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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포럼] 장물 불상, 밝은 눈으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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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10-09 21:43:05 수정 : 2014-03-05 16: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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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앞서면 얼굴 붉히게 마련
명분과 호소력 잃을 길은 피해야
문화재는 뇌관이다. 민족 감정이 뇌관을 때리면 섬광이 번쩍이고 폭발이 일어난다.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최근 예기치 못한 곤욕을 겪은 이유다.

유 장관은 지난해 쓰시마 관음사를 턴 절도범 일당에 의해 대한해협을 건너온 장물인 서산 부석사 불상에 관해 언급했다가 여론의 매도를 당했다. 시모무라 하쿠분 일본 문부과학상에게 “일본에 반환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일본 언론이 전한 까닭이다. “국제협약에 따라야 한다는 원칙론을 말했을 뿐”이란 해명으로 논란의 흙먼지는 가라앉았지만 뇌관마저 제거된 것은 아니다. 새 불똥이 어디서 튈지 알 길이 없다. 

이승현 논설위원
양국 장관이 대좌한 자리는 지난달 27일 열린 한·중·일 3국 문화장관회의였다. 그런 자리에서 오간 대화의 수준은 뻔하다. 일본 장관은 선처를 요청하고, 한국 장관은 ‘두고 보자’는 취지로 두루뭉술하게 응답할 수밖에 없다. 달리 뭐라 하겠는가. 앞서 국내 법원이 부석사 측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으니 더욱 그렇다. 그런데도 민족 감정이 확 불타올랐다. 일본에선 오보가 나오는 방향으로, 한국에선 여론이 들끓는 방향으로.

한·일 관계에서만 이런 게 아니다. 역사가 얽히는 양자 관계에선 흔한 일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지난 6월 에르미타주 박물관 특별전시회 개막식에서 제2차 세계대전 때 소련군이 약탈해 간 문화재를 둘러싸고 정면 충돌했다. 독일 측은 반환을 요구했고 러시아 측은 “군인들의 피값”이라고 맞받아친 것이다. 감정적으로 부딪치면 실익은 없이 얼굴만 붉히게 마련이다.

두 정상의 충돌은 다소 우발적이었지만 아예 민족 감정을 앞세워 문화재 반환 공세를 벌이는 나라도 많다. 그리스 이집트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그리스는 1970년대 민정 출범 이후 영국과 영국박물관을 상대로 파르테논 신전 조각물(엘긴 마블스) 반환 운동에 대대적으로 나섰고 지금도 사력을 다한다. 파르테논 복원 사업이 국가적 중점 사업이니 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다.

영국 반응은 차갑다. 최근 반환을 요구하는 유네스코 서한을 받고도 “영국박물관에 있어야 많은 사람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응수했다. 영국은 1980년대엔 엘긴 마블스를 보관할 장소가 그리스에 없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그 대응논리는 6년 전 아테네에 새 박물관이 들어선 뒤엔 다채롭게 바뀌고 있다. 돌려주기 싫다는 뜻이다. 영국만이 아니다. 미국, 프랑스 등의 방어 전략도 대체로 비슷하다. 강압적·감정적 공세에는 한사코 버티는 것이다. 하나를 내놓으면 얼마 안 가 박물관이 텅 빌 것이란 우려가 그런 전략 밑에 깔려 있다.

문화재가 왜 뇌관인가. 국가·민족의 기억이 함축돼 있기 때문이다. 유네스코는 1970년 문화재 관련 국제규약을 체결했다. 소급 적용을 금한 ‘문화재 불법 반출입과 소유권 양도 금지 및 예방에 관한 협약’이다. 국제 분규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일단 선을 그은 것이다. 그러나 1801∼1812년 오스만제국 치하의 아테네에서 영국이 가져간 엘긴 마블스를 둘러싼 줄다리기에서 확인되듯이 이런 문제엔 시효가 없다. 감정은 폭주하고 분규는 끝없이 이어진다.

한·일 양국의 현안은 장물 불상 2점이다. 주로 문제가 되는 것은 부석사에서 1330년 조성된 것으로 밝혀진 금동관음보살좌상이다. 장물인 만큼 일본의 반환 요구에 응하자는 의견도 많지만 다른 한쪽에선 고려 후기 왜구가 약탈한 문화재로 보이므로 돌려줄 필요가 없다고 강력히 주장한다. 언제라도 뇌관을 강타할 태세인 쪽도 후자다. 하지만 약탈의 증거가 없다는 취약점이 있다. 후자의 주장이 국제사회에 얼마나 먹힐지 의문이다.

그리스엔 그리스의 길이 있고 한국엔 한국의 길이 있다. 한국도 돌려받을 것이 많은 나라다. 해외 유출 문화재는 15만점에 이르고 이 중 6만6000여점은 일본에 있다. 국제 추세로 보면 문화재 줄다리기에서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명분과 호소력이다.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실의궤 환수에 앞장서 큰 결실을 거둔 혜문 스님의 비결도 여기에 있다. 우리의 길을 가야 한다. 장물에 연연해 국제규범에 등을 돌린다면 소탐대실의 늪에 빠질 개연성이 많다.

문화재는 뇌관이다. 그 위험성은 깊이 인식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성 아닌 감정에 휘둘려 길 아닌 길로 폭주하는 것은 곤란하다. 부석사 불상 처리의 열쇠를 쥔 정부와 법원에 절실한 것은 국익과 이치를 따지는 밝은 눈이다.

이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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