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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리뷰] 우리 인체는 미생물과 공생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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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10-09 21:57:12 수정 : 2013-10-09 21:5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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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수 영양소·치료물질 생성 도와
항생제는 유익한 장내 미생물 다 죽여
17세기 네덜란드 델프트의 포목상 레이우엔훅은 직접 만든 확대경을 들여다보는 재미에 폭 빠져 살았다. 그는 처음에는 실이나 바늘을 관찰했지만 점차 그 범위가 넓혀져 1674년부터 빗물, 연못, 우물물 등에서 원생동물과 세균을 관찰했다. 그러나 미생물이 어떤 일을 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화학자로 출발한 파스퇴르는 상한 주스나 포도주를 연구하다가 부패와 발효가 모두 미생물의 작용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미생물에 흥미를 느낀 파스퇴르는 인간의 질병도 미생물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을 알아내 ‘미생물 병인설’을 발표하게 된다. 당시 의사들은 인간의 질병이 나쁜 공기에 의해 발생한다고 믿고 있었다. 20세기 들어서면서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이 하나씩 확인되고, 예방접종 방법과 항생제가 만들어짐으로써 인간은 간악한 미생물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머쥐는 듯했다.

서홍관 국립 암센터 의사·가정의학
그러나 당혹스러운 사실이 차츰 확인됐다. 우리 인체 내에 무수한 미생물이 존재하는데 우리가 병에 걸리지 않을 뿐 아니라 장내 미생물은 오히려 유익하다는 것이 알려진 것이다. 인간은 스스로가 먹는 음식을 소화하는 데 필요한 효소를 모두 가지고 있지 않으며 장내 미생물이 음식 중 단백질, 지질, 탄수화물 중 많은 부분을 분해한 다음에야 인체는 이들 영양소를 흡수할 수 있다. 또한 어떤 미생물은 우리에게 필요한 비타민을 합성해 주기도 하고, 염증을 막아내는 화합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우리 인체는 미생물과 거대한 공생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인간게놈 프로젝트를 성공리에 마친 미국국립보건원은 2008년부터 1억7300만달러(약 2000억원)를 들여 인체 미생물 전체의 유전자 정보를 해독하기 위한 야심찬 작업을 진행했고 그 결과는 놀라웠다.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세포의 수는 약 60조 정도인데 비해 미생물의 숫자는 100조를 훨씬 상회하며 사람 1명당 1.35∼2.25㎏의 박테리아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사람의 몸에서 가장 다양한 종류의 미생물이 사는 곳은 대장으로 무려 4000종이 발견됐고, 치아에서는 1300종, 콧속 피부에 900종, 볼 안쪽 점막에 800종, 여성의 질에 300종의 미생물이 발견됐다. 장내 미생물은 주로 배변활동을 원활하게 해주고 정장작용을 한다고 알려졌다. 미생물을 치료제로 사용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매년 미국에서는 50만명이 클로스트리디움균에 의해 감염되고 이로 인해 1만4000명이 사망한다. 강력하고 값비싼 항생제로 치료하면 이 균을 죽일 수 있지만 이 과정에서 우리 몸에 유익한 장내 세균도 같이 죽게 된다. 그러나 이런 환자에게 건강한 사람의 대변에서 배출되는 미생물을 먹인 결과 24명의 장염이 완치됐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대변을 먹는 역겨움을 줄이기 위해 대변에서 미생물만 추출해 캡슐에 담아 먹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최근엔 장내 미생물이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 장내 세균이 우리 몸의 면역체계에 깊이 개입해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크론병이나 제1형 당뇨병, 아토피를 비롯한 자가면역 질환이 증가하는 이유가 항생제의 무분별한 남용으로 장내 미생물이 줄어들면서 인체 면역체계가 교란되는 결과라는 해석이 대두되고 있다.

항암제를 사용하면 암세포만 죽는 것이 아니라 정상 세포도 죽는다. 항생제를 사용하면 나쁜 미생물만 죽는 것이 아니라 유익한 장내 미생물도 죽기 때문에 항생제를 무분별하게 먹는 것은 마치 정상인이 항암제를 복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해로운 것이다. 우리 몸의 미생물은 우리 편이니 소중하게 다뤄야 한다.

서홍관 국립 암센터 의사·가정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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