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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인희칼럼] 스마트폰과 경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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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10-20 21:29:43 수정 : 2013-10-20 21:3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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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안 젊은이들 ‘폰 삼매경’
어르신에 자리 배려 예의 아쉬워
요즘 경로석은 시간대를 막론하고 대체로 만석이다. 출퇴근시간엔 임신부 모습이 종종 눈에 띄지만 여타 시간엔 어르신 차지가 되고 보니 고령사회 진입에 가속이 붙었음을 경로석에서도 절감하게 된다. 일전에 수원역에서 서울행 전철을 탈 기회가 있었는데 대학생들 유머를 엿듣게 됐다. 경로석이란, ‘경건하게 앉아서 노인을 생각하는 자리’요, ‘경우에 따라 노인이 앉으실 수 있는 자리’라는 것이다.

덕분인가, 전철을 타고 보면 민망한 풍경이 종종 연출되곤 한다. 최근엔 너나없이 스마트폰 삼매경에 빠져 있다 보니 자리가 나면 주변에 어르신이 계신지 살필 여유도 없이 신속히 몸을 날려 자리를 차지하고 곁눈조차 주지 않는다.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스마트폰에 몰입 중인 이들을 관찰해보면 개인차는 물론 있겠지만 대체로 남성은 게임에 몰두하거나, 스포츠 중계를 즐겨 보거나, 인터넷으로 기사를 검색하거나, 만화보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반면 여성은 카톡류의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거나, 드라마 보기에 심취해 있거나, 귀에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은 채 음악에 빠져 있는 경우가 빈번하다.

조금 더 편한 자세로 스마트폰의 재미를 즐기려는 젊은이 마음을 이해 못 할 바 아니요, 사생활은 간섭이나 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보호받아 마땅한 권리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의 편의와 권리만 내세우는 행태는 필히 반성이 요구된다는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요 근래 지하철에서 다른 사람 시선은 아랑곳없이 얼굴 화장은 물론이요, 눈 화장까지 일삼는 젊은 여성이 늘고 있는 현상이나, 보기 민망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애정표현을 일삼는 연인이 늘고 있음 또한 사생활을 명분으로 실상은 공공의 예절을 범하는 무례함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경계할 일이다.

한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자칫하면 봉변이라도 당할까 봐 어느 누구도 적극 나서길 꺼린다는 사실이다. “젊은이, 어르신께 자리 좀 양보하지”라고 권유했다가는 “경로석으로 가면 되잖아요”라는 핀잔을 들을 것이 뻔하고, “화장은 집에서 해야지”라며 타일렀다가는 “아줌마, 저 아세요”라는 간섭하지 말라는 응답이 돌아올 것이 자명하다는 판단하에 보고도 못 본 척, 듣고도 못 들은 척 외면하기 일쑤다.

물론 익명성이 보장되는 대도시 생활에서는 피차 적당한 무관심을 보이는 것이 예의라는 주장도 있다. 실제로 신호등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누군가가 뚫어지게 쳐다보는 실험을 해본 결과, 사람들로부터 흥미로운 반응이 나타났다고 한다. 자신이 누군가의 응시 대상이 되는 순간 걸음을 빨리 해 그 상황을 피하거나, 노골적으로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거나, 막연한 두려움을 표현하더라는 것이다. 피차 낯 모르는 사람 사이에선 ‘시민적 무관심’을 보이는 것이 모두가 합의하고 있는 규범인 셈이다.

하지만 ‘시민적 무관심’ 못지않게 어르신에 대한 배려야말로 ‘시민적 책임’임이 분명하다. 좁은 공간인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기력도 떨어지고 다칠 위험도 높은 어르신을 배려하는 건 누가 가르쳐주기 전에 자발적으로 수행해야 할 기본적 예의다. 하기야, 우리 모두 기본적인 가정교육에서 손을 놓은 지 오래니 젊은이만 나무랄 것도 아닌 듯하다.

이제 증조할머니·할아버지는 물론이요, 고조할머니·할아버지께서 지하철과 버스를 오르내리실 날이 머지않은 지금 대중교통 이용 시 지켜야 할 예절을 보다 철저히 홍보하거나 아니면 지금보다 최소 두 배 이상 경로석을 늘리는 것을 숙고해 봐야 하지 않을까.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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