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7 첩보영화의 한 장면같이 홀연히 행방이 묘연해진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원본을 둘러싼 미스터리가 북방한계선(NLL) 정국을 다시 달구고 있다. 당초 원본을 보관 중인 것으로 알려진 국가기록원이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 되면 NLL 논란도 깔끔히 정리될 수 있다고 자신했던 여야는 이제 회의록 행방을 놓고 격돌하고 있다. 노무현·이명박 정부 파기설이 제기되면서 회의록 원본 문제가 장기 미제가 될지 주목된다.
회의록 관련 문서 생산자인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이 가장 먼저 의심을 받는다. 노 전 대통령이 국가기록원에 이관하지 않았거나 파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지난해 대선에서 노 전 대통령의 NLL 포기 발언 진위가 쟁점으로 부상한 뒤 한 매체는 노 전 대통령 파기설을 제기한 바 있다. 새누리당 핵심 관계자도 18일 통화에서 “노 전 대통령 폐기설은 노 전 대통령 퇴임 직후부터 쭉 나오던 얘기”라며 “(노 전 대통령이) 보여줄 수 있는 것만 이관하고 미심쩍은 것은 그냥 봉하마을로 가져갔을지 누가 아느냐”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 측은 펄쩍 뛰었다. 민주당 대선후보였던 문재인 의원은 이미 대선때 “참여정부에서는 이지원(e-知園)으로 정상회담 문서가 보고되고 결재됐기 때문에 폐기가 불가능하다”고 일축했다. 이지원이란 디지털지식정원이란 뜻으로, 노 전 대통령이 개발한 청와대 온라인 업무관리시스템이다. 노무현정부 마지막 청와대 기록관리비서관을 지낸 김정호 봉하마을 대표도 이날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824만건에 달하는 모든 기록물을 넘기고 혹시나 싶어 외장하드에도 담아 별도로 보냈다”며 “회의록만 빠졌을 가능성은 없다”고 못박았다.
관련자 발언을 종합하면 회의록은 2007년 10월3일 남북정상회담 직후 노 전 대통령이 김만복 당시 국가정보원장에게 지시해 국정원이 2부를 작성, 1부는 자체 보관하고 1부는 청와대에 보고했으며 청와대 보관본은 임기 말인 2008년 2월20일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따라 국가기록원에 이관됐다는 게 정설이었다. 청와대 보관본은 조명균 당시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이 국정원이 보고한 것을 토대로 다시 문서화해 만든 최종본이다. 이때부터 회의록은 ‘조명균본’과 ‘국정원본’ 두 가지가 있었던 셈이다. 국정원본은 NLL 논란이 일자 남재준 국정원장 지시로 비밀분류에서 해제돼 일반에 공개됐다. 이번에 국정원본과 청와대본을 비교해 노 전 대통령의 발언 진위를 확실히 하자는 취지에서 여야 열람위원이 국가기록원을 찾았으나 청와대본의 종적을 알 수 없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조 전 비서관의 ‘증언’이 중요한 시점인데, 거취가 파악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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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관련 자료에 대한 여야 열람위원의 예비열람 결과를 보고받기 위해 18일 긴급 소집된 국회 운영위 전체회의에서 최경환 위원장(가운데)이 여야 의원과 협의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
이명박 전 대통령 측도 용의선상에 올랐다. 민주당 전병헌 의원은 이날 고위정책회의에서 “이명박 정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며 “남 원장이 그렇게 불법복제판을 들고 기세등등하게 설쳐댔던 그 배후에 이와 같은 음모가 도사렸던 것은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당에서만 의혹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아무래도 께름칙하다. 최악의 경우 이명박 정권이 파기했거나 유실, 조작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전 대통령 측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이명박정부의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국가기록원의 철통 같은 방호를 뚫고 들어가 자료를 파기하고 조작했다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한 일인가”라며 “파렴치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김정호 대표도 “(이지원에) 등록된 자료는 (삭제가) 안 된다”며 “개연성은 있으나 문제는 우리(노 전 대통령 측이)가 (국가기록원에) 보낸 기록물 전체를 훼손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기록원 깊은 곳에서 잠자나
노, 이 정부가 손대지 않았다면 회의록은 국가기록원에 남아 있어야 한다. 일각에서는 기록원이 이관받고 보관하는 과정에서 유실, 훼손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다만 유독 회의록만 잘못됐을 가능성은 작아보인다. 전 국가기록원 관계자는 “대통령기록관은 국가기록원장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다”며 “기록물이 이관됐다면 시스템적으로 분실이 불가능하다”고 전했다.
국가기록원 측이 자료를 못 찾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비밀기록물이어서 전혀 다른 코드명으로 제목을 달거나, 대통령기록관과 이지원 운영시스템의 차이로 문서 검색을 못하는 상황도 있을 수 있어서다. 전직 대통령기록관 관계자는 “이지원의 문서를 그대로 이관했기 때문에 (회의록을 이관했다면) 이지원 시스템 안에 있을 수 있다”며 “시스템상 삭제됐을 가능성은 없어 보이고 검색이 복잡하기 때문에 아직 찾지 못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호 대표는 “(국가기록원 측이) 못 찾고 있거나 회피하고 있는 게 아니냐 의심할 수밖에 없다”며 “저희가 할 수 있다면 이지원 시스템을 구동시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찾아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청중·유태영·박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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