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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형칼럼] 벌금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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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11-17 21:19:42 수정 : 2013-11-17 21:2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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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도덕 등 무형의 가치 훼손
부담금으로 변질돼 준수율 낮춰
아이를 유아원에 맡겼다가 제시간에 데려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어떤 부모라도 유아원의 규칙으로 정해진 시간 약속을 지키려고 할 것이다. 아이를 늦게 데리러 가면 유아원의 누군가는 퇴근을 못하고 기다려야 한다. 누구나 폐가 된다는 것쯤은 안다. 그런데 사정상 아이를 제시간에 데리러 가지 못하는 일이 생긴다. 여기까지는 그저 늘 있는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이제 그런 일이 잦아져 유아원 운영에 지장을 줄 정도가 되면 문제가 달라진다. 유아원 원장은 시간을 어기는 부모에게 벌금을 부과하기로 한다. 벌금을 물지 않기 위해 시간을 지키리라는 기대와 함께. 그러나 결과는 예상외로 나타났다. 지각에 대한 벌금제가 도입되자 오히려 지각이 현저하게 증가한 것이다. 원장은 뒤늦게 후회하며 벌금제를 철회했지만 그 이후에도 지각은 줄지 않았고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벌금제는 안 하느니만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이것은 행동경제학에서 회자되는 사례 중 하나이다.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교수인 우리 그니지와 미네소타주립대 교수인 앨도 러스티치니는 이 실험적 연구를 통해 금전적 제재 같은 경제유인이 오히려 규범준수율을 떨어뜨리는 역효과를 가져 올 수 있음을 보여줬다. 종전에는 예의나 도덕 차원에서 지켜지던 규범이 벌금 도입으로 더 잘 준수되기보다는 오히려 위반율이 더 높아지는 결과가 된 것이다.

홍준형 서울대 교수·공법학
누가 시키지 않아도 또 벌금으로 위협하지 않더라도 시간을 잘 준수하던 많은 사람의 윤리적 행태는 이를테면 무형의 법치 자산이라 할 수 있는데, 벌금제로 섣불리 가격을 매겨 그런 무형의 자산까지 망가뜨리는 결과를 빚을 수도 있다. 반면 벌금보다 지각 부모 명단을 공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다. 도덕적 의무감과 수치심에 호소하는 방법도 경제적 제재 못지않은 효과를 내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원장이 지각한 부모에게 왜 시간을 지켜야 하는지, 그렇지 않을 경우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를 설명하는 간곡한 편지를 보내 설득하는 방안이 더 나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인간이 반드시 경제적 동기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실을 종종 잊고 살아간다. 산불 발생 원인의 하나로 담뱃불이 꼽히는 것은 기가 찬 현실이다. 그러나 차창 밖으로 담배꽁초를 버리는 무책임한 행위를 벌금으로 막을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단속 자체가 쉽지 않고 자신은 적발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에 따른 기회주의 탓에 벌금은 효과를 내기 어렵다. 반면 교통혼잡세는 단지 터널 통과를 위한 통행료, 실은 급행료로 인식될 뿐 혼잡 해소 효과는 미미하다. 통행료 수입이 교통 소통을 원활히 하는 데 사용되는지 여부는 또 다른 문제다.

또 다른 예로 쓰레기종량제는 그 명칭과는 달리 종량제 봉투값에 의존한다. 그러나 본래 도입 취지나 목적과는 달리 쓰레기배출을 줄이거나 쓰레기를 덜 만드는 제품을 쓰는 등 행태를 바꾸기보다는 봉투값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에게 고작 봉투값을 줄이려는 유인으로 작용할 뿐이다. 이처럼 벌금은 그 본연의 정책목적과는 달리 감당할 수 있는 일정한 수준까지는 그저 납부해야 하는 부담금 수준으로 변질되기 쉽다.

정책목적 달성을 위해 금전적 제재수단을 도입하거나 강화할 경우 다각적인 측면에서 입법영향을 분석하고 당초 기대했던 결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그 원인과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입법자의 당연한 책무지만 국회의원이 정쟁과 힘겨루기에 정신을 팔다가 다시 또 졸속입법이나 양산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선다.

홍준형 서울대 교수·공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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