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를 휩쓰는 재정 위기가 대형 은행의 신용등급 강등으로 이어지면서 국제금융시장에서 이 같은 탄식이 터져나오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시티그룹, 웰스파고와 같은 미국을 대표하는 대형 은행은 물론 이탈리아 주요 은행의 신용등급이 마침내 깎인 탓이다.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는 ‘금융위기가 재연되지 않을까’라는 걱정도 커지고 있다.
미국 은행에 대해 ‘신용등급의 칼’을 빼든 곳은 무디스다. 무디스는 21일 자산 기준으로 미국 최대 은행인 BoA와 시티그룹, 웰스파고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렸다. 이들은 미국의 3대 은행이다. 세계 금융계를 지배하는 미국 금융산업의 자존심이 땅에 떨어지게 된 형국이다.
BoA의 장기 신용등급은 A2에서 Baa1으로 2단계 하향 조정됐다. 단기 신용등급은 프라임1에서 프라임2로 떨어졌다. 이로써 미국의 3대 은행 중에서 BoA의 신용등급은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시티그룹의 단기 신용등급도 프라임1에서 프라임2로 떨어졌다. 장기 신용등급은 A3으로 유지됐지만 전망은 ‘부정적’이라는 꼬리표가 매달려졌다. 무디스는 웰스파고에 대해 장기 신용등급을 A1에서 A2로 하향 조정하고, 등급 전망을 ‘부정적’이라고 못박았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는 지난 19일 이탈리아의 국가 신용등급을 강등한 데 이어 이날 메디오방카, 인테사 산파올로 등 7개 이탈리아 은행에 대한 신용등급을 깎아내렸다. 또 이들 은행의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들 은행 외에도 유니크레디트 등 8개 은행의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바꿨다.
유럽 경제의 화약고와 같은 존재로 부상한 이탈리아의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음을 말해 주는 대목이다.
주요 금융회사의 신용등급 강등과 관련, 금융시장에서는 우울한 분석이 쏟아진다.
미국의 3대 은행에 대한 무디스의 신용등급 조정은 이들 은행이 3년 전 금융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유럽의 은행 위기가 미국으로 이전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도 배경이다.
미국 정부는 2008년 말 대형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한 직후에 공적 자금을 투입해 미국 은행들의 연쇄 도산을 막았다. 무디스는 “이제는 미국의 은행이 위기에 직면해도 미국 정부가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미국 대형은행의 신용등급을 내린 핵심 이유”라고 밝혔다.
2010년 의회에서 통과된 도드·프랭크 금융개혁법이 시행됨에 따라 은행이 위기가 처하면 자구책을 통해 자생 의지를 보여야 하며, 정부는 문제가 된 은행에 쉽게 구제금융을 제공하지 못하게 돼 있다. 무디스는 “미국 정부가 이제 초대형 은행의 파산도 감수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유럽 은행의 사정은 미국보다 더 나쁘다. 이탈리아 은행의 신용등급 강등에 앞서 프랑스의 2, 3위 은행인 소시에테 제네랄과 크레디 아그리콜의 신용등급이 강등됐다. 최대 은행인 BNP파리바는 신용등급 하향조정 경고를 받고 있다. 월가에서는 유럽 은행의 추가 신용등급 강등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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