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정쟁의 늪'…공화, 후속대응 '딜레마' "지금 워싱턴은 운전자 없는 차가 가드레일 없는 도로를 달리는 느낌이다."(워싱턴포스트)
내년도 예산안 처리를 둘러싼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 공화당의 기싸움이 벼랑끝 대치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이 오바마케어(건강보험 개혁안)를 통째로 뺀 잠정예산안을 강행처리하며 '실력'을 과시하자 오바마 대통령은 즉각 '수용불가'를 선언하며 배수진을 치고 나온 형국이다.
이에 따라 예산안 처리시한(9월30일)까지 일주일 남겨둔 이번 주는 예산안을 볼모로 한 양측의 '치킨게임'이 최고조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워싱턴포스트는 22일(현지시간) "파국과 재앙 사이를 오가는 정국 불안은 이제 워싱턴의 새로운 생활양식"이라고 비꼬았다.
문제는 꽉 막힌 정국을 풀 출구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지난해 예산안 협상 결렬 때는 그나마 6개월간의 잠정예산안을 마련해 임시변통에 나섰지만 이번에는 사정이 달라 보인다. 공화당이 현 정부의 최대 치적으로 평가받는 오바마케어 예산안을 잠정예산안 처리와 직접 연계시키면서 타협의 여지가 크게 줄어든 것이다. 워싱턴 내에서는 '정치의 실종'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위기의 오바마 "타협은 없다" 배수진 =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시리아 수렁에서 채 벗어나기도 전에 정쟁의 늪에 빠져드는 형국이다.
정치권이 30일까지 잠정예산안 또는 최소한의 임시변통 법안에라도 합의하지 못하면 연방정부 폐쇄라는 파국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오바마의 국정운영 능력은 그야말로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치게임의 논리로만 보면 오바마에게 반드시 불리하다고만 할 수 없다. 정부 폐쇄가 현실화되면 그 책임은 오바마보다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이 더 크다는 쪽으로 여론조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공화당을 향해 '무책임의 극치'라며 역공 드라이브를 펴는데는 이런 계산도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현 시점에서 공화당과의 기 싸움에서 밀릴 경우 2기 임기 첫해부터 정국주도권을 상실하고 리더십이 타격을 받을 것이란 상황인식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공화당이 '사산(死産)'시키려는 오바마케어는 말 그대로 오바마 대통령의 최대 업적이다.
상원을 이끄는 민주당은 오바마 대통령과 철저히 보조를 맞추고 있다. 하원의 잠정예산안과는 별도로 오바마케어를 포함한 내년도 예산을 책정하겠다는 입장이다.
다만 민주당으로서는 오바마케어를 두고 부정적 여론이 높은 것이 정치적 부담이다. 워싱턴포스트와 ABC 뉴스의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절반이 넘는 52%가 반대했고 찬성은 42%에 그쳤다. 유권자들에게 그다지 인기가 없는 정책이라는 의미다.
◇ 공화당, 후속 대응 '딜레마' = 공화당으로서는 일단 '머릿수의 힘'으로 오바마케어를 뺀 잠정예산안을 하원에서 처리했으나 '그 이후'가 답답한 상황이다.
상원을 장악한 민주당이 이번 주 심의를 거쳐 잠정예산안을 다시 돌려보내면 후속대응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 폐쇄가 현실화되면 그 부담이 공화당으로 넘어올 것이란 내부 우려가 크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공화당이 자체 여론조사를 한 결과 오바마케어를 막기 위해 정부를 폐쇄하는 데 대해 71%가 반대했다. 찬성은 23%뿐이었다.
여기에는 21일간 정부 운영이 중단됐던 1995년 12월의 전례가 거론된다. 당시 공화당 소속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원은 클린턴 행정부와의 기싸움 속에서 예산안 처리를 막았다가 유권자들의 역풍을 맞아 오히려 클린턴 대통령의 재선에 도움을 줬다는 비판을 받은 바 있다.
현재 상원의석 분포는 민주 54석, 공화 46석이다. 민주당이 잠정예산안을 부결시키려면 과반수(51석)만 확보하면 된다. 이에 따라 이번 주 중으로 잠정예산안의 '파기환송' 수순이 불가피해 보인다.
상원이 되돌려보낼 경우 공화당으로서는 약간의 손질을 거쳐 다시 상원으로 보낼 수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정부 폐쇄라는 중대사태가 현실화될 수밖에 없고 이 경우 예산안을 볼모로 '핑퐁게임'을 하고 있다는 비판론에 직면할 것이라는데 공화당의 고민이 있다.
특히 예산안 처리시한 직전에 상원이 잠정예산안을 돌려보내면 공화당의 심리적 압박감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상원에서의 잠정예산안 환송을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못해 보인다. 공화당 스스로 하원에서 통과시킨 잠정예산안의 심의를 고의로 지연시키는 것은 유권자들에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공화당 지도부는 주말을 거치며 원내전략을 숙의하고 있으나 뾰족한 답을 찾지 못하는 분위기다.
◇ '2라운드' 예고 속 물밑 접점 모색 가능성 = 극적으로 예산안 처리의 고비를 넘기더라도 미국 정치권은 부채조정 협상이라는 또 하나의 숙제를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다.
내달 중순 16조7천억달러인 국가 채무 한도를 재조정하는 협상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상향조정하는 데 실패하면 미국은 디폴트(채무불이행), 즉 국가 부도 사태에 빠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마찬가지의 정치게임 구도가 되고 있다. 공화당은 오바마케어 폐지와 부채조정 협상을 연계시키려고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협상은 없다"는 강경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양측이 물밑 접촉을 통해 모종의 접점을 모색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나온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주에 공화당 지도부들과 대화의 기회를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 로비스트들을 중심으로는 양측 갈등의 핵심인 오바마케어의 핵심내용을 놓고 타협안을 마련하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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