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세계초대석] 유니버설 발레단 문훈숙 단장

관련이슈 세계초대석

입력 : 2013-10-15 20:26:44 수정 : 2013-10-15 21:28:12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종주국 러서도 실력 인정… K-발레 반짝 열풍 아니다”
“러시아에 보일러를 수출하는 것은 발레를 수출하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한 보일러 회사의 광고 카피다. 한국 발레가 러시아에 초청받기가 그만큼 힘들다는 뜻이다. 그러기에 지난해 5월 유니버설발레단(UBC)이 콧대 높은 ‘발레 종주국’에서 공연한 건 꿈 같은 사건이었다. 우리나라 발레가 세계적인 수준임을 보여주는 상징적 순간이기도 했다. UBC는 모스크바 스타니슬랍스키극장 측 초청으로 창작발레 ‘심청’을 무대에 올렸다. 현장에서는 기립박수가 터졌다. ‘백조의 호수’ 등 수많은 명작을 만든 러시아는 발레 역사만 400년. 우리는 50년에 불과하다. 끊임없이 세계 무대의 문을 두드린 UBC가 최근 하나둘씩 결실을 맛보면서 ‘발레 한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내년이면 설립 30주년을 맞는 UBC가 첫 해외투어를 한 때는 1985년. 이듬해에는 창작 발레 ‘심청’을 만들어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으로 나갔다. 걸음마 단계였다. 2000년대 들어서는 북미와 유럽 투어가 가능해졌다. 2010년부터는 UBC가 초청받는 일이 빈번해지고 초청 조건도 양호해졌다. 문훈숙 UBC단장은 첫 해외투어가 최근의 발레 한류로 커지기까지 지난 29년간 발레단과 함께했다. 그간 주역 무용수에서 경영인으로 변신한 문 단장을 지난 11일 만났다. 문 단장은 발레 한류의 미래와 지난 세월 국내 발레계의 성장, 여전히 남아 있는 과제에 대해 조곤조곤 설명했다.

―지난 8월 ‘터키 보드룸 국제 발레 페스티벌’에 초청 받아 참가했지요? 2010년에 이어 두 번째였는데요. UBC의 해외공연이 이제는 당연한 일이 됐습니다. 한류의 한 흐름으로서 K-발레의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요.


“K-발레는 일시적으로 반짝할 현상은 아니라고 봐요. ‘발레돌’, ‘발레 한류’라는 말은 저희가 2011년 첫 월드투어 때 만든 신조어예요. 일본을 예로 들면, 일본에선 과거에도 자주 공연했지만 2010년부터 관객 타깃을 한류팬으로 확대했어요. 보통 발레 포스터에 아름다운 발레리나가 들어가는데 우리는 실력 있는 꽃미남을 내세웠어요. 홍보도 순수예술이 아닌 한류 잡지 쪽으로 했어요. 이렇게 3년 하니 이제는 고정 팬층이 생겼어요. 지난 7월 ‘오네긴’ 공연 때는 일본 관객이 서울로 보러 왔어요. 못 오면 선물이나 편지를 보내줘요.”

―구체적으로 관객 반응은 어떤가요.

“한 중년 부인의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이분은 발레 문외한이었는데 한류 잡지에서 우리 발레리노 사진을 보고 공연을 봤어요. 관람 후 이분은 발레 팬이 됐어요. UBC 일본 공연이 있으면 4시간 전부터 공항에서 기다리기도 해요. 사실 이분이 암에 걸려 1년6개월밖에 못 산다는 선고를 받았어요. 그런데 발레를 접한 뒤로 삶의 의욕을 찾고 그만둔 직장도 다시 다니고 있어요. 지금 3년째 우리와 인연을 맺고 있답니다. 이분처럼 K-발레 때문에 일본 한류팬이 발레팬으로 유입되고 있어요. 저희가 관객층 확대에 일조한 셈인 거죠. ”

―일본 평단과 무용인들은 한국 발레를 어떻게 보는지요.

“우선 일본 평론가들이 우리 공연을 보러 오기 시작했어요. 한국 발레 수준에 놀라워해요. 많은 평론가가 일본보다 수준이 높다고 합니다. 지난여름 발레단에서 하계스쿨을 열었는데 일본 학생 17명이 왔어요. 미국 학생도 2명 있었어요. 우리 발레 수준이 높으니 교육까지 한국에서 받고 있어요. 매년 점차로 숫자가 늘고 있어요. 꾸준히 좋은 공연을 보여주면 일본 관객이 지속적으로 한국을 찾을 것 같아요. 교육 프로그램도 이제는 해외 교류를 염두에 두려구요.”

1980년대 모든 비용을 내며 해외투어에 나선 UBC는 2004년부터 현지 기획사와 비용을 분담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현지 진행비와 공연장 대관료, 호텔 숙식비, 장비와 인력 비용을 해외 초청자가 맡는 조건으로 나간다. 짧은 시간에 UBC가 인정받고 발레 한류를 말할 만큼 성장한 셈이다. 그러나 처음 시작할 때 국내 환경은 너무 척박했다. 국립단체조차 국가나 민간의 지원을 충분히 받지 못했다.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 단장은 올해 3월 사단법인 자원봉사 애원 이사장으로 취임한 데 대해 “궁극적으로 제가 해야 할 일이 나눔이고 교육 같다”며 “봉사는 도움받는 사람보다 도와주는 사람이 굉장히 많은 걸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재문 기자
―지난 29년간 국내 발레계에 몸담아왔는데요. 체감하는 가장 큰 변화를 꼽으신다면.


