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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건축가 임형남·노은주의 키워드로 읽는 건축과 사회] <69> 도서관

입력 : 2013-03-12 21:01:17 수정 : 2013-03-12 21: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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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진리의 빛’ 찾아 … 오늘도 사람들은 도서관에 간다
책으로 가득 찬 ‘지식의 미로’…어두운 곳서 책 뽑아 밝은 곳으로
#도서관, 지식의 미로

움베르토 에코는 이탈리아의 철학자이다. 또는 소설가, 독서가 혹은 그냥 집필가이다. 여기저기에 다리를 걸치고 있으면서도 모든 분야에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는 묘한 사람이다.

대학교 때 건축과 학생들 사이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기호학이 마치 한철 유행하는 옷처럼 혹은 방금 가요 톱 텐에서 우승한 노래처럼 퍼진 적이 있다. 건축과 학생들은 학교에 내는 과제건 공모전에 내는 작품이건 무언가 유행하는 철학 사조나 이론을 원용하는 것을 퍽이나 좋아하는데, 당시에는 기호학이 그런 유행의 선두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식이라는 미로를 중세 수도원의 도서관으로 형상화 하고, 지식에 대한 지식인의 자세를 치열하고 흥미진진한 두뇌싸움을 벌이는 두 사람을 통해 묘사한 움베르토 에코 원작의 영화 ‘장미의 이름’.
그 무렵 ‘장미의 이름’이라는, 숀 코널리가 나오는 영화의 시사회에 갔다. 음울하고 어두운 서양의 중세 수도원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주인공은 그림자처럼 은밀히 움직이는데, 비밀은 도서관의 깊은 곳에 숨겨진 책 한 권에 있었다.

영화는 아주 흥미진진했다. 배경이 된 수도원과 그 안에 있는 깊고 어두운 도서관은 아주 인상적이었다. 영화를 본 후 소설을 읽게 되었는데, 영화에서보다 훨씬 깊고도 어두운 도서관을 보게 되었다. 중세 수도원의 어두운 공간감과 지식에 대한 메타포는 강렬했다.

에코는 지식이라는 미로를 도서관으로 형상화하였다. 지식에 대한 지식인의 자세를 치열하고 흥미진진한 두뇌싸움을 벌이는 윌리엄 수사와 도서관의 맹인 사서인 호르헤 수사의 상반된 성격을 통해 훌륭하게 묘사했다. 나는 그 호르헤 수사의 모델이 아르헨티나의 유명한 소설가 호르헤 보르헤스라는 것을 소설을 읽고 한참 지난 뒤에야 알았다.

독서가라고 스스로를 칭하는 보르헤스는 50대에 시력을 잃은, 소설가이며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이었다. 그런 그를 에코는 무척 존경하여 급기야 소설에 등장시키기까지 한 것이다.

보르헤스는 소설을 통해 기묘한 시간과 어지러운 미로를 끊임없이 던져주는데, 그의 ‘바벨의 도서관’은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도저히 끝으로 갈 수 없는 미로 같은 도서관의 원형을 보여준다. 또 다른 작품 ‘바빌로니아의 복권’에는 ‘카프카’라는 성스러운 화장실이 나온다. 보르헤스 또한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를 무척 존경했다고 한다. 이건 마치 꼬리를 물고 계속 도마뱀이 이어지는 에셔의 그림과도 같다. 에코는 보르헤스를, 보르헤스는 카프카를, 서로서로 이어지며 미로놀이를 한다.

1973년 보르헤스는 이탈리아 젊은 출판인의 제의를 받아들여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세계문학 컬렉션을 만든다. 총 29권으로 에드거 앨런 포에서 시작해서 카프카, 도스토옙스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가의 흔하지 않은 소설을 심사숙고해서 고르고 모든 책에 해제를 붙였다. 마치 그리스 시대에 장님 호메로스가 기억에 의존해 일리아드를 남겼듯이, 눈이 보이지 않는 보르헤스는 순전히 기억에 의존해서 책을 만들었다.

컬렉션 중 한 권인 ‘독수리’라는 책은 보르헤스와 카프카를 동시에 만날 수 있는 작품이다. 이를테면 카프카를 보는데 보르헤스라는 안경을 쓰고 보는 것이다. ‘독수리’는 아주 짧은 소설들로 구성되어 있다. 짧은 것은 2쪽 분량으로 글자 수가 750자밖에 안 되는 것도 있다. 필요 없는 살들은 모두 발라내고 형해만 남은 글자들을 죽 나열한 소설들이다.

보르헤스는 “카프카의 가장 분명한 장점은 허용할 수 없는 상황을 만들어내는 솜씨이다. 몇 행만으로 그는 영원히 남을 상처를 넣는다”고 말한다. 무한한 기다림과 무한한 지연, 그 안에 갇힌 인간은 원숭이가 되기도 하고, 단식하는 묘기를 보여주는 광대가 되기도 하고, 잊혀지는 프로메테우스가 되다가 독수리의 한방에 나가떨어지며 해방감을 맛보는 인간으로 표현된다. 여기서도 인간은 끝내 미로에서 길을 찾지 못하고, 나 또한 내용을 놓쳐 번번이 처음으로 되돌아갔다.

