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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문화를 죽이는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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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8-02 21:29:43 수정 : 2013-08-02 21:2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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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우월감 위해 상대 기죽여
이제는 권위적 경쟁문화 버려야
“결혼 못하면요, 아무리 사회적으로 성공해도 실패한 인생이에요.” 토요일 오후 잘 쉬고 있다가 모르는 번호로 온 전화를 받았다. 결혼중개회사 매니저라는데 그녀와는 일면식도 없다.

“어머 아직 미혼이세요. 눈이 너무 높은가 보다. 더 늦기 전에 가야 할 텐데 어떻게 해요. 더 늦으면 정말 못 가요.” 혼자 등산을 갔다가 우연히 말을 섞게 된 어느 여성이 내게 해 준 염려이다.

대체 그들은 날 언제부터 알고 지냈다고 나의 인생을 그토록 깊게 염려하는 것일까. 정작 그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는 부모와 형제자매는 결혼 문제로 내게 섣부른 조언을 하지 않는데 말이다. 내 가족은 날 걱정하지 않는 것일까.

하지만 이들이 이 같은 행동을 하는 진짜 속내를 나는 안다. 정답은 이호철 작가의 ‘판문점 1’에 나와 있다. 소설 속 주인공은 판문점에서 열리는 회담을 취재하러 갔다가 북한의 여기자를 만나 자유와 체제 등에 대한 대화를 나눈다. 그런데 주인공이 소위 ‘말빨’에서 북한 여기자에게 밀리는 것이다. 주인공은 속으로 ‘어라. 요것 봐라’ 하는 마음이 들자 그 여기자를 기죽일 수 있는 필살의 카드를 꺼내든다. 그것은 바로 ‘노처녀’ 공격이었다. 주인공이 여기자에게 나이를 묻자 스물다섯이라고 답했다. 그때가 1961년이니 스물다섯의 미혼은 현재의 서른다섯이나 마찬가지로 취급받았던 게 아닐까 싶다. 그 순간 주인공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아니 스물다섯이나 된 처녀가 아직도 결혼을 안 했소. 처녀가 제때 결혼을 못하면 쓰레기나 다름없소”라고 쏘아붙였다. 이 공격에 여기자는 주춤하며 얼굴을 붉혔다.

나는 이런 심리가 우리나라 특유의 경쟁 문화나 권위적 문화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 초고속으로 성장하는 사회에서 인적자원밖에 없다 보니 국가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채찍질하며 서열화했다. 옆 사람은 동지이자 나의 경쟁자였다. 항상 누군가와 비교해야 하고, 뿐만 아니라 내 통제 하에서 권위에 종속하는 모습을 봐야 비로소 승리감을 느낄 수 있었다.

원래 문화라는 것은 ‘자연상태에서 벗어나 삶을 풍요롭고 편리하며, 아름답게 만들어가고자 사회구성원에 의해 습득·공유·전달되는 행동 양식’이라고 사전에 기재돼 있다. 그러나 경쟁 문화, 권위적 문화에서 쓰인 문화는 풍요나 편리를 위한 행동 양식이라기보다는 단순한 사회 관습이나 행동 양태라고 보는 편이 더 맞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는 실제 사전에 나오는 ‘문화’를 꽃 피우는 데 있어 거대한 장애요소이다.

강가에 핀 들꽃과 이름 모를 풀을 보자. 좀 어두운 빛의 색의 꽃이 있다고 한들 그 누구도 ‘시커멓다’라고, ‘빈해 보인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꽃을 늦게 피우고, 열매를 늦게 맺는다 한들 그 누구도 못났다 하지 않는다. 그저 자연의 일부이고, 그들이 모여 더없이 풍성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이뤄내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경쟁 문화, 점수매기기 문화, 권위적 문화는 다른 이의 삶을 어떤 식으로든 평가절하시킴으로써 삶에 대한 자신감을 잃게 한다. 누구든 각자 반짝반짝 살 권리가 있는데 그 빛을 일부러 없애 버리는 것이다.

나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싶다. 그러나 아직 결혼 인연이 닿는 사람을 못 만났고, 그래도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고 있다. 욕도 안 하고, 교통신호를 준수하고, 어르신을 존중하며, 세금도 적절히 내고 있다. 바로 이런 각자의 충실한 삶이 모여 우리 사회가 아름다운 문화를 창조하는 데 일조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부디 자신의 기를 살리고자 다른 사람의 기를 죽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문화가 문화를 죽일 수 있다는 말이다.

임윤선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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