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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올 겨울은 어찌 지낼꼬"…쪽방촌 노인 겨울채비 '막막'

입력 : 2013-10-19 10:34:56 수정 : 2013-10-19 10:3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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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점점 추워지는데 올 겨울은 어찌 지낼꼬…."

전국 대부분 지역의 아침 최저기온이 0도 안팎으로 떨어져 올 가을 들어 가장 추웠던 지난 17일 서울의 대표적 쪽방 밀집지역인 영등포 쪽방촌.

화려한 빌딩 숲 사이를 지나 좁은 골목길로 들어서자 가을 햇볕을 쬐며 길 위에 쪼그려 앉아 잠든 노숙인들이 눈에 띄었다. 쪽방촌 입구에 들어서자 노인들은 두꺼운 외투와 목도리를 한 채 햇볕이 가장 잘 드는 곳에 누군가 갖다 놓은 좁은 평상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이날 유독 강한 찬바람까지 불면서 가난의 멍에를 짊어지고 밀리고 밀려 찾아든 쪽방촌에는 이미 겨울이 시작된 듯 무척이나 쌀쌀했다.

성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골목길을 따라 한참을 걸어가자 해가 들지 않은 산비탈에 터를 잡은 차모(68) 할아버지의 쪽방이 희미하게 보였다. 얼기설기 나무와 천으로 엮어 만든 한 평 남짓한 공간이 할아버지의 '아슬아슬한 거처'였다.

한 사람이 몸을 누이기에도 비좁은 방안에는 이부자리와 밥솥, 옷가지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방바닥은 오랜만에 반가운 손님(?)이 온다고 틀어놓은 낡은 전기장판 때문에 미지근했지만 외풍을 막아내지 못한 탓인지 냉골이나 다름없었다.

"햇볕이 들어오는 창문도 하나 없고, 외풍도 막지 못해서 한 겨울에는 전기장판을 틀어놔도 손발이 꽁꽁 얼어버릴 정도예요."

차 할아버지의 때 묻은 작은 냉장고에는 빈 그릇과 고추장, 된장만이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일회용 가스레인지 위에 놓인 차갑게 식은 밥과 고추장이 차 할아버지의 유일한 한 끼 식사다.

외환위기(IMF) 사태로 운영하던 도매상이 망하면서 빚을 떠안고 밀리고 밀려 쪽방촌으로 터전을 옮긴 차 할아버지. 남에게 손 벌리는 게 부끄러워 파지를 주워 생활하다 얼마 전부터 관절염을 앓게 돼 이마저도 중단했다.

차 할아버지의 수입은 정부지원금을 포함해 한 달에 30여만원이 고작이다. 하지만 월세와 약값으로 20여만원을 쓰고 나면 난방은 엄두도 못 낸다고 한다.

차 할아버지는 "햇볕 하나 제대로 들지 않는 쪽방촌 주민들은 전기장판이나 연탄에 의존한 채 긴 겨울을 벌벌 떨며 버텨야 한다"며 "쪽방촌 주민들에게 겨울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상상하기도 힘들다. 벌써부터 겨울이 두렵고 무섭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서울시가 지난해 초부터 441곳 쪽방 가운데 295곳에 대해 '주거 재생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낡은 천장을 보수하고, 외풍을 줄이기 위한 단열재를 덧씌우고 있었다. 스산한 쪽방촌 골목에 따뜻한 활력을 불어넣는 작업이다. 하지만 내년에 공사가 완료되는 탓에 아직도 사각지대가 곳곳에 남아 있다.

오랫동안 쪽방촌에서 생활한 탓인지 옷깃을 파고든 칼바람도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이곳 주민들에게도 바람막이 하나 없는 마당에서 얼음물로 씻는 것과 멀리 떨어진 공중 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고역이다.

교통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고 10년째 이곳에서 살고 있는 박모(71) 할아버지는 "한 겨울에 바람막이 없이 씻고, 공동 화장실을 이용하는 건 정말 고통스럽고 힘들다"며 "그렇지 않아도 추운 겨울에 열악한 주거환경에서 살고 있는 쪽방촌 주민들에게 겨울은 유난히 더 춥다"고 말했다.

골목길을 나서자 가난과 외로움에 지칠 대로 지친 노인들의 서늘한 쪽방으로 매서운 겨울이 스산하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 겨울을 맨 몸으로 맞서야 하는, 수심 가득한 노인들의 얼굴에는 그늘이 더더욱 짙어졌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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