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의 핵심 복지공약 후퇴 논란이 격화하는 가운데 진 장관이 사퇴함에 따라 박근혜정부는 진퇴양난에 처했다. 대통령까지 복지 후퇴로 고개를 숙인 마당에 국민들에게 배경을 설명하고 진화에 앞장서야 할 장관이 중도하차를 선언하자 여당 내부에서조차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회의원의 국무위원 겸직을 반대하는 법안까지 냈다가 입장을 바꿔 장관직을 수락했던 진 장관은 장관과 정치인으로서의 명예에 모두 상처를 입게 됐다.

복지부는 실세 정치인이자 대통령의 최측근이 장관으로 임명되자 정책 추진에 힘이 실릴 것이라며 잔뜩 기대에 부풀었다. 하지만 진 장관이 취임한 지 6개월여 만에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로 사표를 던지자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복지부 직원들의 기대와 달리 진 장관은 “내가 잘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는 생각에 무력감을 느꼈다. 예산은 기재부가, 인원은 안행부가 꽉 쥐고 있어 복지부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며 ‘초보 장관’의 한계를 드러내며 장관직을 반납했다. 무상보육과 4대 중증질환, 복지인력 확충, 기초연금 등 주요복지 공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예산과 인원을 조달할 수 없었던 어려움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기초연금 정부안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청와대와 이견을 좁히지 못한데 대한 실망감이 사퇴를 결심하게 된 결정적 이유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 가입자 역차별 논란을 우려한 진 장관은 애초에 기초연금과 국민연금의 연계를 반대했지만 청와대에서 끝까지 고집했다는 것이다. 진 장관은 지난달 말 박 대통령에게 기초연금 최종안을 보고하면서 사퇴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진 장관이 이날 오전 예고없이 기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사퇴의사를 밝힌 것은 번복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정 국무총리가 진 장관의 사퇴설이 불거지던 지난 25일 “없던 일로 하겠다”면서 만류한데 이어 이날 사퇴를 반려했지만, 진 장관의 마음을 돌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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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26일 서울 계동 복지부에 출근해 집무실로 올라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진 장관은 27일 기초연금 축소 논란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사퇴 의사를 밝히며 출근을 하지 않았다. 연합뉴스 |
청와대와 정치권 모두 진 장관의 사퇴에 불쾌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청와대는 “진 장관이 책임감을 가진다면 지금 나갈 때가 아니다”는 입장이다. 진 장관이 복지공약 후퇴에 대해 책임을 지겠다고 밝힌 만큼 국회 국정감사에서 야당에게 공약 축소 배경을 소상히 설명하고 국민에게 이해를 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에서다. 최소한 국감은 마치고 장관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이 직접 사과까지 한 마당에 진 장관이 복지 후퇴에 대한 소명과 복지예산 짜기에 손을 놓아 버리는 것은 공직자로서 무책임하다는 지적이다.
새누리당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장관의 사퇴 의사가 공약 불이행에 대한 잘못을 인정해버린 모양새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우택 최고위원은 “기초연금 문제가 마무리되지 않았고 대통령이 복지에 대한 고민을 하는 시점에서 주무부처 장관이 사표를 던진 것은 여러모로 아쉬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당 지도부는 진 장관 사의 표명의 정확한 의도와 배경을 파악한 뒤 대응책을 모색할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무책임의 극치”라고 강도높게 비난했다. 김한길 대표는 이날 외신기자클럽 초청 간담회에서 “해당 부처 장관이 사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공약 뒤집기 문제가 대단히 심각하다는 것을 입증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수미·박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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