“첫째는 발레 교육이에요. 제가 선화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해외 유학을 가야 전문적으로 교육받을 수 있었어요. 당시 선화학교는 실기수업이 일주일에 4일밖에 안 됐어요. UBC를 만든 에이드리엔 델라스 초대 단장이 당시 선화에서 발레를 가르쳤는데, 실기를 늘려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어요. 그래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1시간 30분간 추가로 실기를 하고 수업에 들어갈 수 있었죠. 지금은 유학을 갈 필요가 없어요. 러시아 마린스키발레단 주역인 김기민은 한국에서만 훈련받았어요. 우리 교육 수준이 그만큼 올라온거죠. 두 번째는 발레 관객의 형성이에요. 29년 전과 비교하면 놀라워요. 이제는 ‘발레토만(발레 애호가)’이라 부를 만한 팬들이 많아졌어요. 무용수들의 체격도 발레에 적합하게 좋아졌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개선해야 할 문제들이 있겠지요.

“한국 발레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도달했지만, 이 수준을 유지하려면 은퇴한 프로 무용수들과 무용 전공자를 위한 일자리가 더 많아져야 해요. 미국은 아메리칸 발레시어터(ABT)나 뉴욕시티 발레단에서 은퇴하면 작은 규모의 지역 발레단으로 재취업해요. 단장, 지도교사, 안무가, 매니저 등 길이 다양하죠. 우리도 인프라 구축이 시급해요. 도립·시립·민간 할 것 없이 많은 단체가 생겨야 해요. 또 국내 창작품의 수준을 올리려면 안무가 양성에 힘써야 합니다.”

―국내에서 몇몇 단체를 제외하면 작은 무용단이 살아남기 힘들지 않나요.

“요즘은 민간단체에 대한 국가기금 지원이 ‘소액다건’ 식으로 이뤄져요. 저희보다 어려운 서울발레시어터(SBT), 이원국발레단, 박호빈 같은 독립 안무가들은 1000만∼3000만원 받아서 공연을 올리기가 힘들어요. 공연하면 빚더미에 앉는 거죠. 특히 정부에서 기금 지원을 심사할 때는 전문 발레단과 비전문 발레단을 구분해야 한다고 봐요. 또 국립단체에서 ‘방방곡곡’ 프로그램을 통해 문화소외 지역에서 공연해요. 굉장히 좋은 프로그램이죠. 그런데 민간 단체는 서울 공연만으로는 힘들고 지방 공연을 해야 살림을 꾸릴 수 있어요. 민간단체도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요.”

―UBC가 30주년을 기념할 수 있게 된 데는 그간 안정적인 재정지원도 한몫했겠네요.

“30년간 한 단체를 끊임없이 후원하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오늘날 UBC가 있기까지 아낌없는 지원을 한 문선명·한학자 총재님이야말로 진정한 메세나셔요. 한국 발레의 판도를 바꿔놓았죠. 하지만 발레단은 자립해야지요. 이 부분에 대한 고민도 많아요. 우리 발레단이 지속적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사회가 도와줬으면 하는 바람이 커요.”

―내년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히 준비하시는 게 있다면.

“내년 2월에 특별 갈라 공연을 해요. 그러나 외부로 보여지는 화려한 행사보다 발레단의 기반을 견고하게 만드는 데 더 집중하려고 해요. 당장 겉으로는 안 보이지만 속을 더 정리하고 다음 10년, 30년을 맞고 싶은 거죠. 가장 어려운 건 경영자로서 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에요. 발레 연습실에 들어가면 자신감이 생기는데….”

―2001년 은퇴한 뒤 무대에 서고 싶은 충동이 있진 않았나요.

“그건 지금도 있어요. 12년이나 지났으니 이제는 꿈도 못 꾸는 거죠. 처음에 무용을 그만두니 오십견이 왔어요. 팔이 어깨 위로 안 올라가서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은퇴하고 후회가 하나 남는다면 ‘오네긴’을 못 해본 거예요. 이 작품을 하기 위해서라면 다시 태어나도 발레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대담=박태해 문화부장, 정리=송은아 기자 sea@segye.com

■문훈숙 단장 약력

▲1963년 미국 워싱턴 출생 ▲1973∼75년 리틀엔젤스 단원으로 활동 ▲1976년 선화예술학교 ▲1979년 영국 로열발레학교 졸업 ▲1980년 모나코 왕립발레학교 졸업 ▲1992년 워싱턴 발레단 ▲1984년 유니버설 발레단 창단멤버(수석무용수) ▲1989년 동양인 최초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 초청 ‘지젤’ 주역 무용수 ▲1995년 유니버설발레단 단장 ▲1998년 한국발레협회 이사 ▲2000년 모스크바 민족회의 명예친선대사 ▲2004년 유니버설문화재단 이사장 ▲2008년 선문대학교 명예무용학 박사 ▲2010년 화관문화훈장 ▲2011년 경암학술상 ▲2012년 국제공연예술협회(IPSA) 최고경영자상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이청아 '시선 사로잡는 시스루 패션'
  • 이청아 '시선 사로잡는 시스루 패션'
  • 김남주 '섹시하게'
  • 오마이걸 효정 '반가운 손 인사'
  • 손예진 '따뜻한 엄마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