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차 한잔 나누며] ‘신불자’ 돕기 팔 걷은 금융소비자연대 김흥수 대표

관련이슈 차 한잔 나누며

입력 : 2013-11-01 20:46:43 수정 : 2013-11-02 22:07:38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채무자 자활 도울 종합센터 설립돼야” 가계부채가 1000조원을 넘어서며 한국 경제의 뇌관으로 자리 잡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국내 금융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이하 신불자)는 약 350만명으로, 이 중 180만명은 상환 능력이 없어 빚을 갚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1금융권에서 밀려난 신불자들은 생존을 위해 고금리 대부업체 등에서 또다시 빚을 내는 ‘악순환의 늪’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신불자들을 돕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이가 있다. 금융소비자연대의 김흥수(44) 대표다. 지난달 31일 서울 서초구 우면동 사무실에서 만난 김 대표는 “신불자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과 상담을 제공하는 기관이 부족하다”며 “신불자들에게는 어떻게 상황을 타개해갈지 적절한 해법을 제시하고, 서민이 신불자로 전락하지 않도록 사전관리에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소비자연대 김흥수 대표
금융소비자연대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자활하는 것을 돕기 위해 김 대표가 2009년에 만든 단체다. 김 대표는 단체를 찾은 사람들에게 파산이나 개인회생 등의 상담과 함께 법적인 절차 등을 지원하고, 매주 한번은 경기광역자활센터에서 채무조정 상담을 하고 있다. 이처럼 채무조정 분야의 ‘전문가’라 할 수 있는 그이지만, 15년 전만 해도 그는 평범한 자영업자였다.

“제가 당한 게 하도 억울해서 다시는 저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게 돕고 싶었습니다.” 김 대표의 삶을 바꾼 건 1997년 한국을 덮친 ‘외환위기’였다. 하루아침에 신불자가 됐고, 곧이어 카드사의 지독한 채무 독촉이 시작됐다. 김 대표는 “부모와 형제들까지 괴롭히는 것이 너무 괴로웠다”며 “너무 힘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던 것도 여러 번”이라고 털어놨다. 이후 막노동, 택시운전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빚을 갚아가던 김 대표는 우연히 신불자들의 인터넷 커뮤니티에 들어가게 됐다. 그곳에서 자신의 경험을 살려 하나둘 댓글을 달았고, 파산 신청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안타까운 마음이었지만, 사람들을 만나면 만날수록 신불자들을 돕는 곳이 없다는 생각에 점점 더 큰 꿈을 꾸게 됐다. 카페 활동이 인연이 돼 2003년부터는 민주노동당 경제민주화운동본부에서 활동했고, 2005년에는 ‘파산학교’를 세워 무료로 채무자들의 파산 관련 상담을 도왔다. 대선을 앞둔 2007년에는 당시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에서 서민금융 관련 공약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지금껏 그가 만난 신불자만 수만명에 이를 정도다.

채무 조정은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여러 문제가 뒤얽힌 복잡한 문제다. 김 대표는 보다 적절한 도움을 주기 위해 낮이면 국회도서관의 자료를 뒤졌고, 밤이면 관련 법규나 책을 붙잡고 씨름해야 했다. 그는 “아무리 술을 많이 마시거나 피곤한 날에도 집에 들어가면 꼭 공부를 했다”며 “학교 다녔을 때 이렇게 열심히 했다면 판사나 검사가 됐을 거란 농담도 한다”며 웃었다. ‘봉사활동’이나 다름없는 일이지만,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김 대표는 “남을 위해 일한다기보다는 과거 힘들었던 나 자신에 대한 ‘한풀이’라 생각한다“며 “내가 느꼈던 괴로움을 남들은 조금이나마 덜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많은 신불자는 어디에 어떻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 몰라 막막해하곤 한다. 김 대표는 “파산과 개인 회생 등의 차이를 전혀 모르는 데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점점 더 큰 빚을 지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몇 년 전에는 아예 신용회복위원회 앞에 6개월간 텐트를 치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일일이 붙잡아 개인회생과 파산, 신용회복 중 어떤 것이 맞는지 상담을 해주기도 했다. 그는 “기관도 여러 곳이고 제도도 많아 어디를 찾아야 할지 혼란스러워하기도 한다”며 “채무자의 이익을 대변하고 적절한 상담을 해 줄 수 있는 ‘종합센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한국 사회가 ‘빚을 권하는 사회’라고 말한다. 케이블TV 등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는 대부업체의 대출 광고와 과도한 신용카드 마케팅 등이 빚에 대한 ‘불감증’을 키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마이너스 통장이나 신용카드를 쓰면서도 빚이란 생각을 하지 않는다. 스스로 위기감을 느꼈을 때는 이미 늦은 뒤가 많다”며 “적절한 시기에 개인에게 위험 신호를 주는 시스템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사전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김 대표는 “채무 탕감 등의 사후 관리 대책을 아무리 내놔도 새로운 신불자들이 생긴다면 가계부채의 악순환은 계속 될 것”이라며 “이미 빚을 진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만큼이나 ‘신규 유입’을 막는 것도 중요한데, 금융당국이 그 부분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자산관리는 고액 자산가들이 하는 것이란 인식이 많지만 사실 자산관리가 가장 필요한 사람들은 서민”이라며 “가계부채는 가정이 파탄 날 수도 있는 문제다. 신불자로 전락하는 것을 막지 못하면 나중에 몇 배의 사회적 비용을 감수해야 하는 만큼 사전 관리 시스템을 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난 구제는 나라님도 못한다고요? 의지만 있으면 됩니다.”

글=김유나, 사진=남정탁 기자 yoo@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한지민 '우아하게'
  • 한지민 '우아하게'
  • 아일릿 원희 '시크한 볼하트'
  • 뉴진스 민지 '반가운 손인사'
  • 최지우 '여신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