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공동이익 기반한 협력 기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수도 워싱턴이나 인근 메릴랜드주의 캠프 데이비드가 아닌 캘리포니아주에 위치한 전형적인 사막 도시 ‘랜초미라지’에서 만났다. 마치 이번 정상회담의 전말을 꿰어낼 수 있는 중국발(發) ‘신(新)대국관계’라는 표현이 미·중 관계의 새로운 방향성을 정립해 나가야 할 과제로 다가왔듯이 랜초미라지는 미국 서부의 개척과 실험정신이 배어 있는 인공 도시로 알려져 있다. 이제 막 출발선에 선 중국 5세대 지도부의 핵심인 시진핑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항공모함을 진두지휘해야 하고, 전대미문의 글로벌 금융위기와 전임 정부의 대테러전쟁으로 인해 본인의 정체성을 대외정책에서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오바마 대통령 역시 2기 행정부를 시작하면서 새롭게 신발끈을 조여매듯 이번 정상회담에 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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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 정치학 |
사실 지금의 미·중 관계만이 아니라 17세기 이후 근대국제관계가 생겨나면서 국제사회는 매시기 강대국의 역할과 특정 국가 간 세력관계의 변화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19세기 영국의 세력균형정책, 20세기 미·소 간 냉전의 정치, 냉전 직후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 등은 소위 G2시대에 앞서 인류가 경험한 ‘강대국 정치’의 대표적인 전형이었던 셈이다.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중국이 주장하고 싶었던 바는 한마디로 지금까지 괄목할 만한 수준으로 성장한 중국의 국력이 국제정치의 보편적인 권위와 리더십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의지에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존하는 리더인 미국과 상호 신뢰와 공동이익에 기반한 새로운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중 간 인식 차이를 확연히 보여줄 수 있는 북한 문제의 경우, 사안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보다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원칙론적인 입장의 강조로 대신한 점은 나름 이해될 만하다. 북한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 조만간 열릴 한·중 정상회담에서 북한문제가 구체적으로 다뤄질 가능성, 이제 막 모멘텀 전환을 시도한 남북한 당사자 대화, 이러한 정황이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강조한 배경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랜초미라지라는 도시의 이름처럼 미·중이 함께 열어가야 할 앞으로의 글로벌 리더십은 마치 ‘신기루’와 같아서 아직까지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안겨주고 있다. 미·중이 함께 만들어갈 새로운 강대국 협력체제는 한반도와 동북아는 물론 글로벌 사회 전반에 걸친 새로운 평화와 발전의 전범(典範)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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