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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 빌려 이야기한 그녀들의 ‘사생활’

입력 : 2013-07-30 20:15:21 수정 : 2013-07-30 20: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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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하나쯤 가지고 있는 비밀
여성이자 작가라는 두 개의 자아 ‘식물’ 매개로 캔버스 안에 담아
김유림(27)·정윤영(26)·유화수(25)·이보경(24). 네 명의 젊은 여성 작가가 자신들의 무의식을 캔버스 안에 담았다. 이들의 자아와 무의식을 표출하는 매개는 ‘식물’이다. 그들의 식물은 비현실적이고 때론 삶을 표현하기도 하며 자아 그 자체이거나 죽음, 그리고 숲이 되기도 한다. 여성과 식물은 그리 낯선 주제가 아니다. 젊은 작가들은 이번 기획전에서 독특하고도 놀라운, 한편으론 가슴 아프기까지 한 그들만의 감성과 내면을 드러낸다. 이들은 각자의 은밀한 이야기를 솔직하게 작품으로 표현해 낸다.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는 비밀. 가슴속 저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사뭇 말하기 두려운, 꺼내고 싶지 않은 자신만의 이야기다. 이들은 ‘여성이니까 으레 꽃을 그리고 나무를 그리는 것’이라는 뻔한 선입견을 버리고 작품을 바라봐주길 바란다.

김유림이 태어나고 자란 곳은 제주도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그곳에서 그녀는 ‘푸른빛’을 누구보다 가깝게 느끼며 자라왔다. 그래서 자신만의 코발트블루를 창조해냈다.

어릴 때 부모님의 개인적이고 내밀한 사정으로 친척들과 무관한 삶을 살아온 김 작가는 명절 때마다 분주한 친구들이 신기하고 부러웠다. 그것은 마치 자신이 푸른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처럼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런 경험 탓에 그녀는 유년의 외로움, 외로움의 근원 등을 고민했다. 김 작가는 자연이 만들어 낸 무성한 수풀 속에서 마침내 외로운 자신과 동일시되는 지점을 발견하고 본인만의 코발트블루색으로 숲을 해석해 낸다.

김유림 작 ‘환상의 숲’.
정윤영의 작업은 죽음에 직면했던 흔치 않은 경험에서 시작된다. 갑자기 발견된 췌장의 종양 때문에 열다섯 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받고 중환자실과 일반병실을 오가며 느꼈던 의식의 흐름, 몸이 식물 같다는 느낌 등을 그대로 담아낸다. 투병생활 중 땅을 비집고 피어나는 작은 꽃을 보며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느낀 작가는 죽었지만 다시 환생하는 윤회의 상징으로 꽃을 사용한다.

정윤영 작 ‘무제(Untitled-SF)’.
유화수의 어머니는 집에서 천으로 커튼이나 이불 등 인테리어 용품을 만들었다. 천은 집안을 장식하기도 하고 팔아서 생계에 도움이 되기도 하는 훌륭한 사물이었다. 유 작가가 작업 소재로 ‘천’을 선택하게 된 것은 이처럼 필연이다.

그녀는 나이를 먹을수록 어른이기를 강요하는 사회가 이해되지 않을 때마다 어린 시절의 ‘천’을 떠올렸다.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고 싶은 마음과 어른 사회에서 살아내야 하는 두려움, 자신만의 독특한 정서를 천과 그녀만의 이미지로 결합해냈고, 그것은 자연의 요소인 식물과 화합하면서 유토피아적 공간으로 재탄생됐다.

유화수 작 ‘야생화 세계(Wild flower world)’.
이보경은 남성에 비해 선천적으로 약한 여성이 남성에 의해 처참하게 짓밟히고 무너지는 사회적 사건들 혹은 그런 상황들을 주변에서 듣고 접하면서 작품의 이미지를 구상해냈다. 그의 캔버스에는 왜곡된 신체를 가진 비쩍 마른 여성이 등장한다. 그들은 아프고 슬픈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누구나 쉽게 짓밟을 수 있지만 배경에 배치한 꽃과 식물을 통해 세상의 어떤 존재보다 강할 수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표명한다. 식물은 강하다.

“모든 나무들은 좌절된 사랑의 화신이다.”(‘식물들의 사생활’, 이승우, 문학동네, 2010) 이번 전시회와 동명의 소설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나무·꽃·여성 그리고 식물. 전시의 주제어인 ‘식물’은 이승우의 소설에서 언급된 것처럼 숨겨진 처절함과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작가들이 말하는 ‘사생활’은 일반적인 의미를 넘어선 일종의 ‘작가정신’이다. 네 작가는 현대 미술의 새로운 흐름이나 경향, 혹은 거창한 주제나 철학적인 개념에 휘둘리기보다는 자신의 진솔한 삶에서 얻은 경험으로 작업을 시도한다. 개인의 삶에서 체득한 경험과 기억을 바탕으로 창조된 작품은 그 자체로 작가들의 삶이 된다. 여성이자 작가라는 두 개의 자아를 ‘식물’로 표현해낸 그녀들의 ‘사생활’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식물들의 사생활전’은 서울 서초구 유중아트센터에서 8월2일부터 23일까지 열린다. 네 작가가 고유한 작업 방식으로 마치 스토리텔링하듯 표현해 낸 매력적인 작품 20여 점이 관람객을 맞는다. 무료. (02)537-7736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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