카프카는 길을 찾지 못했지만 희망을 가지고 계속 미로 속으로 걸어 들어갔고, 보르헤스는 미로라는 것은 결국 허망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에코는 미로를 뒤져서 결국 답을 얻는다. 

건축가 루이 칸이 설계한 미국의 필립 엑서터 아카데미 도서관. 하늘에서 들어오는 빛이 거대하게 빈 건물 중앙의 공간을 채우고 있다. 빈 공간을 통해 내부의 전 층이 마치 유리병 안에 단면이 보이도록 담아놓은 개미굴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기억 속의 도서관

우리가 무엇을 알게 되는 것은 마치 미로 속에서 길을 찾는 것과 같다. 길은 바로 옆에 있지만 그게 우리가 찾아야 하는 길이라는 것을 모른다. 어떤 선택이 옳고 어떤 선택이 그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혹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보다 그 미로 속에서 헤매고 다니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일 수도 있다.

도서관은 지식의 미로다. 물론 그 이전에 도서관은 책을 읽는 곳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도서관과 독서실이라는 아주 한국적인, 기능에 의한 공간 분류가 있다. 도서관은 지식을 탐구하는 곳이고, 독서실은 기능을 연마하는 곳이다. 그 기능이라는 것은 시험을 잘 치르기 위한 기술을 연마하고 실전 연습을 한다는 의미이다. 우리의 모든 공부는 기능 향상에 중점을 두고 있다. 정의감이 사라진 법관 혹은 법률기능인, 인간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사라진 의사 혹은 의료기능인, 사람에 대한 이해가 사라진 건축가 혹은 건축기능인들…. 대체 우리의 교육 목표가 어디서부터 길을 잘못 들었던 것일까….

본질적으로 도서관은 지식을 쌓아놓고 있는 창고이고, 우리는 그 창고에서 지식을 꺼내서 섭취한다. 그러나 우리의 도서관은 학기 중 시험공부 하는 학생들, 다양한 고시 공부하는 청년들, 진급을 위한 시험이나 영어 등급을 올리기 위해 공부하는 중년들이 차지하고 있다. 피곤한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혹은 머리를 책상에 박고 침을 흘리며 자고 있는 그곳은, 바닥에 무언가 침울한 것이 잔뜩 고여 있는 서글픈 장소이다.

서울 후암동에 살던 중학생 때, 언덕을 조금 올라가면 남산도서관이 있었다. 평소에는 그 옆에 있는 어린이회관에 가서 오락기를 만지며 놀거나 야외음악당 마당에서 공을 차며 놀다가 도서관에는 주로 시험기간에 갔다.

개관 시간이 아침 여덟 시쯤이었던가. 새벽부터 학생들과 덥수룩한 머리를 한 재수생이나 수험생 형님들이 입구에서부터 책가방을 죽 늘여놓고 기다린다. 그때 가야 가방을 앞자리에 놓을 수 있고, 그래야 구석지고 호젓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참 지금 생각하면 정말 우스운 장면이다. 그런 줄서기는 이후 동네 야산 새벽 약수터에서 보고, 아파트 모델하우스 앞에서도 보고, 콘서트장 앞에서도 보았다.

나도 이상한 경쟁심이 작동되어서 언젠가 일등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일요일마다 새벽을 달렸다. 그러다 일등을 한 적도 있었고, 일등을 못 하더라도 늘 10위권은 유지했다.

두 시간 정도 기다리다 날이 훤해지고 수위아저씨가 문을 열기 위해 다가서면, 마치 100m 경주에 나가는 사람이 출발 신호를 기다리듯이 온몸이 긴장되고, 문이 열리면 미친 듯이 가방을 들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그려놓았던 최고의 자리, 계단에서 가깝고 매점도 가까운 열람실의 가장 구석지고 남산의 싱그러운 녹음이 배경을 깔아주는 자리로 달려간다. 그러고 나면 온몸에 맥이 다 풀린다.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를 정돈하고 나서는 한 십분 공부를 하다가 졸기 시작한다.

매번 그런 식으로 일요일을 보냈다. 도서관에 대한 기억은 그런 긴장과 이완과 그리고 일탈로 연결되었다. 어찌되었건 하루를 그곳에서 보내고 가슴이 벅차도록 스스로 감동하며, 공부를 했건 안 했건 왠지 뭔가를 한 것만 같다는 그런 생각에 스스로 대견해했다. 

