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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의 화랑가 산책] 시장에 따라 춤춘 한국미술, 작가의 색깔을 살려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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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8-06 20:29:05 수정 : 2013-08-06 20:3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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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여년간 화랑을 운영한 K씨는 며칠 전 오랜만에 작품 수장고를 들여다보고 실망했다. 그동안 기획전을 하면서 모은 미술품 200여점의 가치를 어림해 보았지만 신통치 못했기 때문이다. K씨는 작품들을 정리하면서 스스로도 놀랐다. 70% 정도의 작품이 이미 미술시장에서 거래조차 되지 않는 작품으로 전락된 것이다. 인연이 됐던 작가들의 태반도 현재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조차 파악이 안 된다.

K씨는 믿었던 자신의 안목에 처음으로 회의를 느꼈다. 주위에선 그 정도면 정상적인 예상치라고 하지만 K씨는 받아들이기 힘들다. 예전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망하다고 판단했던 작가들 중에 적어도 60% 정도는 시장에서 꾸준히 통했던 것이다. K씨는 요즘 미술시장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다고 푸념을 한다. 어떤 기준으로 작품과 작가를 선정할지 자신이 없다는 소리다. 한편으론 이해도 됐지만 K씨의 안목이란 게 무었이었는가 되묻고 싶었다. 고객과 시장의 취향에 맞춰 그때그때 춤을 춘 것은 아닌지, 아니면 적극적으로 눈앞의 이익만을 위해 고객들을 오도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일이다. 어쨌든 둘 중에 하나다.

실제로 미술시장이 좋았을 때 화랑들은 작고 작가니 원로니 하면서 기획전을 통해 컬렉터를 전시장에 마구 불러들였다. 뒤이어 젊은 작가들의 유망성을 내세워 컬렉터의 마음을 줄서게 만들었다.

하지만 미술시장은 얼마 안 가서 얼어붙었다. 컬렉터에게 마구 권한 작품들이 미술시장의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다. 양식 있는 이들이 벌써부터 우려를 했던 사항이다. 모든 것을 경제 상황이 안 좋아서거나, 미술품 관련 비자금 수사 탓으로 돌리기엔 왠지 모르게 찜찜한 점이 많다. 물론 영향이 전혀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화랑들에 면죄부가 될 수 없다.

화랑들 입장에서 보면 어려운 여건에서도 힘들게 미술시장의 버팀목 역할을 했는데 억울할 수도 있다. 한국미술의 도약을 위해서라면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상업화랑들이 재주 많은 한국작가들에게서 ‘아버지’를 빼앗아 갔다”고 말했다. 시장에 따라 춤추다 보니 작가의 반짝이는 재주에만 의존하고 그 뿌리는 도외시했다는 얘기다. 세계에서 인정받는 일본 작가들의 모습을 보면 우키요에, 망가 등이 아버지처럼 배후에서 든든히 백업을 해주고 있다. 이에 비하면 한국작가들은 아비없는 자식과 다름없다. 세계 미술시장에서 일본과 중국 미술에 뒤처지는 이유다. 화랑의 특색을 살리거나, 작가의 색깔을 살려주지 못한다면, 최소한 전통을 발판으로 삼도록 해야 한다. 작가가 그때그때 화랑의 필요성에 의해서 소모품이 된다면 희망은 없다. 컬렉터들이 외면하기 때문이다.

K씨는 최근 단골 컬렉터로부터 “안 팔리는 한국작가 전시는 그만두고 이젠 외국작가 전시나 하라”는 충고를 들어야 했다. 내년엔 할 수 없이 외국작가 전시를 할 계획이다. 화랑의 가장 큰 손님을 무시할 수 없어서다.

근래 화랑계 인사들에게 흔히 듣는 말이 있다. “정말 죽고 있습니다.” 미술시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어렵다는 방증이다. 긍정적인 요소도 많다. 국내에서 열리는 아트페어에 가 보면 젊은 층이 나름의 안목을 가지고 작품을 구입하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컬렉터들의 안목도 날로 높아져 전문가 수준을 뺨친다. 한국 미술시장의 무한한 가능성을 엿보게 해주는 대목이다. 한국미술이 살아야 한국 미술시장도 살아난다. ‘국산작품 애용 운동’이라도 벌여야 할 판이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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