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과의 갈등·인사 잡음 등 논란 ‘민주화의 산물에서 논란의 대상으로….’
헌법재판소는 1987년 민주화 직후 만들어진 헌법에 따라 이듬해 9월 출범했다. ‘독재 정권에 짓밟힌 헌정질서를 바로잡자’는 국민적 열망을 안고 출범한 헌재는 지난 25년여간 헌법질서 수호와 국민기본권 보호에 힘써왔다. 하지만 인사 잡음과 대법원과의 갈등 등으로 인해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다.
제2공화국 때인 1961년 헌법재판소법이 처음 제정됐지만 헌재 구성 전 5·16 쿠데타가 발생, 출범하지 못했다. 이후 민주화가 이뤄진 뒤에야 헌법재판관 9명으로 이뤄진 헌재가 비로소 설립됐다. 정무직 장관급 예우를 받는 재판관 중 3명은 국회에서 선출하고,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한다. 헌재 소장을 포함한 나머지 3명은 대통령의 몫이다. 대통령이 임명한 재판관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동의를 얻어야 한다.
헌재의 주요 기능은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 헌법소원심판 등 5가지다. 재판관 9명이 사건 심리에 관여하는 1개의 ‘전원재판부’와 각 3명의 재판관이 전원재판부 심리에 앞서 사건을 걸러내는 3개의 ‘지정재판부’가 있다. 헌재 심판은 전원재판부가 맡는 게 원칙이다.
헌재를 둘러싼 주된 논란은 헌재소장 인선 과정에서 비롯되고 있다. 최근 퇴임한 이강국(68) 4대 소장을 비롯한 역대 헌재소장은 모두 서울대 출신이다. 또 변호사 출신인 조규광(87) 초대 소장을 제외하고는 전부 대법관 중에 임명됐다. 비서울대 또는 재판관 출신으로 헌재소장에 오른 인사는 아무도 없다.
2006년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사법고시 동기이자 이화여대 출신인 전효숙 재판관을 헌재소장으로 지명했다. 하지만 전 재판관은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못할까 우려된다”는 비난이 쏟아지자 자진 사퇴했다.
헌재와 대법원의 관계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아 두 기관은 위상을 두고 잦은 갈등을 빚기도 했다. 1997년 발생한 동작세무서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헌재는 ‘부동산 양도소득세를 기준시가가 아닌 실지거래가 기준으로 과세한 것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는데, 대법원이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판결을 내리자 대법원 판결을 위헌으로 규정했다.
최근에는 ‘준공무원을 뇌물죄로 처벌하는 것을 위헌’이라는 헌재 결정에 현역 판사들이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조성호 기자com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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