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매달 20만원씩 기초연금을 주겠다는 취지의 기초연금 공약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해 대선 핵심공약 중 하나였다는 점에서 정기국회 최대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좀처럼 정국 주도권을 잡지 못했던 민주당은 뜻밖의 호재에 ‘가짜 민생론’을 빼들고 화력을 모았다. 전국 순회투쟁 이틀째인 김한길 대표는 성남시청에서 가진 민생간담회에서 과거 박 대통령이 썼던 표현을 다시 인용해 정부안을 강력 성토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맞춤형 복지 공약으로 당선된 박 대통령은 어린이집에서부터 경로당까지,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속이고 신뢰를 짓밟았다. 아이도 속고 노인도 속고 국민 모두 속았다”는 것이다. 이어 “선거 때부터 국민을 속이기로 마음을 먹고 대국민 사기극을 기획한 게 아닌지 의심된다”며 “스스로 약속한 공약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도록 민주당이 그냥 놔두지는 않겠다”고 경고했다.
김 대표는 26일 국회 본청 앞에서 ‘공약파기·거짓말정권’ 규탄대회를 열어 대대적인 여론몰이에 나서기로 했다.
전병헌 원내대표는 제1차 24시간 비상국회 운영본부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지난해 8월 비대위원장 시절과 12월16일 대선후보 TV토론 때, 그리고 지난 1월 당선인 시절 밝혔던 기초연금 공약 관련 발언을 일일이 환기시키며 ‘뻥튀기’, ‘새빨간 거짓말’, ‘공약 먹튀’, ‘대국민 사기극’ 등의 자극적 단어로 맹공했다.
◆악재 우려하는 새누리당 적극 방어
새누리당은 국정운영에서 현실을 고려한 공약 수정의 불가피성으로 방어막을 치면서 민주당 공세를 정치쇼라고 맞받아쳤다. 심재철 최고위원은 시·도당위원장 회의에서 “공약대로 할 경우 필연적으로 닥칠 재정위기가 문제”라며 “2030세대가 떠안을 미래의 부담을 생각하면 적절한 공약수정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상현 원내수석부대표는 “기초연금 공약은 취소되지도 않았고 무효화하지도 않았다. 국가재정 여건을 감안해 지속 가능하게 조정됐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7선 중진인 정몽준 의원도 개인성명을 통해 “나라에 해가 되는 일이라면 공약이라 하더라도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며 “그런 이유로 다음 선거에서 패배하는 것이 나라를 망치는 것보다 낫다”고 불가피성을 역설했다.
새누리당은 그러면서도 정부안에 대해 국민에게 솔직한 설명으로 이해를 구함으로써 상황을 돌파하자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하는 등 퇴로 찾기에 부심 중이다. 당 핵심 관계자는 “왜 노인 100%에게 연금을 준다고 해놓고 70%에게만 주느냐고 하는 데에는 할 말이 없어 솔직히 국민께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전날 원내대책회의에서는 대통령직인수위에서 기초연금제도를 설계한 안종범 의원이 소속 의원 이해도를 높이고 와전된 부분을 바로잡기 위해 브리핑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
법안 길목 지키는 野 의원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이 25일 오전 정부의 복지공약 후퇴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
여야의 첨예한 대립으로 기초연금법 제정안이 이번 정기국회 문턱을 넘어설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새누리당은 일단 현실론을 바탕으로 대국민 설득에 적극 나서되, 후폭풍을 최대한 차단하기 위해 입법과정에서 여론을 수렴해 보완책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민주당은 정기국회 주요 이슈로 공약파기를 선정했다. 기초연금을 비롯해 4대 중증장애 국가보장 등 ‘박근혜표 복지공약’ 후퇴 문제를 한데 묶어 박 대통령의 ‘신뢰 정치’ 이미지를 흔들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새해 예산안 처리와 연계해 복지 예산 확보도 벼르고 있다. 초점은 부자감세 철회로 맞췄다. 공약 후퇴의 원인은 결국 세수 부족이고,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연간 18조원의 세수를 확보할 수 있는 부자감세 철회밖에 없다는 시각이다. 기초연금 입법을 다루는 국회 보건복지위 민주당 간사인 이목희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서 “법인세와 소득세를 감세 이전으로 환원한다면 박 대통령이 공약을 대부분 실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기초연금법 제정은 예산안 심의 및 세법 개정과 맞물려 복잡하게 진행될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민주당이 끝까지 정부안 비판에만 열을 올릴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의 기초연금 수정안은 박 대통령의 공약에서 후퇴한 것은 분명하지만, 민주당 대선 공약과의 공통분모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기초노령연금 공약은 지난해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공약하고 민주당 문재인, 무소속 안철수 후보도 경쟁적으로 발표하면서 쟁점으로 떠올랐다. 민주당은 2017년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고 대상도 고소득 계층을 제외한 80%로 한정했다. 이는 세수 확보가 만만치 않다는 자체 계산 때문이었다. 신경민 최고위원은 이날 “대선 당시 캠프 내에서도 ‘우리도 (새누리당 공약을) 따라가야 하는 게 아니냐’는 논의가 있었지만, 공약해봐야 새빨간 거짓말로 드러나는 게 시간문제라는 지적이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 때문에 국회 논의과정에서 극적인 절충안이 나올 가능성도 점쳐진다. 민주당이 박 대통령에게 100% 공약 이행을 요구하는 것은 상위 20%인 고소득 노인을 제외하고 임기 동안 단계별 증액을 제시했던 자당 공약과 모순된다는 지적이다. 새누리당 민현주 대변인은 “전 계층이 아닌 소득 상위 20%를 제외하는 안은 민주당에서도 주장했던 안”이라며 “민주당의 대여 공세는 이율배반적”이라고 비판했다.
이천종·김달중 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