필립 엑서터 아카데미 도서관에는 각 층 중앙 쪽으로 서가가 있고 창 쪽으로 열람실들이 붙어 있다. 사람들은 어두운 서가에서 책을 꺼내들고 밝은 창 쪽으로 가서 읽는다.
# 어두운 곳에서 책을 뽑아 밝은 곳에서 읽는다


공부를 핑계 삼아 창밖의 남산을 보거나 책상에 엎어져 졸거나 하는 게 도서관에서의 주된 일과였다. 그러다가 간혹 드물게 짬을 내어 개가식 열람실에 들어가 보기도 했다. 주로 어디선가 들어봤던 책들을 호기심에 신청해서 보았는데, 그런 행동은 도서관 본연의 기능임에도 이때의 상황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일탈이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책은 중학교 1학년 국어시간에 선생님께 추천을 받았던 ‘춘원 연구’이다. 이광수와 라이벌이었던 김동인이 이광수를 혹독하게 비판하는 책이었다. 100쪽 정도로 얇은 책의 내용은 이광수의 소설을 분석해가며 개연성이 떨어지는 억지스런 부분,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을 샅샅이 뒤져서 까발리는 다소 감정이 섞인 글이었다.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접한 문학비평서였다. 지겨운 시험공부를 하다가 읽은 그 책은 정말 재미있었다. 국자에 설탕을 넣고 연탄불에 녹이다가 소다를 넣고 부풀게 한 뒤 쇠판에 엎어서 만든 뽑기보다 더 달콤하고 매혹적이었다.

마치 내 가방에 담아와 보던 교과서·참고서·문제집들은 모두 플라스틱으로 만든 가짜 음식이고, 그 책은 펄펄 살아있는 생선회와 같았다. 말하자면 그때 나는 시간을 넘나드는 지성의 세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것이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그 걸음은 정독도서관으로 이어졌다. 경기고등학교가 1977년에 강남으로 옮기며 약간의 개조를 거쳐 열었던 정독도서관은 평지에 가까워서 접근이 쉬웠고 경치가 수려했고 주변에 고궁이 많아서 무척 고즈넉했다.

세 개의 건물이 일렬로 도열하고 있었는데, 들어가다 보면 강당이었음 직한 건물이 식당이었다. 나는 주로 그 식당에서 가락국수를 먹는 맛에 그 도서관에 갔다. 가락국수를 먹고 열람실에 들른다. 남산도서관처럼 한 건물 안에서 복도와 계단실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라, 건물과 건물 사이의 연결통로를 통해 오르락내리락했다.

역시 이곳에서도 나의 ‘일탈’은 이어졌다. 당시 무척 인기 있던 코미디언 배삼룡에 대한 논문, 그리고 대원군에 대해서 우리가 모르는 많은 일화와 당시의 정치적 지형도를 입체적으로 분석했던 논문이 인상적이었다. 대원군의 정치적인 역량이 정적들을 압도하는 내용은 한편의 재미있는 사극을 보는 것처럼 동적이었고 생생했다.

‘수학의 정석’ 혹은 ‘성문종합영어’를 들여다보다가 잠시 궤도에서 벗어나서 찾아들어 간 열람실, 그리고 그때그때 닥치는 대로 집어서 읽었던 공부와는 아무런 연관이 없었던 다양한 책들은 삼년 가뭄 끝에 시원하게 내리는 비와 같이 나의 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진 지성에 대한 욕구를 채워주었다.

나는 지금도 그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미로 속을 헤매다가 우연히 가망이 없었던 어떤 틈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에 빛이 스며들어오는 것을 보는 것 같았다. 

필립 엑서터 아카데미 도서관 전경. 건축적인 수사가 별로 없다.
좋은 건축은 그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을 예상하고 그에 맞게 디자인하는 것이다. 건축가 루이 칸(Louis I Kahn)은 미국 사립고등학교인 필립 엑서터 아카데미(Phillips Exeter Academy)에 도서관을 설계했다. 담담한 붉은 벽돌로 지어진 이 도서관은 보통의 건물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표정들, 가령 들어가는 입구를 강조하는 장식이나 리듬감 있는 창의 배열 등과 같은 그런 건축적인 수사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1층 부분에는 그냥 회랑이 반복되고, 상층부에는 네모난 창이 단순하게 반복된다. 그래서 어디가 입구인지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지 무척 헷갈리게 한다. 한참을 헤매다 마침내 모퉁이에 있는 입구를 찾아 들어가면 계단이 나오고 그 계단을 올라가면 네모난 건물의 중앙이 커다랗게 비어 있음을 알게 된다. 하늘에서 들어오는 빛이 거대하게 빈 공간을 채우고 있다. 빈 공간을 통해 내부의 전 층이 마치 유리병 안에 단면이 보이도록 담아놓은 개미굴처럼 한눈에 들어온다.

각 층에는 중앙 쪽으로 서가가 있고 창 쪽으로 열람실들이 붙어 있다. 사람들은 혼란스런 입구를 통해 밝고 높은 실내로 들어오고, 어두운 서가에서 책을 꺼내들고 밝은 창 쪽으로 가서 책을 읽는다.

“도서관은 어두운 곳에서 책을 뽑아서 밝은 곳에서 읽는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행위, 지식을 추구하는 행위는 어둠에서 밝음을 추구하는 것이다. 더할 나위 없이 아주 명쾌하고 단순한 건축적인 프로그램이고 가장 확실한 도서관에 대한 정의이다.

가온건축 공동대표·‘작은 집, 큰 생각’ 공동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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