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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신드롬’ 한국영화, 장애인 인권을 말하다

입력 : 2011-10-03 14:59:17 수정 : 2011-10-03 14:5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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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도가니'
‘도가니’ ‘숨’ ‘카운트다운’ 등 장애인 문제 거론

영화 ‘도가니’가 연일 사회적인 이슈를 불러일으키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가운데, 요즘 한국영화계에 ‘장애인 인권’에 대해 묻는 영화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지난 22일 개봉한 ‘도가니’는 영진위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 집계 전국 145만915명의 누적관객수(2011년 9월29일 오전 6시 기준)를 기록하며 관객들의 관심을 입증하고 있다.

이처럼 ‘도가니 신드롬’이라 불릴 정도로 영화가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실제사건인 ‘광주인화학교 청각장애아동 성폭력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다.

지난 2005년 한 양심 있는 교사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 이 사건은 교장을 비롯한 교직원들이 2000년부터 청각장애아동들을 성추행 및 성폭행해온 사건으로, MBC ‘PD수첩’ 등에 보도됐음에도 가해자들은 아주 가벼운 형량만을 선고받고 다시 학교에 복직돼 비난이 거세지고 있다.

이 같은 솜방망이 처벌이 가능했던 것은 학교를 운영하는 우석법인과 그 지역 경찰이나 법조계 관계자들의 오랜 유착관계, 전관예우 등 각종 비리가 연루돼 있는 것으로 드러나 사회적인 파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영화 '숨'
◆ 함경록 감독의 ‘숨’도 실제 장애아동 성폭력 사건 다뤄

‘도가니’처럼 한 장애인 시설에서 실제 발생한 성폭력 사건을 그린 또 다른 영화 ‘숨’도 현재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전주에서 활동 중인 함경록 감독이 연출한 ‘숨’은 지역 장애인시설에서 성장한 여인 수희(박지원 분)의 삶을 덤덤하게 그리고 있다. 전주국제영화제를 비롯해 브뤼셀유럽영화제, 바르셀로나아시아영화제, 후쿠오카국제영화제 등에 초청돼 국내에서보다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더 인정받은 '숨은 걸작'이다. 

‘도가니’가 사건을 파헤치고 고발하는 데 중점을 뒀다면, ‘숨’에서 함 감독은 어린시절부터 시설에서 성학대를 당해온 중증장애인 여성의 내밀한 심리묘사를 통해 환경 안에서 어쩔 수 없이 침해당할 수밖에 없었던 인권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실제 뇌병변 1급 중증장애인인 박지원 양을 여주인공으로 내세운 이 영화는 사건 자체보다는 사건 이후 피해자의 삶과 행복에 주목하며 ‘우리 사회가 장애인 인권을 위해 진정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인가’ 되새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도가니’로 인해 사건 가해자들을 다시 처벌해야 한다, 해당 학교를 폐지하라는 등 공분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숨’은 실제 피해자들과 그의 가족, 그리고 현재 학교에 다니고 있는 교직원들과 학생들의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모색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기도 하다.

함 감독은 9월초 세계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영화에서는 수희가 장애인으로 등장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쯤에는 장애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여자’로 보여 졌으면 좋겠다. 어떤 이슈를 통해서만 약자로만 받아들여지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그들을 바라봐야 할 때”라고 말한 바 있다.

영화 '카운트다운'
◆ ‘카운트다운’ 죽어가는 장애인 아들 뒤로 한 비정한 아빠

오늘(29일) 개봉하는 허종호 감독의 감성 액션 드라마 ‘카운트다운’은 위의 영화들과는 별 공통점이 없어 보이지만, 남자주인공인 태건호(정재영 분)의 다운증후군 아들과 관련한 스토리는 장애인 인권에 대해 곱씹게 만든다.

태건호의 아내는 장애인 아들을 보기가 괴로워 집을 나가고, 태건호는 만날 술에 취해 아들을 잘 돌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아빠를 좋아하는 아들은 매일 만나는 새로운 세상에 대해 호기심 어린 질문을 던지지만 태건호는 한 번도 따뜻하게 답을 해준 적이 없다.

그리고 불의의 사고고 유민은 동네 호수에 빠지고, 그를 찾으러 맨발로 집을 나선 아빠는 물 위에 떠오른 아들을 발견하지만 애써 외면한 채 뒤돌아서고 만다.

다소 충격적인 이 설정은 장애인 아동을 둔 가족의 비극에 대해 말하고 있다. 태건호를 연기한 정재영 역시 이 부분만은 연기하기 어려웠다고 토로한 바 다.

최근 진행된 인터뷰에서 그는 “사실 시나리오상으로는 아들이 호숫가에서 허우적대는 설정이었는데,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영화를 보고 장애인협회나 인권협회에서 항의가 들어올 수 있다는 생각에 설정을 조금 바꿨지만 그래도 너무 심했다”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카운트다운’은 그런 과오를 뼛속 깊이 뉘우치는 아버지의 이야기기도 하다. 관객들 입장에서는 장애아를 둔 가족이 겪게 되는 고통과 슬픔, 장애아동이 한 사람의 성인으로 성장하기까지 우리 사회의 관심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는 소중한 메시지를 깨닫게 된다.

◆ 정부, 장애인 인권 관련 조사 착수

28일 경찰청과 정부부처로부터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경찰청은 청장 직속의 지능범죄수사대 5명과 성폭력 전문수사관 10명 등을 광주로 급파해 인화학교 사건 관련 특별수사팀을 꾸렸다고 밝혔다. 

이 특별수사팀은 가해 교직원들의 추가 성폭행 여부, 관할 행정당국 관리 감독의 적정성, 인화학교와 법인의 구조적 비리 등에 대해 집중 추궁하게 된다. 이미 법원 판결이 끝난 사건에 대해 다시 수사하지 않는다는 ‘일사부재리의 원칙’ 때문에 기본적 사실의 동일성이 없는 별개의 범죄 여부에 대해 수사한다는 방침이다.

경찰과 더불어 교육과학기술부도 기숙사가 설치된 전국 41개 특수학교와 그곳에 다니는 장애 학생들의 생활 실태를 점검하기로 결정했다. 이는 일명 ‘도가니 방지법’이라고 불리는 법 개정으로도 이어질 전망이다.

한 영화 관계자는 ‘도가니’ 신드롬과 관련해 “영화는 마치 사이렌과도 같다. 한 번 울리면 모든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게 하지만, 사람들은 사이렌이 그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계속 길을 간다”고 지적했다. 장애인 인권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결코 오래가지 않을 거란 우려에서다. 

‘도가니’로 인해 화두로 떠오른 장애인 인권 문제에 대해 분노의 감정으로만 맞설 게 아니라 좀 더 침착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사건을 해결하려는 지혜가 필요하다.

현화영 기자 hh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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