

초기 단계이기 때문에 이러한 혼란은 어느 정도 예상된 부분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170년의 역사를 지닌 협동조합 선진국에 비해 단기간에 추진하는 한국은 초기에 정부가 해야 하는 역할이 클 수밖에 없다. 협동조합은 일반 기업에 비해 노동집약적이거나 인적 관계가 중요한 분야에서 경쟁력을 발휘한다. 유통, 농업, 보험 등 중소기업 규모가 대표적이다. 자금 조달부터 운영 전반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철강, 자동차 등 규모가 큰 영역은 쉽지 않다.

이 중 활동 영역이 겹치는 유통 분야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자금력은 물론 홍보, 인원 등 전반에서 유리한 기업과 상대적으로 규모가 영세한 협동조합이 별다른 구분 장치 없이 맞붙는다면 결과는 뻔하다. 불공정 경쟁에 대한 감시와 규제를 지속적으로 하면서도 유망한 협동조합에 대해 각종 혜택을 부여하는 정부의 중간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자생력이 가장 중요한 협동조합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된다. 그러나 스테파니 자마니 볼로냐대 교수의 견해는 다르다. 그는 “한국의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던 당시 기업을 육성하는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부실기업을 지원한 예가 많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 지원금을 눈먼 돈이라 생각하고 몰려드는 경우를 걸러내 제대로 지원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을 단서로 달았다.

◆연합회, 제자리 찾아갈 수 있을까

기업에 비해 규모가 영세한 협동조합이 영향력을 키울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방법은 연대다. 지역과 국경을 초월한 연대는 국제협동조합연합회의 주요 원칙 중 하나다. 정부로부터 협동조합 관리의 전권을 넘겨받은 이탈리아의 협동조합연합회는 2년 단위로 협동조합을 심사해 제대로 운영되지 않을 경우 탈락시킨다. 또 전국의 협동조합을 기반으로 힘을 내기 때문에 영향력은 여느 대기업에도 뒤지지 않는다.

2일 전국 단위 협동조합연합회가 설립됐다. 그동안 지역별, 분야별로 연합회가 설립되기는 했지만 참여가 미비해 제역할을 한 경우가 드물었다. 이번 창립총회에는 각 분야 20여 개의 협동조합이 참여했다. 한국협동조합연합회 발기인회의 간사를 맡은 강승구 행복재단 사무총장은 “독자적인 협동조합 발전기금을 조성해 지원을 강화하고 2년마다 실태조사를 벌여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 주요 사업”이라며 “나아가 사회적경제와 관련한 교육, 사회, 문화적 환경 조성에도 힘쓸 것”이라고 말했다. 관련법 시행 이후 지난 1년간 겪었던 진통이 초반의 성장통이 될지, 거품에 그칠지 향후 정부와 연합회의 역할에 기대가 큰 시점이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트리플에스 지우 '매력적인 눈빛'
  • 트리플에스 지우 '매력적인 눈빛'
  • (여자)이이들 미연 '순백의 여신'
  • 전소니 '따뜻한 미소'
  • 천우희 '매력적인 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