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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산업은행 사태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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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8-29 21:44:41 수정 : 2013-08-30 02: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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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실패 책임 아무도 지지 않아
권한 따른 책임소재 명확히 해야
금융위원회가 27일 ‘정책금융역할 재정립 방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산업은행 민영화를 유보하고 소매금융을 점진적으로 축소하는 한편, 대외 부문은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 체제를 유지하겠다고 했다. 더불어 가장 주요한 내용은 산업은행, 산은금융지주, 정책금융공사를 하나로 합친 ‘통합 산업은행’의 출범이다.

조하현 연세대 교수·경제학
산업은행 민영화를 위한 구체적 노력은 이명박정부로부터 시작됐다. 산업은행을 민영화해 글로벌 투자은행(IB)으로 육성하고, 기업공개를 통해 10조원 이상의 자금을 확보해 중소기업을 지원하겠다는 것이 골자였고, 민영화를 위한 조치로 정책금융공사를 설립했다. 당시 정책금융공사는 민영화를 앞둔 산업은행의 부실자산을 떠안아 매년 수천 억원의 적자를 보는 구조였는데, 글로벌 금융위기로 산업은행의 기업공개가 미뤄져 두 기관의 정책금융 기능이 중복되는 기간이 길어졌다. 이 기간 동안 정책금융공사의 적자는 계속됐고 두 기관의 분리로 엄청난 규모의 자금이 낭비됐다는 평가도 있었다.

이번에 정부가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를 통합하겠다고 발표한 것은 4년 전의 분리정책이 적절치 않았음을 보여준다. 지금이라도 유사기관의 중복된 기능을 통합해 수요자 입장에서 정책금융체계를 재편하겠다는 것이 현 정부의 목표이다. 그러나 이에 수반될 수 있는 문제점을 짚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무리하게 정책을 추진하다 다시 되돌려 놓는 과정에서 국민 혈세만 낭비했다는 목소리가 높은데도 정책 실패에 대한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당시 관계자가 이미 자리를 떴고, 글로벌 금융위기로 기업공개가 늦어진 점은 예측하지 못한 시나리오였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발언만 되풀이하고 있다.

둘째, 올바른 취지에서 나온 정책이 오히려 시장을 압도하는 거대 정책금융조직을 만들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중소기업 등의 해외건설 플랜트 수주지원을 명분으로 산업은행과 정책금융공사가 모두 11억달러 규모의 해외투자 사모펀드를 만들 수 있게 하고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의 증자까지 발표했다. 오히려 정책금융을 비대화시킨 것이다.

마지막으로, 배드뱅크인 정책금융공사와 통합할 경우 산업은행이 겪게 되는 재정건전성 악화이다. 산업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비율은 현재 14.4%에서 통합 이후에는 0.7%포인트 낮은 13.7%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금융당국이 STX그룹에 대한 여신을 부실채권으로 분류하라는 지침을 내렸는데 이것이 현실화되면 매년 2조원의 정부자금 지원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 경기악화로 세수가 감소해 복지예산도 제대로 충당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통합 산업은행에 매년 그 정도의 자금 지원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정책금융 체계 개편과 같은 정책은 국민에 대한 직접적 피해로 이어질 사안은 아니지만 국가경제에 미치는 파급력이 매우 크다. 정책금융기관은 정부 관료가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점을 고려하면 당국자들은 상황이 변해 어쩔 수 없었다는 정책실패의 방어논리만 되풀이할 것이 아니라 권한에 따른 책임소재와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정책실패에 대한 책임 여부를 판별하고, 관료가 좀 더 책임감을 가지고 정책설계 및 집행에 임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정책목적이 옳다고 할지라도 집행주체는 관할권 다툼과 관료이기주의를 경계하고 이에 대한 정기적인 감사 및 감시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리하여 정책금융에서 민간과 겹치는 상업금융을 합리적으로 분리, 매각해 정책금융 체계개편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고 국가 금융 및 경제안정에 일조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하현 연세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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